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무지개 한글학교 학생들이 지난달 청주시 미원면 미원 돌봄교실에서 한글을 익히고 있다.
청주시 평생학습관 제공
청주 한글학교 어르신 90명 수료
시화·학습자료 전시…시 낭송도
시화·학습자료 전시…시 낭송도
“‘늙어서 주책 아녀?’ 하는 것 같아 검은 봉지에 책과 공책을 숨겨 가지고 아들 며느리 몰래 다녔다. 공부하는 날이 기다려진다.”
안동예(79)씨가 쓴 ‘한글공부’란 시의 한 부분이다. 안씨는 2일 오후 충북 청주시 평생학습관에서 열린 은빛 무지개 한글학교를 수료했다. 은빛 무지개학교는 청주시 평생학습관이 안씨처럼 한글을 모르는 이들을 가르치는 문해학교다.
이날 안씨와 함께 90명이 수료했다. 수료생 가운데 100살을 앞둔 고순복(96) 할머니도 있다. 이들은 지난 4월부터 청주 옥산2리, 가덕면 내암리, 낭성면 추정1리, 오송읍 쌍청2리, 낭성면 관정2리 경로당과 미원면 미원 돌봄교실 등 여섯 곳에서 공부했다. 일주일에 두 차례, 네 시간씩 한글을 익혔다.
학생대표 정춘자(73)씨는 “한글학교는 행복한 배움터였다. 나이 들어 공부하는 게 어려웠지만 공부할 수 있어 행복하고 즐거웠다. 까막눈 졸업하고 휴대폰 문자도 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졸업식장은 축제장이었다. 졸업생들이 직접 쓰고 그린 시화가 걸리고, 손때 묻은 책과 글씨 등 학습자료들이 전시됐으며, 시 낭송 등이 이어졌다. 시화들에는 오자가 더러 눈에 띄었지만 저마다 인생이 배어 있다. 홍순례(86)씨는 ‘내 인생의 끝자락에서’라는 시에서 “열매를 위해 아품(픔)을 참고 사는 너는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우리 인생 같구나”라고 했다.
수료생들에게 한글을 깨친 즐거움을 물었더니 ‘손녀 숙제를 봐줄 수 있다’ ‘은행에 갈 수 있다’ ‘버스가 두렵지 않다’는 등의 대답이 나왔다. 하지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가 단연 최고였다.
한용환(63·전직 교사) 한글학교 교사는 “중고생들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수업에 열심이어서 무척 보람 있었다. 스마트폰을 쓸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들을 땐 뭉클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시는 내년 2~11월에는 한글교실 중급 교실을 운영할 참이다.
청주시 평생학습관 노향희씨는 “대부분 어려운 형편 때문에 한글을 깨치지 못한 어르신들에게 생활의 자신감을 드렸다는 게 가장 큰 보람이다. 성인 문해 사업을 적극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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