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재 작가’ 림민씨가 1일 오후 청주 수암골 하늘다방에서 자신이 제작·설치한 연탄재 작품처럼 웃고 있다.
청주 수암골 연탄재 설치 작가 림민씨
연탄재에 글과 그림 넣어 골목 꾸며
청주 노인병원 농성장 등 투어 전시
15일께 1500장 대형 트리 선뵐 예정
“덜 가진 이들께 따뜻한 마음 전할 터”
연탄재에 글과 그림 넣어 골목 꾸며
청주 노인병원 농성장 등 투어 전시
15일께 1500장 대형 트리 선뵐 예정
“덜 가진 이들께 따뜻한 마음 전할 터”
충북 청주 우암산 자락 수암골에 따뜻한 기운이 자라고 있다. 한국전쟁 피난민 판자촌에서 출발해 재개발, 주거환경 개선 등이 이뤄졌지만 여전히 추운 달동네다. 2009년 <카인과 아벨>, 2010년 <제빵왕 김탁구>, 2011년 <영광의 제인>등 방송 드라마가 잇따라 제작된 이후 관광객 발길이 이어지더니 유명 커피전문점과 음식점들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밤엔 휘황하다. 멀리서 보면 성탄 트리 같다. 하지만 다가가 보면 꼬불꼬불 좁은 골목, 쓰러질 듯한 담, 검은 봉지 안에 든 연탄재 등 마을 시계는 여전히 1980~90년대에서 째깍대고 있다.
지난 30일 오후 마을을 찾았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로 시작하는 안도현 시인의 시가 박힌 벽을 따라 비스듬한 골목을 걸었다. 공방 골목 끄트머리, 따스한 햇볕 아래에서 옹기종기 모여 환한 웃음을 띠고 있는 연탄재가 발걸음을 잡았다. 희고 커다란 눈에, 귀에 걸릴 듯한 입꼬리를 한 표정이 재밌다. ‘난 알아 당신도 따뜻한 사람이라는 걸…’ ‘부서지고 깨져도 괜찮아’ ‘그대는 참 소중해요. 눈물이 날 만큼’ 등 연탄재들이 이고 있는 글 또한 정겹다. 타버린 재가 아니라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듯 보기만 해도 얼굴이 달아오른다.
‘삐거덕’ 나무문을 밀었더니 옷 곳곳에 검은 재가 묻었어도 얼굴은 뽀얀 이가 연탄광 안에서 나타났다. 연탄재 작가 림민(37)씨다.
그는 2012년 봄 마을에 들어와 연탄재에 따뜻한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처음엔 벽화(그라피티)를 그렸다. 수암골 명물 천사 벽화도 그의 작품이다. “마을에 들어온 해 늦은 봄 옆집 할머니 집 앞에 연탄재가 나왔길래 재미로 ‘간밤에 따뜻하셨죠’란 글과 연탄재에 그림을 그려놨는데 며칠이 지나도록 그 자리에 있더라구요. 그때 쓸모없이 버려지는 연탄재도 소통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죠.”
이후 그는 연탄재에 표정을 넣고 글을 얹어 마을 곳곳에 설치했다. “재미있다” “기발하다” “따뜻하다”는 칭찬이 이어졌다. 그렇게 연탄재 거리 설치작가가 됐다. “집과 공방에서 쓰는 연탄, 수암골에서 나오는 연탄만 해도 재료는 충분해요. 버려지는 재로 작품을 하니 친환경적이지요. 단단하게 굳히고, 말리고, 그리는 공정을 거쳐야 하니 좀 손이 가죠.”
지금은 연탄재 작품으로 전국 투어도 하고 있다. 광주 금남로, 충남 공주, 세종, 대전, 충주, 경북 상주 등에 작품을 설치했다. 공중전화·육교·계단·거리 등에 설치했다가 누군가에 의해 처리되거나 사라지면 그뿐이다. 지금까지 3000여점이 제작돼 거리에서 시민들을 만났다. 경기 평택 쌍용자동차 집회 현장과 청주시청 앞 청주시노인전문병원 노조 천막농성장 앞에 각각 70여점을 전시하기도 했다.
그는 연탄재 트리를 준비하고 있다. 우선 청주시노인전문병원 노조원들이 ‘원직 복직과 고용 승계’를 주장하며 200여일째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청주시청 앞에 3일 트리를 설치할 참이다.
수암골엔 연탄재 3000장으로 트리를 세울 참이다. 수암골 원주민 1호 커피점 ‘하늘다방’이 문을 여는 데 도운 이웃 등에게 보답하고, 청주시민·관광객 등을 위한 선물이기도 하다. 1500장 규모의 대형 트리를 하나 만들고, 100장 안팎의 크고 작은 트리 10여개를 수암골 곳곳에 설치할 참이다. 15~16일께 따뜻한 연탄재 트리 불빛을 만날 수 있다.
주간지 <충청리뷰>등이 나서 크라우드펀딩(사회관계망을 통한 소액 모금) 형식으로 제작비를 모으고 있다. 모금에 참여한 이들의 이름과 소원도 연탄재에 담는다. 지금까지 100여만원이 모였으며, 1500만원이 목표다. 물론 모금이 넘치면 주민들에게 나눠줄 참이다.
“덜 가진 이들에겐 유난히 추운 겨울입니다. 함께하지 않으면 더 추울 테니까 모두의 따뜻한 마음을 모으려 합니다.”
글·사진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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