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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가 모두 지적장애…누가 책임질 것인가

등록 2016-05-22 19:10수정 2016-05-22 19:10

원폭 피해자 2세이면서 피폭 후유증을 앓고 있는 김옥희(가명·오른쪽), 김연희(가명·가운데) 자매와 어머니 박길순씨.
원폭 피해자 2세이면서 피폭 후유증을 앓고 있는 김옥희(가명·오른쪽), 김연희(가명·가운데) 자매와 어머니 박길순씨.
1세대 피해자 자녀 14%가
선천성 기형·유전성 질환
2세대에 엄청난 지원 필요
“일본은 물론 한국 정부도
후유증 대물림 인정안해”
“정말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 것인지…. 살아가기가 너무 무섭소.”

김옥희(가명·54)씨와 김연희(가명·48)씨의 어머니 박길순(78)씨는 22일 “사는 것이 고추보다 맵다더니 정말 그렇다”며 눈물을 훔쳤다.

옥희·연희 자매는 20대 초반까지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며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평범한 아가씨였다. 어느 날부터 지적장애 증세를 보이면서, 더는 사회생활을 할 수 없게 됐다. 언니 옥희씨는 환청에 시달리며 하루 종일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동생 연희씨는 말문을 완전히 닫은 채 방 한쪽 구석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다. 일본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에 피폭돼 후유증을 앓던 아버지는 “몹쓸 후유증을 딸들에게 물려줬다”며 술만 마시며 자책하다 2011년 사망했다. 박씨는 “이 아이들 걱정 때문에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할 것 같다. 내 죽은 뒤에도 우리 아이들이 고생하지 않고 살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했다.

원폭 피해자 자녀들을 지원하는 시민단체인 ‘합천 평화의집’은 올해 초부터 심리치료사를 각 가정에 매주 보내 상담과 치료를 하는 정서치유서비스를 하고 있다. 전진숙 심리치료사는 “언니 옥희씨는 무기력증과 틱 증세 등을 보이고 있지만 꾸준히 재활 치료를 하면 기초사회생활 정도는 가능할 것으로 본다. 동생 연희씨는 언니보다 상태가 심각한데, 그래도 이제는 상대의 말에 조금씩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원폭 피해자의 자녀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피폭 후유증을 앓고 있지만, 한국과 일본 정부 모두 원폭 피해자의 피폭 후유증이 자녀에게 대물림된다는 것이 ‘의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며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당연히 의료혜택 등 지원도 전혀 없다.

그러나 원폭 피해자의 후손들이 의학적으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선천성 질환을 앓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2013년 경남도가 도내 원폭 피해자 자녀 244명의 건강 상태를 조사해보니, 13.9%(34명)가 선천성 기형이나 유전성 질환을 앓고 있었다. 선천성 기형은 귀가 없거나, 손·발·얼굴·폐·심장 등에서 나타났다. 장애인 등록증이 있는 사람은 조사 대상의 9.1%로, 전국 장애인 등록률(5.0%)의 2배에 가까웠다.

지난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서도 원폭 피해자 자녀의 유병률(어떤 시점에 일정한 지역에서 나타나는 그 지역 인구에 대한 환자 수 비율)이 전국 평균에 견줘 수십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은 전국 평균에 견줘 빈혈 88배, 심근경색·협심증 81배, 우울증 65배, 천식 26배, 정신분열증 23배 등이었고, 여성 역시 심근경색·협심증(89배), 우울증(71배), 유방 양성종양(64배), 천식(23배), 빈혈(21배) 등의 유병률이 평균보다 수십배나 높았다.

우리 정부는 원폭 피해자 자녀의 건강 실태는커녕 이들의 수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원폭 피해자 등록을 받아 관리하는 대한적십자사 특수복지사업소 관계자는 “생존한 피해 당사자에 한해 지원관리를 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의 자녀 현황은 파악하지 않고 있으며, 지금까지 파악한 일도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나마 원폭 피해자 자녀들이 피폭 후유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도 2002년 원폭 피해자 2세인 김형률씨가 이를 공개적으로 밝히고서야 우리 사회에 알려졌다. 김씨가 창립한 원폭 피해자 자녀들의 모임인 ‘한국원폭2세환우회’ 쪽은 “현재 회원은 1300여명인데, 전국의 원폭 피해자 자녀는 수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원폭 피해자 자녀라고 해서 모두가 피폭 후유증을 앓는 것이 아니고, 원폭 피해자 자녀라는 사실을 알려봐야 아무런 혜택도 없이 오히려 주변의 거리낌을 받기 때문에, 대부분이 원폭 피해자 자녀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고 밝혔다.

안재은 ‘합천 평화의집’ 총무팀장은 “원폭 피해자 1세대는 모두 70대 이상 고령이라 이분들에 대한 지원은 앞으로 몇 십년 안에 끝나게 된다. 하지만 피폭 후유증이 후손에게 이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원폭 피해자 문제는 끝을 알 수 없는 엄청난 문제가 된다. 일본과 한국 정부 모두 피폭 후유증의 대물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합천/글·사진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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