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담담
7.9㎞에 이르는 녹지가 도시를 가로지르는 푸른길 공원은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교통 편의를 위해 손댈까 고민한다면, 우리의 미래인 이 길을 현재에 당겨써도 되는가라는 근원적 고민을 먼저 해야 한다
7.9㎞에 이르는 녹지가 도시를 가로지르는 푸른길 공원은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교통 편의를 위해 손댈까 고민한다면, 우리의 미래인 이 길을 현재에 당겨써도 되는가라는 근원적 고민을 먼저 해야 한다
광주도시철도 2호선 사업은 한 도시의 백년대계로서 도시공간의 방향성, 혹은 철학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하지만 이 기획이 돈의 문제에만 매몰된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윤장현 광주시장이 24일 도시철도 2호선 기자회견에서 ‘푸른길 구간을 보존하느라 예산이 증가되지만, 노력을 다해 보전하는 방안도 강구하는 최적의 대안을 도출할 수 있었다’고 언급한 대목은 그래서 더 씁쓸하다. 사실 푸른길은 사업 전체로 보면 작은 문제일 수 있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푸른길, 그리고 도시 속에 비어 있는 장소, 혹은 공원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해서이다.
건축분야의 유력 잡지에 ‘지역건축의 이슈와 현재’라는 기획으로 광주가 ‘광주, 거버넌스의 도시를 꿈꾸다’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다. 요지는 다른 지역에 비해 국가적인 도시개발이나 랜드마크적인 건물 건립이 없었던 지역인 광주가 2000년대 들어 아시아문화전당, 비엔날레, 광주폴리, 마을 만들기 사업 등을 진행하면서 다른 지역에 비해 행정과 시민, 전문가 집단의 거버넌스를 통해 각자의 의견을 전달하고 발전된 안을 도출하는 행위의 ‘능동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떼를 썼고 그 떼가 통하는 도시라는 말일 수도 있으나 그들의 눈에는 거버넌스가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 흥미롭다.
푸른길은 바로 이 능동적인 거버넌스의 대표적 사례다. 도심을 지나가던 폐선 부지 위에 노지와 공원, 자전거도로를 만들자는 청원서를 제출하면서 시작된 푸른길은 많은 시민과 전문가들의 노력으로 어디에도 없는 장소를 만들어냈다. 이 과정에서 얻은 것은 단순히 하나의 공원이 아니라, 광주의 시민사회가 참여하고 토론하며, 합의를 통해 갈등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습득한 경험의 축적이다. 이런 경험은 아시아문화전당의 설계변경과 광주시민회관의 존치 등으로 이어졌다. 창조도시의 핵심이 시민의 참여라는 점에서 광주는 그 토대를 어렵더라도 쌓아가고 있다는 말일 게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 신뢰의 구축이 퇴행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두렵다.
더욱 아쉬운 점은 푸른길을 필요에 따라 다른 무엇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잉여의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우리 공원의 역사는 처음 계획과는 달리 새로 짓거나 세워야 할 일이 생기면 쉽게 가져다 놓는 장소이기도 했다. 광주공원과 중외공원의 현재가 그렇다. 행정과 의사결정의 편의성이 공원을 쉽게 보게 한 것이다.
그러나 공원은 결코 빈 곳이 아니다. 할 일 없이 걸어 다니고 마음대로 앉고, 누울 수 있게 만들어진 곳이다. 미술관이나 공연장, 그리고 꽃과 나무, 하늘은 그 행위들의 중심이 아니라 배경이다. 구경 중 제일은 행복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을 쳐다보는 것이다. 그러다 그들과 동화되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것, 그게 비어 있는 곳에서 기대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장소의 양과 질이 도시의 품격을 결정한다. 정말 문화도시가 되려 한다면 이런 비어 있는 곳이 도시 곳곳에 있어야 한다.
푸른길은 다른 어느 도시에도 없는 길이며 공원이다. 너비 5~26m 안팎에 길이 7.9㎞에 이르는 녹지가 도시 한가운데를 반원 모양으로 가로지르는 독특한 모양의 공원이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만들어 졌다는 자긍심이 녹아 있는 곳이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멋져질 나무들과 쉬기 좋은 그늘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다양한 문화적 행위가 일어나는 곳이다. 푸른길은 현재의 성과를 넘어 앞으로 시행되어야 할 도심재생의 중요한 선례이자 시작점이다. 교통 편의를 위해, 예산 절감을 위해 일부를 손댈까 말까 고민한다면, 이미 우리의 미래인 이 푸른길을 현재에 당겨 써도 되는가라는 근원적인 고민을 먼저 해야 한다.
이효원 전남대 건축학부 교수
이효원 전남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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