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전문가들은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도시의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결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해왔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특정 지역의 인기가 많아지면서 임대료가 급등하고, 그에 따라 토박이 상가 세입자 등이 밀려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멜론 대학 진 하프너 박사후과정 연구원은 <가디언>에 실은 글에서 “그렇지 않다”고 설명한다. 그는 “젠트리피케이션은 결국 사람이 만든 일”이라는 하버드대의 퀸톤 메인 조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마치 자연의 법칙이나 과학적 사실로 여길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사람이 만들어낸 일이니 사람이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하프너 연구원이 든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 대선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버니 샌더스 미 연방상원의원이 버몬트주 벌링턴시장이었던 1980년대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해 펼친 시정이다.
그는 챔플레인 호수의 수변 개발 속도를 줄이려 노력했고, 초호화 아파트 단지 개발계획을 막았다. 조례를 통과시켜 개발업자들이 세입자들을 쫓아내는 것을 어렵게 만들어 저소득층을 위한 공영주택(public housing)을 지켰다. 공동체토지신탁(CLT·Community Land Trust)을 통해 거주자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집을 구입할 수 있게 해줬다. 공동체토지신탁이란 비영리조직이 지역 땅을 소유·관리하면서 공동체가 만들어내는 가치를 서로 공유할 수 있도록 한 모델이다. 샌더스는 또, 도심 중심에 있던 거대 슈퍼마켓의 입점 제안을 거절하고, 어니언강 공동시장(지금은 시티마켓)이라는 지역시장을 지원했다.
지역 주민들이 나서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아낸 사례도 있다. 독일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라는 동네에서는 터키인이 28년 간 이곳에서 운영해온 비짐 바칼(Bizim Bakkal·터키어로 ‘우리의 가게’란 뜻)이란 이름의 채소가게가 한 부동산관리회사가 건물 재개발에 나서면서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러자 주민들이 나섰다. 첫 모임에서 150명이 모였고, 매주 모이는 사람이 늘었다. 언론 보도가 끊이지 않았고, 결국 재개발은 물거품이 됐다. 비짐 바칼을 지키기 위해 결성된 모임인 ‘비짐 키츠(Bizim Kiez)’는 이제 젠트리피케이션과 현대화, 쫓겨나는 일을 막기 위한 도전을 계속 벌이고 있다.
서울은 어떨까? 여전히 개발시대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서울 서대문구는 지난 2012년부터 신촌역 5거리 주변 정비를 위해 ‘신촌 도시환경정비구역 지정 및 정비계획 수립’에 나섰다. 서대문구 창천동 18-36번지 등에서 장사를 해오던 상가 세입자들은 이후부터 이곳을 떠날 채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구가 이곳에 호텔이 들어서길 기대하며 관광숙박 복합용지로 지정한 뒤에 벌어진 일이다. 개발 기대감이 커지며 땅값이 급등했고, 건물주가 건물 매각을 원하는 상황이 됐다.
이 건물 상가세입자 비상대책위 이승준 위원장은 “건물주는 원래 건물을 매각할 의사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 호텔을 짓고 싶어하는 서대문구가 정비계획을 세운 뒤 집값이 급등하면서 결국 우리는 쫓겨나는 상황이 됐다”고 강조했다. 서대문구 관계자 역시 “민간에서 먼저 개발을 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대문구의 도시환경정비 계획은 지난 2014년 8월 확정됐다. 하지만 아직 개발하겠다는 사업자는 나오지 않고 있다. 주변 부동산에 따르면 건물 가격은 3.3㎡ 당 4500만~5000만원이었으나, 최근에는 9500만~1억원으로 호가가 급등했다고 알려진다. 한 상가세입자는 “220억원 정도에 건물 매매가 이뤄질 뻔 했다가 건물주가 250억원으로 올리면서 거래가 틀어진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지가가 급등하면서 오히려 개발이 어려워지는 상황이 된 것이다.
과연 서대문구가 원하는대로 개발이 이뤄질 수 있을까? 서울연구원의 보고서 <서울시 상업지역의 밀도 및 용도의 차등 관리방안>은 개발수요가 없는 곳에 상업지역을 지정해준 결과 기대심리 등으로 지가가 3배 가까이 오르고, 결국 개발이 위축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신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동시에 상가세입자들은 큰 피해를 입게 됐다. 그럼에도 이들을 위한 대책은 제시하지 않고 일을 진행했다. 최근의 분위기는 민간이 주도해 개발을 하더라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을 고려해 상생방안을 제출하도록 하는 등 강하게 규제하는 상황이다. 서울시는 최근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성동구는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 등을 만들며 세입자 보호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러나 서대문구는 이 개발사업을 직접 주도했으면서도 상생대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 공공의 책무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것이다. 이 위원장은 “민간에게도 상생요구를 하는 것이 당연한 때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오래된 건물이 즐비한 이곳에 도심정비가 필요한 측면도 있다. 또 그간 진행된 과정에서 절차적 하자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개발시대에 이런 식으로 진행돼온 수많은 도시환경정비사업이 얼마나 많은 부작용을 불러 일으켜왔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해보지 않은 것 같다. 왜 지금에 와서야 도시환경정비사업과 같은 철거형 개발방식에 대한 반성이 나오고,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도시재생이란 방식이 떠오르고 있는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가디언>의 글 그대로 젠트리피케이션은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다. 신촌 젠트리피케이션은 특히나 그렇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음성원 기자 e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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