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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때 6·25때 가신 남편·형님…모두 편히 잠드소서”제주 중산간 주민들 ‘합동 추모제’

등록 2016-04-25 23:39수정 2016-04-25 23:39

장전리 ‘조조니모를’에 추모원 세워
4·3희생자 103명·호국 전사자 9명
4·3의 4월 6·25의 25일 합쳐 치러
“함께 기리는 것이 상생·화합 모델”
“4·3 희생자 영령들과 6·25 호국 영령들을 함께 모시는 것은, 억울하게 희생된 경위가 다르고 가해 주체가 누가 되었든 모두 우리 현대사가 낳은 비극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이분들을 함께 기리고 추모하는 것이야말로 상생과 화합의 모델이고 우리들의 소망입니다.”

강성효(64) 장전리 이장은 추모원 설립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25일 오전 제주시 중산간마을인 애월읍 장전리의 ‘조조니모를’ 동산에 들어선 아담한 크기의 추모원에서 뜻깊은 ‘제1회 합동위령제’가 열렸다.

이 동산은 장전리 주민들 대다수가 어릴 때 뛰어놀았던 추억을 간직한 곳이다. 그리고 이날 준공된 추모원은 이 마을 출신 제주4·3 희생자와 한국전쟁 참전 전사자들을 한데 기리기 위한 것이다. 합동위령제는 4·3의 4월, 6·25의 25일을 합쳐 이날 치르게 됐다. 추모원의 위령단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4·3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위령비가, 왼쪽에는 한국전쟁 전사자들을 기리는 충혼비가 서 있다.

이 마을의 4·3 희생자는 103명에 이르고, 한국전쟁 당시 참전했다가 전사한 이 마을 출신 청년은 9명이다. 한국전쟁 참전자를 기리는 충혼비는 원래 1963년 장전마을 재건청년회가 세운 것으로, 추모원에서 남쪽으로 500여m 남짓 떨어진 능선이동산에 박씨 열녀비와 함께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50여년이 지나면서 충혼비가 낡은데다 장소도 비좁아 이전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또 4·3 희생자 위령비도 세우자는 의견이 나와 2014년 9월 마을총회에서 추모원을 조성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같은 해 주민들은 주민참여예산 공모에 응모해 9000만원의 예산을 지원받고, 나머지는 십시일반 주민 모금으로 마련했다. 일부 주민들은 노력봉사로 지원했다.

마을 원로 양용해(85)씨는 “너무 오랫동안 4·3 희생자 영령과 6·25 호국 영령들을 방치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어떻게 죽었든 간에 한데 모셔서 화합과 상생을 이루자는 마을주민들의 총의에 따라 추모원을 조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4·3 당시 숙부를 잃은 양진석(55)씨는 “4·3 유족의 한 사람으로서 이렇게 추모원을 만드니 매우 기쁘다. 처음에는 4·3 위령탑만 세우기로 했다가 (한국전쟁 참전 희생자들도) 한자리에 모시자는 의견이 나왔다. 행정기관의 예산만으로는 부족해 유가족과 마을주민들이 노력 봉사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4·3 당시 남편이 희생됐다는 강갑생(94)씨는 “18살에 시집가자마자 아기 하나 남겨두고 (남편이) 가버렸어. 4·3평화공원에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이렇게 위령비를 세우고 위령제를 지내주니까 눈물이 나게 좋은 게…”라며 말끝을 흐렸다.

너무 어릴 때여서 형님 얼굴도 모른다는 강철수(68)씨는 “형님이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4·3이 일어난 지 68년이 됐는데, 제가 그때 태어났다”며 이렇게 말했다.

“작은 마을인데 4·3 때 100명 이상 희생됐다는 것은 마을에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거죠. 모두 아픈 사람들입니다. 형님은 6·25 전사자이고, 사촌들은 4·3 희생자로 이름이 올라가 있어요. 6·25 전사자는 마을청년회가 충혼비에서 제를 지냈지만, 4·3 희생자는 마을에서 별도로 제를 지내지 못해 안타까웠습니다. 이렇게 모두를 위한 위령제단을 마련하고 위령제를 지낼 수 있어서 말로 표현을 못하겠습니다. 목이 멥니다. 이젠 우리 형님도, 4·3 때 돌아가신 분들도 모두 편안히 잠들 겁니다.”

글·사진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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