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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멍줄멍한’ 돌담…제주 문화의 아이콘

등록 2015-11-01 20:14수정 2015-11-02 10:25

① 돌담쌓기 학교를 개설한 돌빛나예술학교의 조환진씨가 제주시 구좌읍 지역에서 돌담쌓기를 하고 있다. '고영일이 본 제주의 속살'(리석 고영일 선생 추모사업추진위원회).
① 돌담쌓기 학교를 개설한 돌빛나예술학교의 조환진씨가 제주시 구좌읍 지역에서 돌담쌓기를 하고 있다. '고영일이 본 제주의 속살'(리석 고영일 선생 추모사업추진위원회).
“돌, 돌, 그저 돌이다. 밭과 바다 사이 경계선으로 높직한 돌담을 쌓아놓았다. 육지에서 논두덩이나 밭두덩을 이 섬에서는 돌로 담을 쌓는다.”(<동아일보> 1931년 8월18일) 일제 강점기 제주도 기행에 나섰던 한 여행자는 제주도를 이렇게 묘사했다.

제주도는 돌의 섬이다. 이방인들이 본 제주도는 사방이 온통 돌투성이와 돌담으로 둘러싸인 섬이었다. 다른 지방에서 비행기를 타고 제주 상공에서 내려다보면 곳곳에 돌담이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올망졸망한 밭들의 경계를 위해 쌓은 돌담은 제주시 구좌읍과 애월읍, 한림읍 등에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제주의 돌은 1930년대 중반 국어학자 권덕규가 ‘(제주도) 돌이라는 것이 마마(천연두)만히한 울멍줄멍한 얼음박이 돌’이라고 할 정도로 육지의 돌과는 달리 울퉁불퉁하고 거친 현무암으로 구성돼 이방인들의 눈에는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③ 제주의 사진작가 고 고영일 선생이 1960년대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제주도의 해안마을은 온통 돌로 돼 있다. '고영일이 본 제주의 속살'(리석 고영일 선생 추모사업추진위원회).
③ 제주의 사진작가 고 고영일 선생이 1960년대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제주도의 해안마을은 온통 돌로 돼 있다. '고영일이 본 제주의 속살'(리석 고영일 선생 추모사업추진위원회).
제주의 돌담은 형태와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됐다. 돌은 집이 되고 길이 되고 외적의 침입을 막는 방어시설이 됐으며, 생활도구와 신앙의 대상이 됐다. 집의 외벽으로 쌓은 축담, 울타리용으로 쌓은 울담, 집과 진입로를 연결하는 올레에 쌓은 올렛담, 밭에 쌓은 밭담, 무덤을 둘러친 산담, 목마장에 쌓은 잣성, 해안의 환해장성이나 진성에 쌓았던 성담, 고기를 잡기 위해 쌓은 원담 등 다양하게 돌담이 만들어지면서 제주도만의 독특한 돌문화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돌담은 산업화·도시화에 따른 개발로 해체되거나 콘크리트와 벽돌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러한 돌담이 최근 제주섬을 대표하는 문화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밭담은 지난해 유엔식량농업기구의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됐고, 돌담학교가 생겨났다. 지난 30일~1일에는 처음으로 밭담축제도 열렸다.

축담 울담 올렛담 밭담 산담 성담…
집이 되고 길이 되고 생활이 됐다

밭담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 불구
개발로 해체되고 콘크리트로 교체
연간 훼손율 11%…곧 사라질 위기
내셔널트러스트운동 등 보존 절실

■ 돌의 섬, 돌담의 역사

② 제주는 돌의 섬이다. 밭과 밭의 경계인 돌담은 밭담이라고 부른다. 제주시 구좌읍 지역은 올망졸망한 밭담이 비교적 잘 남아 있는 곳이다. '고영일이 본 제주의 속살'(리석 고영일 선생 추모사업추진위원회).
② 제주는 돌의 섬이다. 밭과 밭의 경계인 돌담은 밭담이라고 부른다. 제주시 구좌읍 지역은 올망졸망한 밭담이 비교적 잘 남아 있는 곳이다. '고영일이 본 제주의 속살'(리석 고영일 선생 추모사업추진위원회).
“인가의 장벽, 전답의 경계, 도로의 상태를 보면 석다(石多)함을 충분히 알 수 있으니 용회암의 둥굴둥굴한 돌로 장벽을 쌓은 것을 보면 담 쌓는 기술도 무던히도 발달된 모양이다. 전답의 경계뿐만 아니라 목축하는 데도 모두가 석축으로 경계를 삼았다. 그곳 사람 말을 들으면 육지에서보다 신이 3배가량이나 더해진다고 하니 도로의 험악함은 말할 것도 없다.” 일제 강점기 한 여행자는 잡지 <동광> 제23호(1931)에서 제주도에 대한 인상을 ‘돌의 섬’으로 표현했다. 1521년 제주에 유배 왔던 김정도 “돌이 많고 메마른데다 평평한 토지가 절반도 안 돼 농부는 생선 배를 도려내는 듯이 밭을 간다”고 제주의 돌을 설명했다. 하나하나 돌을 치우면서 밭을 갈았다는 얘기다. 조선 중기 어사로 왔던 김상헌(1570~1652)은 제주도의 돌담을 ‘탐라의 만리장성’이라며 “땅속에 몇 치만 들어가도 모두 바위와 돌이다”라고 기록했다.

제주섬의 역사는 돌을 일궈온 역사다. 제주 돌담의 기능과 역사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후기 판관 김구가 약자들의 토지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돌담을 쌓았다는 기록이 전해지는가 하면, 16세기 후반 제주도를 여행한 문신 임제는 “밭을 일구려는 사람들은 반드시 돌담을 둘러야 한다. 사람이 사는 집 또한 으레 돌을 쌓아 높다란 담장을 만들어서 이에 돌담으로 골목이 이루어진다”며 밭담과 울담, 올렛담을 설명하고 있다.

강경희 제주대 강사는 “돌은 생활문화만이 아니라 방어시설 등으로도 이용됐다. 돌의 생활문화를 통해 자신들에게 주어진 열악한 자연환경을 극복하면서 효율적으로 활용했던 제주 선인들의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 돌의 문화, 돌담의 가치

제주에는 ‘돌 틈에서 나고 자란다’거나 ‘돌에서 왔다가 돌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돌문화는 제주사람들의 생활 깊숙이 뿌리박고 있다. 그러나 돌 자체나 돌을 둘러싼 환경의 중요성과 귀중함을 인식하지 못해왔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돌담은 외국이나 한반도의 다른 곳에도 존재하지만 제주처럼 돌문화를 이룬 곳은 드물다. 지난 5월부터 제주시 한림읍에서 돌빛나예술학교를 개설한 조환진(42)씨는 “육지부(육지)의 돌과 제주도의 돌은 종류가 다르고 돌담을 쌓는 방식도 다르다. 제주 돌담은 돌과 돌 사이에 바람 구멍이 있지만 육지는 구멍이 없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억새와 굳건한 검은 돌담의 조화, 구멍 사이로 반짝이는 석양빛 자체가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말했다.

제주대 미술학과(서양화 전공)를 졸업한 그는 2003년께부터 70여년 동안 돌 쌓는 일에 종사해온 부친 조창옥(93)씨한테서 밭담쌓기와 돌집짓기를 배웠다. 지금도 매주 토요일 오전에는 한림읍에서, 오후에는 서귀포에 개설된 예술섬학교에서 돌담쌓기 강의와 실습을 하고 있다. 그는 “돌담과 제주도라는 환경은 너무 자연스럽게 들어맞는다. 인위적으로 쌓은 돌담도 인위적으로 보이지 않고 어디에 갖다 놓아도 자연과 하나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는 “농부들이 밭을 갈다가 돌이 나오면 밭 가운데 돌무더기를 쌓아놓는 것을 ‘머들’이라고 한다. 그곳에 나무도 자라고 여러 가지 식물도 자라는데 그 자체가 아주 자연스러운 조경 역할을 한다. 밭담도 일자로 반듯하지 않고 오르락내리락 구불구불해 곡선미와 높낮이가 아주 자연스럽다. 그것 자체가 미학적이고 예술적이다”라고 덧붙였다.

같은 학과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돌담을 쌓는 김창원(48)씨는 “돌렝이(작은 규모의 밭을 둘러싸고 있는 밭담) 풍경이 멋있어서 돌담에 관심을 갖게 됐다. 대리석은 선이 매끈하지만 제주도 돌은 우둘투둘하고 소박해 자연미가 뛰어나다”고 말했다.

■ 돌담은 과거와 현재, 미래 연결

제주밭담은 지난해 4월 유엔식량농업기구의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됐다. 독특한 농업시스템, 생물다양성 유지 등 유엔식량농업기구가 농업유산으로 지정하기 위한 5가지 기준을 충족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재 밭담이 비교적 잘 남아 있는 지역은 구좌읍과 애월읍, 한림읍 정도다. 2009년 고성보 제주대 교수의 조사 결과를 보면 돌담의 길이는 2만2000여㎞에 이른다. 고 교수는 “연간 훼손율이 11%에 이르고 있어 계속 진행될 경우 돌담이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농업유산 지정에 기여한 강승진 제주발전연구원 박사는 “밭담은 제주인의 삶과 정신이 스며 있는 제주의 상징과 마찬가지”라며 “내셔널트러스트운동 같은 것을 통해 밭담이 잘 남아 있는 곳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매입할 수 있으면 좋겠다. 마을마다 마을공동목장이 있듯이 밭담도 공유화하면 미래에 먹고살 수 있는 자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의 돌문화를 ‘제주사람들이 오랜 세월 함께 생활하면서 생산된 정신적·물질적 문화유산의 총체’라고 정의한 강경희 강사는 “돌담 자체가 가장 제주적인 훌륭한 문화관광자원이 될 수 있는데도 총체적 연구는 미미한 실정이다. 돌문화를 바탕으로 형성된 생활문화와 정신문화는 제주사람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계해 제주지역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중요한 문화자원”이라며 돌문화의 원형발굴과 보존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돌빛나예술학교의 조환진씨도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제주도가 존재하는 한 남는 건 돌이다. 사람들이 제주의 돌담과 돌문화를 보기 위해 많이 찾을 것이다. 돌이 제주도의 보석”이라며 웃었다.

지난 30일부터 1일까지 제주도 주관으로 구좌읍 구좌종합경기장에서 올해 처음으로 밭담축제가 열려 주민들의 관심을 모았다. 이우철 제주도 친환경농정과장은 “제주밭담이 가진 농업유산의 가치를 공유하고 후세에 계승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밭담축제를 했다. 선인들 삶의 지혜를 얻고 제주밭담을 비롯한 돌 유산을 보전·관리할 수 있도록 발전시켜나가겠다”고 말했다.

제주/글·사진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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