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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가난한 노인 위한 공공병원, 청주서 왜 사라졌나?

등록 2016-06-05 20:18수정 2016-06-05 20:18

지역 현장 I 청주시노인전문병원 파행1년

위탁업체, 노조원 일방 해고뒤 폐업
조합원들 400일 가깝게 천막농성

“시민 위한 병원 정상화가 목표”
시민들 격려 쇄도…동조단식도

시, 4차례 난항 끝에 운영자 선정
“해고자 고용해 7월 개원 방침”

시민단체 “시 부실관리 파행 원인
시민병원 위한 운영위 설치 해야”
청주시노인전문병원 해고 노동자들이 지난 3일 아침 청주시청에서 청주시노인전문병원 정상화를 촉구하는 손팻말·펼침막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은 날마다 오전·오후 2차례 청주시청 정문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청주/오윤주 기자
청주시노인전문병원 해고 노동자들이 지난 3일 아침 청주시청에서 청주시노인전문병원 정상화를 촉구하는 손팻말·펼침막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은 날마다 오전·오후 2차례 청주시청 정문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청주/오윤주 기자
충북 청주시청 정문 옆 보도 한편에는 1년 넘은 비닐 천막이 있다. 지난해 5월 초 설치된 이 천막은 공공운수노조 청주시노인전문병원 분회가 노인병원 정상화를 요구하는 전초기지다. 권옥자(62) 노조 분회장과 해고 노동자들은 날마다 이곳에서 먹고 자며 초병처럼 천막을 지키고 있다.

지난 3일 392일째 천막의 새벽을 맞았다. 한 평 남짓한 천막 안엔 부탄가스 버너, 색 바랜 냄비와 주전자, 때 묻은 이불, 물, 쌀, 라면, 커피가 가지런하다. 옆엔 ‘에프킬라’ 두 통이 뒹굴고 있다. 차량이 근처를 지날 때마다 천막을 덮은 비닐이 ‘후드득’ 소리를 낸다. 지난 2월 시가 행정대집행에 나서면서 전기마저 끊어 이곳에서 살아내는 게 신기할 정도다.

“어젠 잠깐 눈을 붙였는데 고양이 두 마리가 천막 안에 들어왔더라고. 집에 둔 고양이 생각에 녀석과 눈 마주치다 보니 날이 새더라고. 새벽에 차 소리가 너무 커 잠을 잘 수가 없어. 바퀴벌레며 모기도 많아. 푹 한 번 자보는 게 소원이야.”

노인병원을 위탁운영해온 ㅅ병원은 지난해 5월 노조가 근무 개선 등을 요구하자 권 지회장 등 노조원 60명을 해고하더니, 6월엔 관할 서원보건소에 폐업신고서를 제출했다.

예산 157억원을 들인 공공병원이었지만 시는 손을 쓰지 못했다. 2011년 ㅎ병원이 느닷없이 운영을 포기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함께 일하던 요양보호사 등 직원 110명은 일자리를 잃었고, 가족처럼 지내오던 노인 환자 150여명은 다른 병원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천막은 해고 노동자들의 유일한 희망의 끈이다. 권 분회장은 딱 한 번 천막을 비웠다. 지난 2월 20여일 동안 단식을 하다 분신을 시도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치료를 한 뒤 다시 천막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노조원 1~2명이 번갈아 그와 천막을 지키고 있다.

“아침에 집에 씻으러 갔더니 남편(68)이 ‘혼자 밥 먹기 지겹다’고 해 짠하더라고. 그래도 병원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여기 못 떠나.”

■ 여기는 진주의료원 청주노인병원 사태가 시작되자 제2의 진주의료원이란 비판이 쏟아졌다. 막대한 예산을 들이고도 청주시가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아 사실상 폐원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줄을 이었다. 양준석 ‘행동하는 복지연합’ 사무국장은 “노인병원은 시민 세금이 투입된 공공병원이다. 시의 잘못된 관리 때문에 시민의 병원을 잃었다. 시민을 외면한 진주의료원과 판박이”라고 꼬집었다.

해고 노동자들의 생활은 망가졌다. 매일 아침저녁에 벌이는 청주시청 앞 손팻말·펼침막 시위가 끝나면 ‘알바’를 하는 이들이 여럿이다. 시 외곽 농장에서 토마토를 따거나, 나물을 다듬는 등 시간제 허드렛일로 겨우 목에 풀칠하며 1년을 넘겼다.

아침 8시. 시청 앞은 분주하다. 정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는 이, 못 들어가는 이는 천막이 가른다. 안으로 들어가는 이는 청주시 공무원이고 천막 주변에서 안부를 묻는 이들은 해고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준비한 손팻말, 펼침막을 들더니 자리가 정해진 듯 말없이 자신의 자리에 가 선다. 상복을 입은 노동자도 있다.

“잘 먹고 잘살기 위해 이러는 게 아닙니다. 조금 덜 가진 환자들이 찾던 그 병원에서 그들을 돌보는 제자리만 찾으면 그만이에요.” 9시30분이 되자 손팻말과 펼침막을 접는다. 이들은 오후 5시30분이면 또 그 자리에 나타난다.

그나마 돕는 시민들이 위안이다. 지난 1월 노조의 릴레이 단식 시위에는 시민 115명이 동조단식에 참여했으며, 지난 2월 2차 동조단식에도 김태종·임성재·박종관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등 시민 127명이 엄동설한에 함께했다. 한 전도사는 200만원이 든 봉투를 두고 갔고, 달걀장수는 다달이 달걀을 전한다. 설치 예술가는 ‘연탄재 트리’를 선물했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전국의 희망들이 몰리고 있다. 단식에 참여했던 민에스더(18)양은 “어머니·할머니 같은 분들이 몸으로 하는 말에 답하지 않는 청주시가 원망스럽다”고 했다.

■ 4차 공모 끝 수탁 ㅅ병원이 위탁운영을 포기한 뒤 청주시는 3차례 운영자 공모에 나섰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조례를 고쳐 공모 범위를 청주시에서 전국으로 확대하기도 했지만 적임자를 찾지 못했다. 처음엔 기준에 미달했고, 두번째, 세번째는 수탁하기로 했던 의료기관이 중도 포기했다. 이런저런 이유를 달았지만 해고 노동자들의 고용을 승계할 수 없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지난해 5월 수탁 예정자로 뽑힌 청주병원은 20일 만에 포기했다. 당시 청주병원은 “수탁하기에 적절한 시기가 아니다. 노조와 만나 지금의 노동자만 인정하려 했지만 노조는 상급단체를 끌어들이려 했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핑계일 뿐이라고 잘랐다.

청주시노인전문병원 해고 노동자들이 지난해 5월부터 400일 가까이 지켜온 청주시청 앞 천막농성장.
 청주/오윤주 기자
청주시노인전문병원 해고 노동자들이 지난해 5월부터 400일 가까이 지켜온 청주시청 앞 천막농성장. 청주/오윤주 기자
이후 청주시는 시 안에 있는 의료기관으로 한정한 조례(청주시 노인전문병원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고쳐 전국으로 공모 범위를 넓혔고, 지난해 12월 대전 의명의료재단을 새 수탁 예정자로 뽑았다. 하지만 의명 쪽도 지난 3월 “청주시가 전 병원 노동자들의 고용을 승계해 줄 것을 권고한 것도 부담이었으며, 병원 내부 사정도 생겼다”고 밝혔다. 노인병원을 관리하고 있는 이상섭 청주 서원보건소장은 “병원이 사라졌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지위도 자연 상실돼 고용 승계 의무는 없다. 다만 수탁 협의 과정에서 노동자 우선 고용은 권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고 노동자 고용 승계를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시의 이런 모호한 태도가 원망스럽다.

청주시는 지난달 16일 우여곡절 끝에 청주병원을 청주시노인전문병원의 새 위탁 운영자로 뽑았다. 청주병원은 지난해 5월 2차 공모에서 수탁 예정자로 뽑혔던 곳이다. 청주병원 쪽이 노동자 고용과 관련해 새로운 태도를 보이면서 수탁 협약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조원익 청주병원 행정원장은 “노조·비노조 구분 두지 않고 전에 병원에 근무했던 분들을 우선 고용하려 한다. 병원 운영과 관련해서는 새로 설치될 운영위원회를 통해 방향을 정할 방침이다. 이달 안 협약, 다음달 개원이 목표”라고 말했다. 청주시와 청주병원은 이달 중순께 수탁 협약을 할 참이다.

■ 공공성 담보한 시민병원으로 거듭나야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지난달 31일 연 청주시노인전문병원 관련 시민 토론회에선 공공성 강화가 단연 화두로 떠올랐다. 양준석 ‘행동하는 복지연합’ 사무국장은 “노인병원 사태 장기화는 시가 공공병원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병원 정상화를 위한 운영위원회를 합리적으로 구성·운영하고,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기구를 꾸려야 병원을 빨리 안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청주시노인전문병원 노동자와 시민 등이 노인병원 정상화 촉구 단식농성을 하는 권옥자(왼쪽 둘째) 노조 분회장과 함께 동조 단식을 하고 있다. 권옥자 분회장 페이스북 내려받음
지난 2월 청주시노인전문병원 노동자와 시민 등이 노인병원 정상화 촉구 단식농성을 하는 권옥자(왼쪽 둘째) 노조 분회장과 함께 동조 단식을 하고 있다. 권옥자 분회장 페이스북 내려받음
시의 적절한 개입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준환 충청대 교수(사회복지과)는 “노동자와 수탁자인 청주병원은 조금씩 양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시민의 병원이라는 인식 아래 시가 적절하게 개입해야 한다. 재정 지원 등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두영 충북경제사회연구원장은 “시민의 병원이 1년 이상 문을 닫으면서 시민들의 피해가 너무 컸다. 노인병원 정상화는 노동자나 병원, 청주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에게 공공병원을 돌려준다는 공익성의 회복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주/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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