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담담
5·18민주묘지 4·3평화공원 등 기존 묘지는 획일적 조성과 커다란 구조물 등으로 권위적 분위기다. 제주현충원은 문화와 역사성이 강조된 평화시설물로 건립돼야 한다. 죽음과 죽은 자에 대한 추모 방식을 고민해야 할 때다.
5·18민주묘지 4·3평화공원 등 기존 묘지는 획일적 조성과 커다란 구조물 등으로 권위적 분위기다. 제주현충원은 문화와 역사성이 강조된 평화시설물로 건립돼야 한다. 죽음과 죽은 자에 대한 추모 방식을 고민해야 할 때다.
정치인들은 사회적 이슈가 있는 시기에 호국선열이 잠들어 있는 묘지를 참배함으로써 대중에게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표출한다. 이번 총선 기간에도 많은 정치인들이 광주 민주화의 상징인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하는 모습이 보도됐다.
10년 전 국립제주현충원 건립 타당성을 검토했던 필자는 5·18민주묘지를 볼 때마다 죽음과 죽은 자를 기억하는 공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곤 한다. 우리나라 국립묘지 대부분이 그러하듯 5·18민주묘지 역시 일정한 위계성과 권위성을 갖는 추모의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망자에 대한 숭배, 존엄에 가치관을 두고 기본적으로 산 자와는 엄격하게 구별되는 전형적인 묘지로 공간화되어 버렸다.
대표적인 것이 망자의 공간으로 향하는 진입 공간, 그리고 중앙에 위치한 두 개의 높은 구조물이 마주 보며 알을 보듬고 있는 듯한 형상으로 조성된 추모탑이다. 기본적으로 수직적 형상물은 권력과 권위의 상징물로 사용돼 왔다. 5·18민주화운동이 갖는 자유와 민주, 평등한 공동체와 같은 대중적인 개념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을 수밖에 없는 형상이기에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오히려 옛 5·18민주묘지가 죽음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공간으로 강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시대와 장소가 다를 뿐 제주에도 죽음과 희생을 기억하고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제주4·3평화공원이 있다. 이곳 역시 공간과 규모, 건축물의 권위적 풍경이 지배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문제 때문에 건립 초기에 논란이 되기도 했다. 죽은 자를 기리는 기념 공간이 갖춰야 할 점은 시설의 규모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아까운 목숨이 정치적 이념 차이와 무모한 전쟁, 정치적 폭력으로 희생됐음을 영원히 잊지 않으며 동시에 다음 세대에 교훈을 전달하기 위한 평화시설물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평화시설물이 미국 워싱턴에 있는 베트남 참전기념관이다. 일반적인 기념관의 상식을 깨고 내부 공간이 없는 단순한 외부 구조물이다. 지면을 따라 서서히 내려가면서 전사한 군인들을 기리는 기념물(각명비)이 관람들에게 전개되며, 이 순간에 기념물 위에 산 자(관람객)의 그림자가 기념물 표면의 죽은 자의 이름 위에 교차함으로써 영혼과의 교감과 추모의 마음이 발생하도록 의도돼 있다. 그리고 산 자는 다시 지면 위로 나가는 공간 구조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립묘지를 들러 보면, 묘지 공간 조성과 묘비 형태, 건축 양식 등에 적잖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대부분의 묘지 조성은 획일적으로 개발하는 형태다. 묘비 형태도 획일적이고, 서열에 따른 차별화 등으로 묘지 분위기가 삭막한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그리고 권력을 상징하는 크고 높은 구조물과 유사한 상징물이 건립된다. 이 때문에 지역문화와 안장자의 특성이 표현되지 못하고, 주변 환경과도 어울리지 않게 된다. 묘지 조성 형태도 문제다. 공동묘지화 형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대규모 묘지화, 봉분묘와 화장묘로 구분되는 거의 동일한 분묘 형태 등의 요인이 큰 것으로 생각된다. 국립묘지든 일반 묘지든 넓은 면적에 높고 큰 상징 구조물이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행정기관이나 시민들의 의식구조를 지배하고 있어서 진정한 추모 공간을 만드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게 현실이다.
수년 전부터 건립 논의가 되고 있는 국립제주현충원은 공동묘지와 같은 기존 국립묘지의 이미지를 탈피해, 문화와 역사성이 강조되는 새로운 개념의 국립묘지로 거듭나야 한다. 스웨덴 스톡홀름 시립 스코그쉬르코고르덴 묘지가 묘지의 공간 구성과 건축물이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듯 국립제주현충원도 문화적 가치를 포함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죽음과 죽은 자, 그리고 희생에 대해 추모하는 방식을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김태일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김태일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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