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업씨는 지난해 9월 경기도 수원시의 한 아파트 단지 동대표 회장에 선출된 지 석달 만에 해임투표에 내몰렸다가 주민들의 반대표 덕분에 해임 위기를 넘겼다. 남씨가 해임투표 전 1인시위를 하는 모습. 남기업씨 제공
경기도 수원시의 한 아파트 단지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선출 석달 만에 해임투표에 내몰렸다가 다시 주민들 반대표 덕분에 해임 위기를 넘겼다. 그러자 또다른 주민들이 투표 결과를 공고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결국 수원시가 개입했다. 도대체 이 아파트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1600여가구가 사는 수원의 ㄱ아파트 동대표 회장에 남기업(47)씨가 뽑힌 것은 지난해 9월이었다.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이면서 정치학 박사인 남씨가 동대표 회장에 나선 것은 “생활의 작은 단위에서 제대로 된 변화가 이뤄지고 이런 게 누적되어야 사회 전체의 변화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였다”.
그가 내건 공약은 ‘투명한 아파트를 만들겠습니다’였다. 선거 직전 ㄱ아파트는 아파트 외벽 도색 문제를 놓고 비리 의혹으로 얼룩졌던 상황이었다.
‘동대표 회장’ 남씨가 제일 먼저 한 일은 10월부터 매달 한번씩 열리는 입주자 대표회의 회의 내용을 빠짐없이 아파트 누리집에 공개한 것이었다. 관리소장에게는 매일매일 전자우편으로 일일 아파트 업무도 보고받았다.
하지만 3개월 뒤인 지난해 12월 입주자 대표회의 일부 임원 등이 남씨에 대한 해임발의를 했다. 이를 위해 해임발의 조건인 전체 주민 10분의 1 이상의 서명도 받았다. 아파트 관리소장의 업무방해와 회의록 공개에 따른 대표회의 참가자들의 사생활 침해, 동대표 회장 출마 시 선거 부정 등이 주된 이유였다. 누구나 바랄 것으로 기대했던 ‘아파트 투명관리’에 대한 반기인 셈이었다.
남씨는 “동대표 회장은 관리소장을 감독해야 하는 의무가 있고 회의록 공개는 투명한 아파트 관리를 위해 관리규약상 명시된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투표는 지난 12일 진행됐다. 해임 반대 213명, 찬성 176명으로 신분을 유지했지만, 이번에는 ㄱ아파트 단지 선거관리위원회가 투표 결과를 고시하지 않았다. ‘남씨가 투표 기간 중 허위사실 인쇄물을 전 세대에 무단 우편발송하고 주민들을 회유 강압했다는 등의 이의신청서가 접수됐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수원시는 17일 ㄱ아파트 단지 선관위에 ‘해임투표 결과 공고’ 절차를 이행하라는 행정지도를 내리기로 했다. 시 관계자는 “관리규약상 투표 결과를 공고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지만 이행 여부는 불투명하다.
해임투표 전 1인시위까지 나섰던 남씨는 “국토교통부 조사에서 상당수의 전임 동대표들이 입주민 관리비 2000여만원을 흥청망청 쓴 사실이 드러나자 이를 뭉개고 가고 싶었던 게 나를 해임하려는 진짜 이유로 본다”며 “주민들이 해임 위기의 저를 지켜주었다. 끝까지 투명한 아파트에 대한 주민 바람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홍용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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