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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호남의 고단한 기억을 끝내자

등록 2016-02-17 19:50

이야기 담담

20대 총선에서 호남의 선택이 어디를 향할지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명확한 것은 현 정부와 집권여당이 준 고단한 세상살이의 기억을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기억의 선별만큼 기억의 연대가 필요한 이유다.
기억은 선별이다. 모든 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는 것은 무의미하다. 잊어도 좋은 것, 잊을 수 있는 것, 잊어야만 하는 것은 망각된다. 기억의 지나친 하중을 매일 견뎌야만 하는 사람은 삶을 긍정하기보다 삶을 부정하고 급기야 삶을 파괴할 공산이 크다. 삶을 기억에 봉사케 하기보다, 기억을 삶에 봉사케 해야 할 이유다.

다가오는 20대 총선의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부상한 ‘호남정치’와 ‘호남의 선택’은 호남을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기억의 각축장으로 만들고 있다. 야권 분열과 호남 여론의 양분 앞에서 야성의 상징이었던 호남정신이 불려 나오는가 하면, 호남 없는 개혁의 기억을 고발하면서 호남의 욕망을 분출해야 한다는 주장도 들어서 있다. ‘호남 자민련’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과 ‘호남정치의 복원’이라는 불투명한 구호 사이로 해묵은 지역주의의 기억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나름의 명분과 정당성을 갖는 기억이라 하더라도, 기억은 선별이라는 사실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을 위한 선별인가만이 중요할 뿐이다.

‘야권분열이 낭패스럽다’는 반응은 성스러운 호남의 기억이 반복되기를 기대한다. 영남 패권주의를 심판하기 위해서 ‘신성한 호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왜 유독 호남인만이 그들의 삶을 기억에 내다 바쳐야 하는지 의문이다. 호남이 자신의 정치적 욕망을 표출해야 한다는 주장은 옳다. 그러나 ‘세속 호남’의 길은 다양한 진보세력과 함께하는 길이어야 한다. 오히려 호남은 소수 진보정당들을 지금보다 더 많이 욕망해야 한다. 무엇보다 호남정치가 호남의 이익을 대변하는 호남 인물의 정치여야 하는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호남의 차별과 낙후를 시정할 정당의 필요성에 공감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과거 호남이 보여주었던 정치적 선택의 기억마저 지역주의의 제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큰데다, 호남정치 복원을 주도하는 정치인과 그가 속한 정당에 큰 기대가 없어서다. 각각의 사정이 이러하다면 새 정치를 향한 호남의 갈망을 의로웠던 과거 호남의 선택에 대한 배신이라 기억할 이유도, 호남의 정치적 욕망이 굳이 두 보수 야당 가운데 하나를 향할 이유도 없어 보인다. 호남정치가 호남인을 위한, 호남 인물의 정치여야 할 이유도 마땅치 않다.

호남의 선택을 위해 소환당한 기억의 다툼이 또다시 호남을 볼모로 삼으려는 정략적 계산이어서는 안 된다. 지역패권주의의 다툼에 휘말려 지난날의 억울한 기억을 보상받겠다는 심판장으로 끝나는 것도 곤란하다. 전자가 소수에게만 허락된 부와 특권의 기억을 연장하고픈 병든 삶의 꼼수라면, 후자는 차별과 소외의 기억만을 곱씹으면서 지역주의의 망령 속에 삶을 포박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든 기억을 삶에 봉사케 하기보다 삶을 기억에 구겨 넣음으로써 삶을 망가뜨릴 게 뻔하다.

호남을 달구는 기억의 갑론을박에 더 많은 기억들이 뛰어들었으면 좋겠다. 부대낄 기억이 많아지면 삶을 위해 추려낼 기억의 가짓수도 많아진다. 어지러운 기억의 각축장에서 호남의 선택이 어디를 향할지 예측할 수 없지만, 한 가지만은 명확한 것 같다. 현 정부와 집권여당이 준 고단한 세상살이의 기억을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신성호남’이든 ‘세속호남’이든 정치를 삶에 봉사케 하기 위해 망각하고픈 기억 하나만큼은 분명하게 쥐고 있는 셈이다.

김현 전남대 철학과 강사
김현 전남대 철학과 강사
누구도 기억하고 싶은 것만을 기억하려는 습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기억의 선별만큼이나 기억의 연대가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이 기억의 연대가 선별의 필터를 거친 투쟁적 진보의 연대이길 바란다. 그것만이 삶을 짓누르는 기억의 잔재들을 과감히 털어버리고 호남의 기억을 새로 써낼 호남정치의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김현 전남대 철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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