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대 학생·교수·노조·동문 등으로 이뤄진 ‘청주대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달 10일 청주 시내에서 거리행진을 하며 김윤배 청석학원 이사의 퇴진과 관선이사 파견을 촉구하고 있다.
지역 현장 I 끝모를 청주대 사태
청주대가 시끄럽다. 1946년 개교해 70년을 맞은 청주대는 ‘한수(한강) 이남 최고 사학’으로 불리던 충북 대표 사학이다. 하지만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정부 재정지원 제한 대학이라는 ‘부실 대학’ 꼬리표를 단 뒤 혼란스럽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분규가 해결되지 않으면서 ‘충북의 상지대’라는 비아냥까지 듣고 있다.
적립금은 3천억 가까이 쌓고
2년 연속 ‘부실 대학’ 꼬리표
본관엔 “김윤배 퇴진” 내걸려 청암·석정 형제가 청석학원 설립
후손인 김윤배, 부친 김준철 이어
13년간 총장하다 작년말 ‘이사’로 학생·교수들 “이사진 퇴진” 압박
횡령 혐의 재판중인 김 이사
금고이상 형 나오면 물러나야 ■ 안갯속 청주대 지난 11일 우암산 자락의 청주대를 찾았다. 자욱한 안개와 함께 교문부터 이어진 펼침막들이 눈에 들어온다. ‘김윤배 이사의 섭정에 대학 경쟁력은 떨어져만 갑니다’ ‘학생 등쳐 3천억원 학교 망쳐 부실대학’…. 앙상한 플라타너스 사이에 걸린 펼침막은 두 팔 벌린 인간띠처럼 서로를 애절하게 잇고 있다. 지난해 8월 이후 펼침막은 청주대의 상징처럼 나부끼고 있다. 교문에서 100m 남짓 걸었더니 웅장한 동상이 맞는다. 청암 김원근(1886~1965), 석정 김영근(1888~1976) 형제다. 형제는 1924년 대성학원을 세우는 등 청주대·대성고·청석고·대성여상·대성중·대성여중·대성초 등 7개 학교를 둔 청석학원(옛 대성학원)을 창학했다. 친일 논란 속에서도 교육·육영 사업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본관에는 ‘김윤배는 퇴진하라’는 대형 걸개가 붙어 있다. ‘김윤배’(56)는 청암 김원근의 손자다. 아버지 김준철(1923~2011) 전 총장에 이어 2001년 총장에 취임해 13년 동안 총장을 하다 지난해 말 물러났다. 지금은 청석학원 이사다. 학생 등은 대학 부실의 뿌리라며 이사직을 내놓고 학교를 떠나라고 압박하고 있다. 낮 12시 난데없이 사이렌이 울렸다. 붉은 조끼를 입은 70~80여명이 본관 앞에서 “김윤배 퇴진”을 외치며 15분 남짓 집회를 했다. 본관 벽엔 ‘김윤배 퇴진을 위한 범비상대책위원회 천막농성 450일차’라고 쓰여 있다. 박용기 노조위원장은 “지난해 부실대학 지정 뒤 날마다 정오와 오후 6시 두 차례 집회를 했다. 1000회 가까이 됐다. 줄기차게 김윤배 퇴진을 외치고 있지만 답은 없다”고 말했다. 직원 145명 가운데 91명이 노조에 가입했고, 지난해 9월 이후 늘 붉은 조끼를 입고 일한다. 본관 앞엔 대형 천막 네 동이 설치돼 있다. 총학생회·교수회·노동조합·동문회 등은 지난해 9월 ‘청주대 정상화를 위한 범비상대책위’를 꾸리고 이곳에서 농성 중이다. 교수 290명 가운데 152명이 교수회에 참여하고 있다. 본관 안에 들어서자 담화문, 성명서, 스티커가 닥지닥지 붙어 있다. ‘총장의 자랑소리 높아질 때 학생들 눈물 떨어지고, 총장의 욕소리에 원성소리 높아간다….’ <춘향전>에서 이몽룡이 변사또 앞에 읊은 ‘금준미주 천인혈…’을 빗댄 시다. 한 직원은 “등록금 올려서 건물 짓고, 적립금 쌓은 것 외에 달리 한 일이 없는 김윤배 전 총장을 비판하는 글”이라고 말했다.
■ 이사회에 후손 1명을 더 참여시켜라 분규는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교수회 등은 1994~1996년 김준철 전 총장의 횡령 의혹을 제기했고, 교육부·감사원 등이 나서 특별감사를 벌였다. 김윤배 전 총장이 들어설 때도 진통을 겪었다.
한동안 잠잠했던 학교는 지난해 8월말 다시 분규사학이 됐다. ‘한수 이남 최고 사학’인 줄 알았던 청주대가 교육부 평가에서 2년 연속 부실대학으로 떨어진 충격은 컸다. 교수·학생 등 학내 구성원뿐 아니라 동문·시민단체까지 나서 총장과 이사진 총사퇴를 요구했다.
도종환 국회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낸 ‘2013년 적립금 보유 현황’ 자료가 기름을 부었다. 자료를 보면, 청주대는 2928억여원을 적립해 전국 4년제 사립대 154곳 가운데 6위, 지방대 가운데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학생 1인당 교육비는 107위, 전임교원 확보율은 88위, 장학금 수혜 현황은 108위였다. 도 의원은 “정부 재정지원 제한대학 선정 8가지 지표 중 3개 지표는 대학의 투자에 따라 변할 수 있지만 청주대는 교육여건 개선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대학 쪽은 부랴부랴 ‘2017년까지 적립금 800여억원 투자, 전국 4년제 대학 상위 30% 진입’ 등의 대책을 내놨지만 허사였다. 학생·교수·동문 등은 학교에서 세종시 교육부 청사까지 100리(40㎞)를 걸어가 “김 총장을 퇴진시키고, 관선이사를 파견하라”고 촉구했다. 학생들은 수업을 거부했고, 교수들은 총장실을 점거했다.
4개월째 요지부동이던 김 총장은 지난해 12월24일 사퇴했다. 하지만 사태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총장 최측근으로 분류된 황신모(61) 부총장이 총장에 선임되고, 김 전 총장은 청석학원 이사 신분을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이다.
■ 청암·석정 정신으로 돌아가자 황 총장 체제가 시작되자 ‘섭정’ ‘아바타 총장’ 논란이 일었다. 박명원 총학생회장은 지난 4월 김 이사와 황 총장의 동반 사퇴를 촉구하며 15일 동안 단식했다. 박 회장은 “김 이사가 허수아비 총장을 세우고 여전히 학교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그가 학교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야 대학이 정상화된다”고 말했다. 황 총장도 8개월여 뒤 이사회에서 버림받았다. 그는 “정성봉 이사장과 김 전 총장의 자진 사퇴 압박을 받았다”며 김 이사의 학원 개입을 폭로하기도 했다.
분규사학 대부분이 설립자 후손 등의 학교 경영 배제를 주장하지만, 청주대는 동문·교수 등이 또 다른 설립자 후손의 이사회 진입을 촉구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김 이사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뜻이다.
비대위는 ‘석정계(김영근 선생) 후손 이사 참여’를 주장하고 있다. 경청호(62) 총동문회장은 “김준철·김윤배 부자로 이어진 청암계의 독단·무능 경영을 바로잡으려면 창학 정신에 따라 석정계를 참여시켜 균형과 견제를 이뤄야 한다”고 밝혔다. 박찬정 교수회장은 “오죽하면 이런 제안까지 했겠냐”고 했다. 비대위는 형제가 공동으로 학교를 세운 근거(대성60년사)와 ‘이사는 김원근·김영근계 자손으로서 각각 그 집의 호주인 자 2인’이라고 명시된 청석학원 설립 당시 정관 문서까지 제시했다. 하지만 청석학원은 “해묵은 설립자 후손의 경영권 싸움으로 변질됐다”며 잘랐다.
석정계인 김경배(59·한국종합건설 대표)씨는 “학교를 경영하려는 욕심 때문에 이사 참여를 바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독단 운영으로 파탄 지경에 이른 학교가 바로 섰으면 하는 바람뿐”이라고 말했다.
청암·석정계의 화합은 쉽지 않아 보인다. 석정 동상 건립문에는 ‘형과 함께 대성학원을 세우니…’라고 쓰여 있지만, 형인 청암 동상에는 ‘청주대학교를 단독으로 창립 경영하여…’라고 돼 있다.
■ 시계 제로 청주대 재판으로 일단락? 총학생회는 지난 9월25일 학생 91% 찬성으로 김 이사 등 경영진 총사퇴를 다시 결의했다. 지난달 10일에는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등과 함께 거리행진을 하며 김 이사 사퇴 등을 촉구했다.
김 이사는 업무상 배임·횡령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총장 시절인 2011년 아버지 김준철 전 총장의 영결식 관련 물품대금 4800여만원 등 학교 돈 2억원을 횡령하고, 2012~2014년 대학이 금융기관 5곳에서 받은 기부금 6억7500만원을 법인 계좌로 받아 청주대에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3일 청주지법에서 진행된 첫 공판에서 김 이사는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사립학교법은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학교법인의 임원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박찬정 교수회장은 “재판이 분수령이 될 것이다. 김 이사가 학교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순간 청주대 정상화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안효석 청석학원 총무과장은 “김 이사는 이사회 말고는 전혀 학교에 나오지 않고 있다. 경영에 손을 뗀 지 오래다. 무슨 근거로 김 이사의 학교 경영 주장을 펴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2년 연속 ‘부실 대학’ 꼬리표
본관엔 “김윤배 퇴진” 내걸려 청암·석정 형제가 청석학원 설립
후손인 김윤배, 부친 김준철 이어
13년간 총장하다 작년말 ‘이사’로 학생·교수들 “이사진 퇴진” 압박
횡령 혐의 재판중인 김 이사
금고이상 형 나오면 물러나야 ■ 안갯속 청주대 지난 11일 우암산 자락의 청주대를 찾았다. 자욱한 안개와 함께 교문부터 이어진 펼침막들이 눈에 들어온다. ‘김윤배 이사의 섭정에 대학 경쟁력은 떨어져만 갑니다’ ‘학생 등쳐 3천억원 학교 망쳐 부실대학’…. 앙상한 플라타너스 사이에 걸린 펼침막은 두 팔 벌린 인간띠처럼 서로를 애절하게 잇고 있다. 지난해 8월 이후 펼침막은 청주대의 상징처럼 나부끼고 있다. 교문에서 100m 남짓 걸었더니 웅장한 동상이 맞는다. 청암 김원근(1886~1965), 석정 김영근(1888~1976) 형제다. 형제는 1924년 대성학원을 세우는 등 청주대·대성고·청석고·대성여상·대성중·대성여중·대성초 등 7개 학교를 둔 청석학원(옛 대성학원)을 창학했다. 친일 논란 속에서도 교육·육영 사업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본관에는 ‘김윤배는 퇴진하라’는 대형 걸개가 붙어 있다. ‘김윤배’(56)는 청암 김원근의 손자다. 아버지 김준철(1923~2011) 전 총장에 이어 2001년 총장에 취임해 13년 동안 총장을 하다 지난해 말 물러났다. 지금은 청석학원 이사다. 학생 등은 대학 부실의 뿌리라며 이사직을 내놓고 학교를 떠나라고 압박하고 있다. 낮 12시 난데없이 사이렌이 울렸다. 붉은 조끼를 입은 70~80여명이 본관 앞에서 “김윤배 퇴진”을 외치며 15분 남짓 집회를 했다. 본관 벽엔 ‘김윤배 퇴진을 위한 범비상대책위원회 천막농성 450일차’라고 쓰여 있다. 박용기 노조위원장은 “지난해 부실대학 지정 뒤 날마다 정오와 오후 6시 두 차례 집회를 했다. 1000회 가까이 됐다. 줄기차게 김윤배 퇴진을 외치고 있지만 답은 없다”고 말했다. 직원 145명 가운데 91명이 노조에 가입했고, 지난해 9월 이후 늘 붉은 조끼를 입고 일한다. 본관 앞엔 대형 천막 네 동이 설치돼 있다. 총학생회·교수회·노동조합·동문회 등은 지난해 9월 ‘청주대 정상화를 위한 범비상대책위’를 꾸리고 이곳에서 농성 중이다. 교수 290명 가운데 152명이 교수회에 참여하고 있다. 본관 안에 들어서자 담화문, 성명서, 스티커가 닥지닥지 붙어 있다. ‘총장의 자랑소리 높아질 때 학생들 눈물 떨어지고, 총장의 욕소리에 원성소리 높아간다….’ <춘향전>에서 이몽룡이 변사또 앞에 읊은 ‘금준미주 천인혈…’을 빗댄 시다. 한 직원은 “등록금 올려서 건물 짓고, 적립금 쌓은 것 외에 달리 한 일이 없는 김윤배 전 총장을 비판하는 글”이라고 말했다.
지난 11일 청주대 설립자인 청암 김원근, 석정 김영근(오른쪽부터) 선생의 동상 뒤로 본관에 걸린 김윤배 청석학원 이사 퇴진을 촉구하는 펼침막이 보인다. 김 이사는 청암의 손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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