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제주민군복합항(제주해군기지)에서 준공식이 열려, 정박한 이지스함이 축포를 쏘고 있다. 제주해군기지는 함정 20여척과 15만t급 크루즈 선박 2척이 동시에 계류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서귀포/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처절히 싸워온 마을 사람들 허탈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종북’ 오명에 수백억 손배 앞둬
반대운동, 평화운동으로 승화
“주민들 눈물 아직 마르지 않아
우리 마을 평화의 아이콘 될 것”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종북’ 오명에 수백억 손배 앞둬
반대운동, 평화운동으로 승화
“주민들 눈물 아직 마르지 않아
우리 마을 평화의 아이콘 될 것”
제주민군복합항(제주해군기지)이 26일 준공됐다. 2007년 정부와 제주도가 서귀포시 강정마을을 해군기지 건설지로 확정한 이후 9년 만이다. 정부는 국가안보사업임을 내세워 일방적으로 기지 건설을 강행했고, 이에 맞선 강정마을 주민과 활동가들의 저항은 처절했다. 농사와 어로작업밖에 모르던 주민들은 국가안보사업을 방해하는 ‘종북세력’이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햇수로 10년째다. 처음에는 기지 건설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지가 준공된 것을 보니 허탈감이 몰려온다. 투쟁하면서 고생한 데 대한 억울함, 정부와 관, 군에 대한 불신과 적개심이 주민들에게 남아 있다.” 조경철(59) 강정마을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주민들의 정부와 군에 대한 불신은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 “끝난 게 아니다”…평화운동으로 발전
이날 제주해군기지가 완공됨에 따라 주민 등의 해군기지 반대운동은 이제 다 끝난 것일까.
주민들은 허탈해하면서도 “기지가 완공됐다고 끝난 게 아니다”라며 기지 반대운동은 평화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준공식이 열린 이날 오후 1시 해군기지 정문 맞은편 충혼비 앞에서는 마을주민들과 활동가들이 ‘생명평화문화마을 강정’을 선언했다.
이들은 선언문을 통해 “이제까지 그랬듯이 강정은 생명과 평화의 문화가 넘실거리는 마을로 살아갈 것이며, 생명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고향으로 자리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홍기룡 제주도 군사기지 반대 범도민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주민들의 눈물은 아직 마르지 않았다. 기지 건설 저지가 시즌 원(1)이었다면, 시즌 투(2)는 평화운동을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다. 강정마을은 평화의 아이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권일(53)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대책위원장도 “미래세대에게 평화의 감수성을 키워주고,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하겠다. 평화 관련 문화예술활동을 늘려나가겠다”고 말했다.
천주교의 생명평화미사도 계속된다. 이날 오전 해군기지 앞에서 열린 미사 강론에서 김영근 신부는 “이제 본격적으로 평화운동을 시작할 것이다. 군사문화에 물들지 않도록 경계하고, 생명평화를 사랑하자”고 호소했다. 문정현 신부는 “9년 동안 강정을 다녀간 인사들을 생각해보라. 이미 강정의 기지 반대운동이 평화운동으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해군기지 정문 앞에는 강우일 주교(천주교 제주교구장)가 2011년 생명평화미사 강론을 통해 말했던 글귀가 나부끼고 있었다. “강정아, 너는 이 땅에서 가장 작은 마을이지만, 너에게서 온 나라에 평화가 시작되리라.”
■ 연행 재판 벌금…가시밭길 기지반대운동
2007년 4월 강정마을회가 당시 윤태정 마을회장 등 일부 주민들이 참석한 임시총회에서 해군기지 유치 결정을 내리자 제주도와 국방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일사천리로 기지 건설 절차를 밟았다. 나중에 이를 안 주민들이 반대대책위원회를 꾸리고, 같은 해 8월 마을회장을 해임한 뒤 강동균(59)씨를 마을회장으로 선출했다. 강 회장은 해군기지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해서 반대표가 압도적으로 나오자 본격적으로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기지 건설을 둘러싼 9년 동안의 투쟁은 주민들을 투사로 만들었다. 기지 건설 반대운동으로 연인원 700여명에 이르는 주민과 활동가들이 경찰에 연행됐고, 재판에 넘겨져 부과된 벌금만 모두 3억7970만원에 이른다. 건설사들은 주민과 활동가들의 반대로 공사가 지연됐다며 수백억원에 이르는 배상금을 해군에 청구했고, 해군은 구상권 행사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권일 위원장은 “9년 동안이나 싸워온 데 대해 자랑스럽다. 해군기지가 들어서더라도 우리는 예전의 모습 그대로 강정마을을 지키며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 찬반 갈등으로 훼손된 마을 공동체
정부와 해군이 군사기지 건설지를 제주로 결정·추진하면서 숱한 사회적 논란과 함께 나라 안팎의 관심도 불러일으켰다. 1948년 제주4·3사건이 발발한 이후 처음으로 제주 바깥 지역에서 대규모 경찰력이 강정마을에 투입돼 주민들이 거세게 항의했다. 정부와 보수언론들은 제주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과 활동가들을 ‘종북세력’으로 몰았다.
2009년 8월에는 당시 김태환 제주지사에 대한 주민소환투표까지 실시됐다. 미국의 저명한 진보학자인 노엄 촘스키가 기지 건설 반대 입장을 발표하고, <플래툰>으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미국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이 강정마을을 방문했는가 하면 외신들도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집중조명했다. 제주해군기지를 다룬 다큐멘터리 등도 여러 편 만들어졌다.
해군기지가 완공된 이날 강정마을 주민들은 기지 건설을 둘러싼 마을 내 찬반 갈등으로 훼손된 마을 공동체를 걱정했다. 한 주민은 “이번 설에도 마을 합동세배행사에 해군기지를 적극 찬성하는 주민들은 오지 않았다”고 했다. 고아무개(82)씨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조용하던 마을이 시끄러운 마을이 될 것”이라고 걱정하기도 했다.
조경철 강정마을회장은 “마을의 한 초등학교 학생이 해군 아빠를 따라 전학 온 학생에게 ‘우리는 (적대적인 가문인) 로미오와 줄리엣이다’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너무 씁쓸했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정부와 해군이 주민 갈등을 조장하고 있지만, 시간이 가면 자연스럽게 감정이 풀릴 것이다. 9년에 걸친 앙금이 한꺼번에 풀릴 것은 아니지 않은가”라고 덧붙였다.
제주/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26일 새벽 해군기지 공사장 입구에서 강정마을 주민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침묵시위를 하는 동안 상복 차림의 주민이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서귀포/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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