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수급 할머니 30년 모은 돈
죽은 딸 다니던 부산대에 기부
대학, 뜻기려 첫 명예학사학위
죽은 딸 다니던 부산대에 기부
대학, 뜻기려 첫 명예학사학위
이아무개(82) 할머니는 남편과 사별한 뒤 혼자 키우던 외동딸이 1980년 부산대 역사교육과에 합격하자 매우 기뻤다. 하지만 딸이 4학년 1학기 때 심장마비로 갑자기 숨지면서 행복은 날아갔다. 할머니는 딸을 그리워하며 밤마다 울었다. 남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등 궂은일은 다 했다. 생활이 늘 힘들었지만, 돈을 아껴 꼬박꼬박 모았다.
할머니는 지난해 12월말 교통사고를 당해 불편해진 몸을 이끌고 재단법인 부산대학교 발전기금(발전기금)을 찾았다. 할머니는 직원한테 “딸의 후배들을 위해 써달라”며 현금 1000만원을 내밀었다. 할머니는 “다른 사람에게 절대 알리지 말아달라”는 당부를 하고 떠났다.
며칠 뒤 할머니는 발전기금에 전화를 걸었다. 몸이 불편해서 직접 갈 수 없으니 집으로 와달라고 했다. 발전기금 직원이 방문했더니 “마지막 비상금인데 국민기초생활수급자한테 지급하는 연금이 다달이 나오니 이제 필요 없다”며 지금까지 모은 쌈짓돈 600만원을 추가로 건넸다.
발전기금은 할머니의 딸이 다녔던 사범대 역사교육과에 1600만원을 전달했다. 할머니의 사연을 전해 들은 역사교육과 교수들과 동문은 할머니의 뜻을 받들자며 기부에 나서고 있다. 할머니의 기부금 1600만원에 더해 24일 현재 2200여만원이 모였다. 역사교육과는 이 돈을 소속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부산대는 26일 전기 학위수여식(졸업식)에서 할머니의 딸한테 명예학사학위 졸업장을 주기로 했다. 명예학사학위 졸업장을 주는 것은 부산대 개교 70년 만에 처음이다.
부산대 쪽은 “유명 인사한테 명예박사학위를 더러 수여했지만 명예학사학위는 잘 주지 않는다. 할머니의 숭고한 뜻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명예학사학위를 수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할머니는 입학 36년 만에 졸업장을 받게 되는 딸을 대신해 졸업식에 참석해달라는 부산대의 요청을 한사코 거부했다. 신분이 드러나는 것을 꺼려서라고 한다. 대학본부는 할머니 집을 가끔씩 방문해 병원에 데려다주고 있는 발전기금 직원을 통해 졸업장을 전달할 예정이다.
발전기금 관계자는 “부엌을 겸하는 좁은 거실에서 잠을 주무실 정도로 형편이 좋지 않으신 할머니가 30여년 동안 모은 쌈짓돈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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