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온평리 등 5개 마을에 걸쳐 제주 제2공항이 들어설 것으로 발표된 뒤 지난 15일 오후 신산리사무소에서 열린 마을총회에서 주민들이 제2공항 건설과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르포 l 제2공항 예정지 5개 마을 표정
주민들 “상실감” “뒤통수 맞은 기분”
온평·신산리 “이착륙 소음피해” 우려
“주민 죽이는 공항 결사반대” 성토도
원지사-주민 간담회서 “반대” 분위기
주민들 “상실감” “뒤통수 맞은 기분”
온평·신산리 “이착륙 소음피해” 우려
“주민 죽이는 공항 결사반대” 성토도
원지사-주민 간담회서 “반대” 분위기
“평생 돌멩이 하나하나 가려내면서 감귤원을 일궜는데, 오늘은 밭에 가도 손대지 못허컵디다(못했어요).”
15일 제주 제2공항 예정지로 확정된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에서 만난 강추익(66)씨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강씨는 “공항이 들어설 곳에 4400여평의 감귤원이 있다. 2000여평은 한라봉 시설하우스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씨의 동갑내기 남편 송종만씨의 얼굴에도 수심이 가득했다. “신산리에 공항이 들어선다고 해놓고 온평리 땅이 대부분 들어간 것은 온평리 주민들 모르게 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송씨 부부는 “보상이 문제가 아니다. 상실감이 너무 크다”고 토로한 뒤 “이건 아닌데…”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10일 제주 제2공항 예정지를 전격 발표하자, 공항 예정지가 걸쳐지는 성산읍 온평, 신산, 난산, 고성, 수산리 등 5개 마을은 큰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있다. 특히 제2공항 예정지 495만여㎡(150만여평) 가운데 75%가 포함된 온평리와 이착륙시 소음 피해가 발생할 신산리 주민들의 우려는 점차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원희룡 지사가 제2공항 건설을 앞당기고 주민 피해대책을 세우겠다고 했으나 이날 오후 열린 신산리 주민들과의 간담회는 주민들의 반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원 지사와 주민들과의 간담회에 앞서 오후 2시 열린 마을총회에는 100여명 이상의 주민들이 몰려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
양재봉 신산리 이장은 “공항이 들어서는 지역은 밭과 감귤원이 많다. 아직까지 주민들은 구체적인 정보를 몰라 답답한 상태”라고 말했다. 강원보 개발위원은 “24시간 운영하는 공항으로 만들겠다면서도 결정된 것은 없다고 한다. 이게 말이 되느냐”며 “신산리 주민 다 죽이는 제2공항 결사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승수(73)씨도 “토지가 수용되면 농사짓던 사람들이 뭘 해서 살아가나. 지금은 땅을 살 수도 없다. 소수 주민 피해 운운하는데 소수 주민은 무시해도 되는가”고 되물었다. 마을 사무소 의자에 앉아 있던 강석호(68)씨는 “이착륙 때 소음 피해가 얼마나 심하나? 자손 대대로 살아야 할 땅이 없어지면 누가 감당하나? 에어시티(공항복합도시)는 용역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도지사가 얘기하는 것처럼 에어시티를 건설해서 피해지역 주민들에게 (이익을) 환원한다는 것은 99% 불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희윤(91)씨는 “군사기지가 아닌 이상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이 우선돼야 한다”고 했다.
마을총회가 열리는 도중 밖에서는 “강정마을과는 다르다. 반대 목소리가 높으면 공항이 들어오지 못한다”, “신산리 주민 살지 못허게 되수다”라는 목소리도 들렸다.
성산읍 지역은 다른 지방에 주소를 둔 외지인들의 토지 소유도 많다. 제주도가 제2공항이 들어서는 이들 마을의 토지 소유 실태를 잠정 조사한 결과 온평·신산 등 5개 마을 전체 토지 6851만여㎡ 가운데 외지인 소유는 41.4%로 나타났다. 도민 소유는 47.2%, 나머지는 11.4%는 국·공유지로 나타났다.
국토부가 지난달 27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성산읍은 올해 3분기(7~9월) 지가 상승률이 3.75%로 도내에서 가장 높았다. 이 기간 제주도 전체의 지가 상승률은 2.82%다. 한용택(52) 공인중개사는 “지가가 오르는 것은 공항 때문이 아니라 이주민과 전원주택 구입자 등의 수요 때문이다. 오히려 공항이 들어오지 않고 꾸준히 거래되는 게 낫다”며 “2000~3000평의 밭에서 평생 농사지으면서 살아온 주민들이 대부분인데 대체농지 구입은 어렵다. 주민들로서는 지금 뒤통수를 맞은 기분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원 지사와 주민과의 간담회에서는 공항 건설 반대 분위기가 압도했다. 원 지사가 “소음 피해도 오지만 경제적인 반대급부도 온다”고 했다가 주민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일부 주민들은 “일하다가 작업복 차림으로 왔는데…”라며 실망한 듯 일어나기도 했다.
제2공항 건설이 이들 마을 이외의 지역에는 ‘대박’일지 몰라도, 농지를 내놓고 소음에 시달릴 주민들에게는 절박한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제주도가 여론을 동원해 ‘속도전’으로 밀어붙일 경우 ‘제2의 강정마을 사태’와 같은 갈등이 생겨날 우려도 있다. 이 때문에 “제주도가 치밀하게 후속대책을 세우고 주민들과 끊임없는 대화가 필요할 때”라는 지적이 나온다.
글·사진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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