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를 앓고 있던 자산가 ㄱ(81·지난달 사망)씨는 2013년 7월께 이아무개(62·여)씨를 만났다. 이씨는 자신을 한 의료재단 이사장이라며 외로운 치매 노인에게 접근했다.
이어 이씨는 하루가 멀다 하고 집으로 찾아와 건강을 살펴주고 말벗도 해줬다. ㄱ씨는 치매를 앓아 판단력조차 흐린 상태였다. 그러던 중 이씨는, ㄱ씨가 형제들과 상속재산 관련 소송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먼저 얘기를 꺼냈다. 당시 ㄱ씨는 상속받은 재산 중 90억원 대에 달하는 부동산을 놓고 형제들과 소송 중이었다.
이씨는 “나는 사실 박근혜 대통령과 친구다. 원한다면 대법원 판결도 뒤집어 줄수 있다”며 “우선 소송비용을 조달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이씨를 철썩 같이 믿게 된 ㄱ씨는 이씨의 말 대로 “모든 재산을 양도한다”는 내용의 유언장과 양도증서를 만들었다. 이어 같은 해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3차례에 걸쳐 미국으로 건너가 2억6천만원 상당의 펀드 2개를 매각했고, 대금은 이씨의 계좌로 이체했다. 이씨는 이 과정에서 “여생을 돌봐주겠다”고 꾀어 혼인신고서까지 작성해 ㄱ씨를 안심시켰다.
이씨는 혼인 후 멋대로 ㄱ씨의 주소를 옮기고 다섯 차례에 걸쳐 휴대전화 번호를 바꿔가며 자녀들이 연락하지 못하도록 했다. 모두 미국 영주권자인 자녀들은 국내에 들어와 아버지를 만난 뒤 이씨를 의심했지만, ㄱ씨는 되레 이씨를 감싸줬다.
이후 이씨는 또 다른 이아무개(76)씨, 오아무개(61)씨와 공모해, 2014년 9월까지 10여 차례에 걸쳐 ㄱ씨가 살던 서울 종로의 자택과 토지, 충북 진천의 토지, 경기 광주의 토지 등 90억원대 부동산을 처분해, 59억원 상당을 뜯어냈다.
목적을 달성한 이씨는 ㄱ에게 “(형제들과의 소송과정에서)당신의 재산을 지켜주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이라고 꾀었다. 이에 ㄱ씨는 이씨를 상대로 소송을 내 2014년 10월 이혼 조정이 결정됐다. 그후 이씨는 떠나버렸다.
뒤늦게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자녀 등으로부터 첩보를 입수한 경찰은 지난해 10월 정식 수사에 들어가 이씨 등 3명을 모두 붙잡았다. 그러나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안 ㄱ씨는 분통을 터뜨리다 이들이 붙잡히기 전 지난달 중순 삶을 마감했다.
경기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 등의 혐의로 주범 이씨를 구속하고, 공범인 또 다른 이씨와 오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15일 밝혔다.
경찰조사 결과, 주범 이씨와 공범 이씨는 과거부터 부부행세를 하며 사기 행각을 벌여온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이들은 검거 당시 서울 동대문의 고급 아파트에서 함께 살며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한편, 주범 이씨는 빼돌린 ㄱ씨의 재산으로 수도권 지역의 아파트와 땅을 대거 사들이는 등 34억원 상당의 부동산 투자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수원/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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