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갑 선거구에 출마한 후보들이 지난 2일 제주시 민속오일시장을 찾아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제주의 소리> 제공
3선 강창일에 양치석·장성철 도전장
중진론과 변화론 맞불…초접전 양상
제주도에서 가장 큰 오일장인 제주시민속오일장이 선 지난 2일 오후. 오일장의 한 식당에서 일을 하던 70대 중반의 할머니 3명은 “지지 후보가 있느냐”고 묻자 “우린 ‘정치’의 ‘정’ 자도 모릅니다. 우리 같은 할망들이 뭘 알쿠과(알겠습니까)”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것도 잠깐, “투표하러 가실 거냐”는 말에는 “당연히 가야지”라며 슬슬 말문을 열었다.
“끄서(갖고) 오면 일 잘한다는데 강창일은 옛날부터 허는 게 잘허는거 닮아.” “요망지게 뭘 끄서 올 수 있어야지. 미움받지 안 허는 사람이라.” “수더분헌게 호끔(조금) 낫지 안허카(않을까).” 할머니 3명의 마음은 이미 정해진 듯했다.
오일장은 제주시갑 선거구에 출마한 후보들의 유세차량과 인파로 혼잡했다. 저마다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치열한 유세전을 펼쳤다. 후보 가족과 운동원들이 시장을 돌며 일일이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명함을 나눠줬다. “○○○ 후보의 아들입니다”라는 소리도 들렸다.
제주도는 17대부터 19대 총선까지 3연속 야당이 석권한 지역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판세는 요동치고 있다.
제주시갑 선거구는 초접전 양상을 보이고 있어 어느 쪽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선거구에는 출마 선언 직전까지 제주도 농축산식품국장을 지낸 양치석 새누리당 후보와 3선의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후보, 제주도 정책기획관 출신 장성철 국민의당 후보가 나섰다. ‘변화론’과 ‘힘 있는 야당 중진의원론’이 격돌하고 있다.
양 후보는 명함에 원희룡 제주지사와 함께 찍은 사진을 넣었다. 양 후보의 진영에는 김태환 전 지사를 비롯해 공무원 출신들이 대거 참여했다. 고향인 애월읍도 상당한 텃밭이다. 반면 제주4·3연구소 소장과 이사장을 지낸 강 후보는 12년 동안 국회의원을 역임하면서 쌓은 탄탄한 조직과 4·3유족 등을 지지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선거구에서는 역대 총선에서 여권이 분열했지만, 이번에는 야권이 분열한 상태여서 투표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된다.
“국가를 책임지는 국회의원들이 매일 싸워서 실망했다. 제주도가 국회의원 3명밖에 안 돼 전국에서 가장 세력이 약한 곳 아니냐. 국회의원 오래 했다고 공약을 다 지키나. 자주 바꿔야 노력할 것 아니냐.” 야채를 팔던 양택수(65·애월읍 어음리)씨는 “팔은 안으로 굽는다. 양씨나 찍을 수밖에”라고 말했다.
양파를 손질하던 전아무개(66)씨는 서울에서 제주로 이주해온 지 25년째다. 전씨는 “국회의원은 돌아가면서 하는 게 좋다. 하지만 지금 하는 사람(강창일)도 못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전씨는 옆에 있던 친구를 가리키며 “저 사람은 좋아하는 대통령은 박정희지만, 국회의원은 더민주 후보를 찍는다”며 웃었다.
유권자들은 여전히 지지 후보와 정당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는 듯했다. 전북 전주에서 30여년 전 제주도로 이주했다는 김아무개(66)씨는 “지지 후보가 없지만 투표는 꼭 하겠다”며 말을 이어갔다. “왜 비서관들 월급을 안 주나. 그런 사람이 어떻게 큰일을 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인 김씨는 “정당은 국민의당 찍겠다. 신선한 것 같다. 하지만 초선이 국회 들어가면 발언권도 얻기 힘들 텐데 지지 후보를 정하지 못했다”고 했다.
한림읍에서 감귤 4천여평을 재배하는 안아무개(45)씨는 1년에 평균 4천만~5천만원의 소득을 올리지만 올해는 500만원도 안 된다고 불평했다. 그는 “강창일 후보는 일을 잘했다. 하지만 바꿔야 새로운 도전도 있다. 그런데 양치석 후보가 원희룡 지사와 찍은 사진을 보면 안 좋다. 김태환 전 지사가 (양치석 후보를 도와) 선거운동하는 것은 좀 아니지 않으냐. 젊은 세대가 나와야 한다. 지지 후보를 고민 중이다. 공약을 보고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아예 투표를 하지 않겠다는 유권자도 있었다. 과일 판매상인 김아무개(52)씨는 “말로만 하면 뭐 하나. 투표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선거 끝나면 언제 봤냐는 것이 정치인들의 현실 아니냐. 투표장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초접전 양상을 보이는 이 선거구의 민심이 오일장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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