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자부, 제주도에 첫 공식요청 공문
도 “서면합의”…29일까지 결과 제출
유족들 “사실상 재심의 수순 의심…
보수단체의 ‘4·3흔들기’ 편들어” 비판
도 “서면합의”…29일까지 결과 제출
유족들 “사실상 재심의 수순 의심…
보수단체의 ‘4·3흔들기’ 편들어” 비판
정부가 제주4·3희생자로 결정된 일부 희생자들에 대해 사실조사를 요구해 파문이 일고 있다. 그동안 보수단체들이 재조사를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점을 고려하면 이번 사실조사가 사실상 희생자에 대한 ‘재심의’ 수순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5일 제주도의 말을 들어보면, 행정자치부는 지난해 12월23일 제주도에 ‘제주4·3 민원해결을 위한 사실조사’ 공문을 보내 제주4·3평화공원 위패봉안소에 모셔진 희생자 53명에 대한 사실조사를 요청했다. 도는 오는 29일까지 사실조사에 따른 결과를 제출할 계획이다.
행자부의 이번 요구는 제주4·3정립유족회가 2013년 7월 4·3희생자 가운데 일부가 남로당 핵심 간부 등이라며 재조사를 통해 위패봉안소에 안치된 이들의 ‘불량 위패’를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민원을 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사실조사를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행자부는 그동안 보수단체의 민원을 이유로 위패 정리 발언을 여러 차례 해왔다. 지난해 1월 제주도를 방문한 정재근 당시 행자부 차관은 “대통령이 제주4·3위령제에 참석하려면 논란이 되고 있는 위패를 정리해야 한다”고 했다.
도 관계자는 “4·3이 다가오는데 조사해서 털 것은 털고, 올해 위령제 행사에 대통령이 올 분위기를 만들자는 것 같다. 총리실 산하 4·3중앙위원회 위원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논란이 일었으나, 지난달 초 (사실조사에 대해) 서면 합의했다. 정립유족회 쪽이 (사실조사 결과에) 승복하겠다고 행자부 쪽에 약속한 것으로 안다. 아주 특별한 상황이 추가로 드러나지 않는 한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4·3단체와 유족들은 이번 사실조사 요구가 희생자에 대해 재심의를 하기 위한 수순 밟기가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정종섭 장관도 “4·3희생자 재심 실시 여부와 그 결정에 따른 재심 절차를 모두 끝내고 논란을 종식하는 게 바람직하다. 희생자로 지정된 일부 인사가 무장대 수괴급이라는 논란이 해소되지 않고서는 대통령의 위패 참배가 어렵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제주도가 행자부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여 사실조사를 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한 유족은 “이런 식으로 사실조사를 하는 것 자체가 유족들의 마음을 후벼파는 것이다. 보수단체들이 마구잡이식으로 희생자 재심의를 요구하며 평화공원에 안치된 위패를 철거하라고 주장하고 있는 마당에 사실조사를 하는 것 자체가 행자부나 제주도가 이들의 주장에 손을 들어준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조사 다음에는 재심의를 요구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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