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현장 l 1년7개월째 갈등 부산시-국제영화제
“일부 영화권력자들이 더 이상 소중한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도록 힘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서병수 부산시장·왼쪽 사진)
“부산국제영화제가 부산시장의 영화제라고 착각하고 계신 것이 아닌지 되묻고 싶습니다.”(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회)
올해로 21회째를 맞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초유의 위기를 맞고 있다. 20년 동안 부산국제영화제를 세계적인 영화제로 함께 키워온 부산시와 영화제 집행위원회가 1년7개월째 정면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결의 실마리는커녕 부산시의 검찰 고발과 법원 가처분 신청에 영화인들의 보이콧 선언까지 이어지면서 10월6~15일 예정된 영화제가 제대로 치러질지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2014년 다이빙벨 상영하려 하자
서병수 시장 “부적절” 발언
집행위, 상영뒤 시의 지도감독 받아
시, 이용관 집행위원장에 사퇴압박 2014·2015년 감사원 감사 뒤
협찬금 중개료·위원장 지시 논란
시, 이 위원장 등 3명 고발 이르러
영화제쪽 “다이빙벨 강행에 보복”
시 “감사결과 따른 후속조처일 뿐”
■ 갈등은 왜 일어났나 2014년 9월2일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회가 19회 영화제 상영작 313편을 발표한 다음날 일부 언론이 그해 4월 발생한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을 주목받는 영화의 하나라고 소개했다. 그러자 보수 성향 인터넷매체가 문제제기를 했다. 세월호 인양 작업이 끝나지 않았는데 희생자 수색 과정에서 논란을 빚었던 다이빙벨과 관련한 영화를 상영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논조였다.
논란에 불을 댕긴 것은 영화제 조직위원장인 서병수 부산시장의 발언이었다. 서 시장은 “<다이빙벨> 상영이 부적절하다”며 담당 간부에게 상영 중단을 지시했다. 집행위원회는 이를 거부하고 그해 10월 열린 영화제에서 상영했다. 전문가들로 꾸려진 선정위원회에서 확정된 상영작이 외부 입김에 취소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부산시는 영화제가 끝나고 두 달 뒤 지도감독을 한다며 영화제 서류를 들여다봤다.
부산시와 집행위원회의 갈등은 지난해 1월 시 고위 간부 2명이 부산역 앞 커피숍에서 이용관 당시 집행위원장(오른쪽 사진)을 만나 “이 집행위원장을 포함한 인적 쇄신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하면서 커졌다. 집행위원회는 “<다이빙벨> 상영 강행에 대한 보복이다. 부산시가 지도감독에서 드러난 일부 지적사항을 트집 잡아 이 집행위원장의 사퇴를 종용했다”며 반발했다. 집행위원회가 집행위원장을 2명으로 늘리는 등 쇄신안을 마련하면서 양쪽의 갈등은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부산시가 영화제 협찬금 중개수수료 집행 등에 의혹이 있다며 이 집행위원장과 전·현 사무국장 등 3명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다시 불거졌다.
양쪽의 관계는 지난달 18일 서 시장이 조직위원장을 민간에 넘기고 동시에 지난달 26일로 임기가 끝난 이 집행위원장을 연임시키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다시 나빠졌다. 이 집행위원장이 퇴임 전에 새로 위촉한 집행위원회 자문위원 68명 대다수를 포함한 106명이 정관 개정을 위한 임시총회를 요구하자 부산시가 ‘신규 집행위원회 자문위원 68명 선임은 무효’라며 부산지법에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한 것이다.
부산시는 “검찰 고발 등은 <다이빙벨>과 무관하다”고 밝혔지만 다수 영화인은 “서 시장이 <다이빙벨> 상영 중단 발언을 하지 않았다면 갈등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 감사원의 ‘표적 감사’ 논란 부산시는 이 전 집행위원장 등 3명을 검찰에 고발한 것에 대해 “감사원이 3명을 고발하라고 통보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집행위원회는 “감사원이 <다이빙벨> 상영을 강행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감사를 했다”고 주장한다. 감사원은 “오해이며 억지”라고 밝혔다.
진실은 무엇일까. 감사원은 2014년 9월22일 특별조사국 직원 2명을 부산시에 보냈다. 본감사에 앞서 기초자료를 수집하는 예비감사다. 본감사는 지난해 1월29일~4월17일 이뤄졌다. 본감사를 기준으로 하면 <다이빙벨> 상영 보복으로 볼 수도 있으나 예비감사를 기준으로 하면 모호해진다. 본감사는 2014년 정부가 지원한 국고보조금과 연구개발비 70조원이 적절하게 사용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전국 주요 자치단체와 정부부처 등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감사원은 해마다 15억원가량의 국비가 지원되는 부산국제영화제 감사를 이전에도 한 적이 있다.
부산시가 이 전 집행위원장 등 3명을 검찰에 고발한 것은 논란을 부를 만하다. 먼저 고발 시점이다. 부산시는 지난해 12월11일 고발을 했는데 감사원으로부터 감사 결과를 통보(지난해 9월8일)받은 지 석 달이나 지나서다. 부산시가 <다이빙벨> 상영에 대한 괘씸죄라는 의심을 자초한 것이다.
또 부산시는 “감사원의 처분을 따르지 않으면 행정·재정 불이익이 있을 수 있어 어쩔 수 없이 고발했다”고 밝혔지만, 감사원은 “처분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행정·재정 불이익은 없으며 법적 구속력은 없다”고 밝혔다. 부산시는 2012년 감사원이 용호만 매립지 용도변경 허가 문제로 공무원 8명의 징계를 요청하자 인사위원회에 회부만 하고 실제 징계를 하지 않은 적이 있다. 이런 선례 때문에 이 전 집행위원장 등을 고발한 것을 두고 부산시가 이중잣대 논란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 감사 결과는?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은 2011~2014년 ㅇ씨라는 인물과 케이블방송 관련업체에 건네진 영화제 협찬금 ‘중개수수료’(총 6105만원)의 불법 여부와 이 전 집행위원장이 이를 지시 또는 묵인했느냐다.
감사원은 2011~2013년 매해 한 차례씩 ㅎ사가 협찬한 총 2억2천만원의 중개수수료 3355만원 가운데 2817만원이 ㅇ씨한테 건네진 점을 주목했다. 집행위원회 사무국은 2개 업체에 중개수수료 3355만원을 지급했는데, 이 업체들은 돈을 받은 당일 또는 이틀 뒤 ㅇ씨의 계좌로 세금 등을 떼고 모두 2817만원을 보냈다. ㅇ씨는 2013년 2월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회 감사를 맡기 이전까지는 시민단체 대표 등을 맡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4년에는 집행위원회 사무국이 협찬금 중개활동을 하지도 않은 케이블방송 관련업체에 2750만원의 중개수수료를 지급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전 집행위원장은 전·현 사무국장으로부터 이런 사실을 보고받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전·현 사무국장은 “이 집행위원장에게 보고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아무개 현 사무국장은 “ㅇ씨가 중개활동을 했다. 시민단체에서 일했고, 2013년 7월엔 집행위원회 감사이다 보니 모양새가 좋지 않다며 중개업체를 통해 중개수수료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ㅎ사는 감사원에 “중개활동을 한 사람이 없었다”고 진술했다.
이 전 집행위원장은 감사원 감사에서 “케이블방송 관련업체에 중개수수료 지급을 지시한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양 사무국장은 “우리와 공동사업을 하기로 했던 케이블방송 관련업체가 우리 조직에서 옮겨간 계약직 직원의 급여를 요구해 중개수수료 형식으로 지급했다. 이 전 집행위원장이 보고를 받고 말렸으나 집행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양 사무국장은 감사원 감사 때 “이 전 집행위원장이 지시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검찰은 지난 24일 이 전 집행위원장을 피고발인 신분으로 처음 소환해 조사했다. 수사 결과에 따라 예술창작의 자유를 위해 이 전 집행위원장의 연임을 주장했던 영화인들과 서병수 시장 양쪽 중 하나는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부산/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서병수 시장 “부적절” 발언
집행위, 상영뒤 시의 지도감독 받아
시, 이용관 집행위원장에 사퇴압박 2014·2015년 감사원 감사 뒤
협찬금 중개료·위원장 지시 논란
시, 이 위원장 등 3명 고발 이르러
영화제쪽 “다이빙벨 강행에 보복”
시 “감사결과 따른 후속조처일 뿐”
지난해 10월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2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부산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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