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전북 완주군 봉동읍에 있는 뷔페 새참수레에서 조리사 할머니들이 음식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음식에 정성과 즐거움, 치유의 마음을 담아 보답하겠습니다.”
총선이 치러진 지난 13일 전북 완주군 봉동읍 슬로푸드 뷔페 ‘새참수레’. 오전 11시30분 문을 열자마자 한 가족 10여명이 들어왔다. 가족 나들이를 나온 것 같았다. 정오쯤 되자 1층(46석) 홀이 대부분 손님으로 찼다. 아이들은 식당 옆 놀이방에서 즐겁게 놀았다. 2층(80석)으로 올라가는 고객도 있었다. 직원들은 곧바로 바닥난 음식을 채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부모님과 투표를 마치고 왔다는 이희전(55)씨는 “자연재료를 사용해 믿을 수 있고, 일단 속이 편안해서 탈이 나지 않아 자주 온다. 손님이 많으면 줄을 서야 해 돌아갈 때도 있다”고 말했다. 전주에서 온 천영숙(54)씨는 “지인들과 함께 처음으로 왔다. 일반음식점은 맛이 달고 자극적이지만 여기는 조미료를 안 써 담백하고 집밥처럼 느껴져 만족스럽다”고 칭찬했다. 이 뷔페는 하루 평균 150명 안팎이 방문한다.
새참수레가 다른 음식점과 다른 점은 집밥 같은 맛뿐이 아니다. 이곳에선 60~80대 노인들이 일한다. 전체 직원 13명 가운데 조리사, 카운터 일 등을 맡는 10명이 노인이다. 서빙과 컴퓨터 사무 등만 젊은 직원들이 하고 있다.
이 음식점은 2007년 창립된 완주군 노인 일자리 전담기관 ‘완주시니어클럽’이 운영하고 있다. 처음부터 음식점으로 시작한 건 아니다. 노인들이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친환경 농법으로 농산물을 생산했다. 하지만 생산만으로는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가 없었다. 두부와 김부각, 반찬 사업 등 가공·유통 분야로 확장해 도시락 배달 사업에 발을 디뎠다. 하루 200~300개로 도시락 물량이 늘면서 노인들은 다소 힘이 부쳤다. 최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나온 아이디어가 음식점이다. 2012년 보건복지부의 ‘고령자 친화기업’에 선정되면서 국비 1억2천만원을 종잣돈으로 지원받아 그해 11월 새참수레 문을 열었다. 단순한 음식점 개념을 넘어서, 지역 농산물을 먹거리 재료로 활용하고 노인들한테 행복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게 목표다.
뷔페 새참수레를 찾은 고객들이 음식을 담는 모습.
새참수레는 ‘새참을 실어 나르는 수레’라는 뜻이다. 시골에서 일하는 농민들이 허기를 달래기 위해 새참을 함께 나눠 먹듯이, 할머니들의 손맛이 살아 있는 전통 음식을 주민들과 나누자는 의미를 담았다. 한마디로 지역에서 생산한 로컬푸드, 패스트푸드 반대 개념으로 사람 몸에 잘 맞는 음식인 슬로푸드, 한식이 조화를 이룬 뷔페다.
그래서 친환경 농산물만 식재료로 쓴다. 김밥 식재료에는 고기나 햄·맛살 등 육류·가공식품이 들어가지 않는다. 우리콩으로 직접 만든 두부, 김치·시금치·당근 등 채소로만 만들어 담백하다. 빵도 우리밀을 천연발효시켜 만든다. 특히 단호박을 친환경으로 재배해 만든 호박죽이 일품이다. 한 직원은 “여기 음식은 완주에서 생산하는 건강한 먹거리의 집합체로 보면 된다”고 자랑했다.
가격도 9천원으로 저렴하다. 초창기부터 이 가격을 고수해왔다. 경영이 어려울 때 인상을 하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이윤 극대화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버텼다. 완주시니어클럽 관장 겸 새참수레 대표인 김정은(43)씨는 “경제가 어려울수록 좋은 음식과 싼 가격으로 고객에게 되돌려줘야 한다고 판단해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노인들의 일자리와 소득 창출이 목적인 만큼 가격을 고수했다는 것이다.
동호회 등 단체모임에도 활용돼 문화공간 구실도 한다. 저녁엔 30명 이상 단체손님이 미리 예약하면 모임 장소로 활용할 수 있다. 빔프로젝터 시설 등을 갖춰 동호회 발표나 송년모임이 가능하다. 주민 노은희(46)씨는 “캘리그래피 동호회 모임 공간을 8개월 동안 빌려줘 동호회가 유지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새참수레에서 일하는 노인 10명은 모두 만족한다고 했다. 처음부터 참여해 카운터 일을 맡은 최흥렬(80)씨는 “나이 먹어서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다. 시간을 잘 활용하고 손주들에게 용돈도 줄 수 있어서 좋다. 퇴직한 지 20년이 지났는데 이곳에서 일하면서 자존감이 많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조리사 오미자(67)씨는 “집에만 있으면 게을러지는데 여기서 친구들도 만나 일하고 돈도 벌어서 좋다. 가족을 먹인다는 심정으로 음식을 만든다”고 말했다. 노인들이 일하다 보니 힘든 점이 적지 않다. 점심(오전 11시30분~오후 2시)에만 문을 연다. 일요일과 첫째 토요일에 문을 열지 않는다. 초창기에는 저녁도 했지만 노인들의 체력 조건상 적은 인원으로 감당을 하지 못했다. 직원 이종욱(69)씨는 “일하는 게 즐겁고 좋다. 하지만 손님이 ‘음식이 떨어졌으니 빨리 가져오라’며 무례하게 반말을 해 기분이 상할 때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생각보다 정착을 잘했다. 첫해는 두 달도 안 돼 3천여만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2013년과 2014년에는 4억5천만원 정도의 매출 실적을 기록했고, 지난해 4억7천만원으로 늘었다. 2014년에는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최우수 고령자 친화기업 상까지 받았다. 지난해 고령자 친화기업 공모에 선정돼 지원받게 된 국비 3억원과 군비 1억원으로 다음달엔 완주군 삼례읍 문화예술촌에 2호점을 연다. 문화예술촌은 원래 일제강점기 쌀 수탈의 아픔을 간직한 양곡 창고인데, 완주군이 2013년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꾸어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라 기대가 크다.
김정은 완주시니어클럽 관장은 “우리 시니어클럽은 6개 사업단으로 운영한다. 농산물을 재배하는 영농사업단, 두부·반찬을 만드는 가공사업, 김으로 부각·자반을 만드는 사업, 농산물을 손질·선별해 학교로 납품하는 유통사업 등이다. 이 사업단이 서로 유기적으로 잘 순환하는 구조다. 새참수레는 그런 구조의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시작했고, 노인 일자리를 더 늘리려고 2호점도 준비한 것”이라고 말했다.
2호점 준비 과정에서 터 문제로 사업 승인에 애를 먹어 개점이 늦어지는 등 어려움도 겪었지만, 노인복지에 관심이 많은 박성일 완주군수의 도움으로 문제가 잘 풀렸다. 박 군수는 “100살 시대의 진정한 노인복지는 돈 얼마를 지원해주는 것이 아니다.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일자리를 만들고 이를 통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김 관장은 “고령자 친화기업은 처음에만 사업비를 주고 운영비를 따로 지원하지 않는다. 세제 혜택도 없다. 고령자 친화기업도 종잣돈 지원에 그칠 게 아니라 사회적 기업처럼 세제 혜택과 운영비를 계속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주/글·사진 박임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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