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전국 전국일반

금단의 땅 이란은 기회의 땅이 될까?

등록 2016-06-14 23:31수정 2016-06-14 23:36

이란 최대 무역항인 반다르아바스항에 정박 중인 배들이 하역을 기다리고 있다.
이란 최대 무역항인 반다르아바스항에 정박 중인 배들이 하역을 기다리고 있다.
[르포] 이란 산업현장을 가다
지난달 30일 이란 남부 호르무즈해협 호르모즈간주 반다르아바스. 인구는 40만명 남짓했지만 이란의 수출입 화물의 60%를 처리하는 항구도시다. 세계의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해협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연결하는 교통·전략상의 요충지다. 반다르아바스의 국제공항, 항만, 조선소 등으로 연결되는 도로엔 트럭과 자동차들이 쉴새없이 오갔다. 이란의 최대 무역 항구도시라는 말이 실감났다.

1979년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친미 성향 팔레비왕조를 무너뜨렸고 2006년 핵무기 개발 의혹을 받아 미국과 유엔 주도의 경제제재를 당한 뒤 올해 1월 이란이 국제사회에 모습을 다시 드러낸 것을 고려하면 반다르아바스 등 산업현장은 나름 발전한 모습이었다.

10여년째 이란에서 무역업을 하는 교민 홍아무개씨는 “이란은 석유와 천연가스 등 자원이 풍부한 나라여서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자급자족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경제제재로 성장이 늦어진 면은 있지만 자생력을 키워왔다”고 말했다.

이날 경제제재가 풀린 이란에 진출하려는 부산 지역 기업인, 부산시 시장개척단과 함께 반다르아바스를 찾았다. 부산에는 조선기자재업 등 조선 관련 기업들이 꽤 있다. 조선·해운업 구조조정과 수주 절벽에 시달리는 이들은 세계시장으로 나온 자원대국 이란에서 돌파구를 찾고 싶어한다.

이란 최대 무역항 샤히드 라자이항
현대상선·한진해운 배들 들락
장비 낡아 하역 속도 ‘답답’
아미니자데 시장 “눈부시게 성장한
부산항 노하우 전수받고 싶다”

‘기회의 땅’에 간 국내업체들
유엔 경제제재로 손해본 ‘악몽’탓
현지 투자에 매우 신중한 태도

이란은 수입아닌 투자 요구
한국은 은행보증 문턱 높아
인프라도 골치…통역자조차 ‘가뭄’
“국내은행 과감한 지급보증을”

과연 이란이 위기에 빠진 국내 조선·해운업계의 기회의 땅이 될 것인가? 이 답을 이란 반다르아바스에 있는 최대 무역항 샤히드 라자이항과 이란 최대 국영조선소인 이소이코(ISOICO) 조선소에서 찾아봤다.

이란 최대 무역항인 반다르아바스항의 종업원들이 지게차와 트럭을 동원해 하역작업을 하고 있다. 하역을 마친 화물들은 이란 내륙과 중앙아시아 등지로 전달된다.
이란 최대 무역항인 반다르아바스항의 종업원들이 지게차와 트럭을 동원해 하역작업을 하고 있다. 하역을 마친 화물들은 이란 내륙과 중앙아시아 등지로 전달된다.
이란 최대 무역항인 반다르아바스항에 정박중인 배에 실을 화물들이 대기하고 있다.
이란 최대 무역항인 반다르아바스항에 정박중인 배에 실을 화물들이 대기하고 있다.
■ 산업현장의 빛과 그림자 반다르아바스 국제공항에서 자동차를 타면 40분가량 걸리는 샤히드 라자이항엔 컨테이너를 실으려는 대형 선박들이 부두에 닻을 내리고 있었다. 대형 크레인의 기사들은 40도에 육박하는 날씨에도 컨테이너를 선적하려고 손을 바삐 움직였다.

정규직 2만여명이 일하는 샤히드 라자이항은 이란 최대 무역항이다. 컨테이너 터미널 9선석에서 하루 최대 1만2000TEU를 처리할 수 있는데 부산신항의 23선석 2만TEU에 견주면 절반 수준이다. 이곳을 출발한 이란의 공산품과 식품 등은 두바이항을 거쳐 3국으로 수출되거나 부산항 등 세계 각국의 주요 항구로 직접 보내지고 수입한 물품들은 이란 내륙 및 이란과 국경을 접한 7개국과 중앙아시아 등지로 전달된다.

이란 최대 무역항인 반다르아바스항의 야적장에 현대상선의 컨테이너들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이란 최대 무역항인 반다르아바스항의 야적장에 현대상선의 컨테이너들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HYUNDAI’(현대)라는 영어가 새겨진 컨테이너들이 컨테이너 야적장에서 선적을 기다리고 있었다. 샤히드 라자이항 관계자는 “샤히드 라자이항의 이용률은 80%대다. 올해 1월 유엔의 경제제재가 해제된 뒤 현대상선·한진해운 등 한국 해운회사들의 배가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샤히드 라자이항의 전반적인 모습은 우리나라 대표 수출항인 부산항의 1980~90년대를 떠올렸다. 하지만 부산항이 휴일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쉴새없이 운영되고 있는 것과 달리 이곳은 주 5일 하루 7~8시간 운영한다. 지게차 등 하역장비도 낡아 컨테이너 하역 속도가 더뎠다. 부산항만의 운영 기술과 첨단 하역장비와 접목하면 선진 항만으로 발돋움할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아바스 아미니자데(46) 반다르아바스 시장은 “샤히드 라자이항은 반다르아바스의 두 개의 항구 가운데 핵심이다. 눈부시게 성장한 부산항의 노하우를 전수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란 최대 국영 조선소인 이소이코의 반다르아바스 조선소에서 오래된 선박들이 수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란 최대 국영 조선소인 이소이코의 반다르아바스 조선소에서 오래된 선박들이 수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란 최대 국영 조선소인 이소이코의 반다르아바스 조선소에 정박한 108호 선박(왼쪽)은 한국 조선업체들이 제작에 참여했으나 유엔의 대이란 경제제재로 80% 공정에서 중단됐다. 이소이코는 이 배를 10여년 만에 완공하기 위해 파트너를 물색하고 있다.
이란 최대 국영 조선소인 이소이코의 반다르아바스 조선소에 정박한 108호 선박(왼쪽)은 한국 조선업체들이 제작에 참여했으나 유엔의 대이란 경제제재로 80% 공정에서 중단됐다. 이소이코는 이 배를 10여년 만에 완공하기 위해 파트너를 물색하고 있다.
샤히드 라자이항에서 자동차로 10여분 떨어진 이란 최대 국영 조선소인 이소이코 조선소 도크엔 새로 짓는 배보다는 수리를 기다리는 낡은 중소형 선박이 더 많았다. 또 작업장의 맨땅 곳곳엔 철구조물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녹슨 정도를 보니 꽤 오래된 것 같았다. 수주를 많이 하지 못해서인지 작업 중인 선박들은 그리 많지 않았고 비어 있는 작업공간이 많았다.

이소이코엔 정규직 2000여명과 비정규직 5000여명이 일한다. 오랜 경제제재로 입은 상처를 확인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108호 선박이다. 10여년 전 우리나라 중소 조선업체들이 핵심기술과 선박부품들을 공급하며 108호를 건조했으나 2006년 유엔이 경제제재에 들어가면서 80% 공정률에서 멈췄다. 이소이코는 나머지 공정을 마무리하려고 했으나 핵심 기술과 설비가 없어서 10여년 동안 배를 방치하고 있다.

■ 수출과 투자…뚜렷한 온도차 이란 정부는 유엔의 경제제재가 해제될 것에 대비해 반다르아바스 항만을 중동의 허브항으로 키우려는 계획을 세웠다. 샤히드 라자이항은 현재 연간 300만TEU인 처리능력을 갑절 이상 늘리기 위해 안벽(배를 대는 공간)을 850m에서 2000m 이상 더 늘리는 공사를 벌이고 있다. 또 외국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반다르아바스 항만 근처 1100만㎡를 특별자유무역지대와 경제특구로 지정해 세금 면제를 하고 있다.

이소이코는 이란 국영 해운사인 이리슬(IRISL)과 이란 국영 유조선회사(NITC)로부터 수주한 정유운반선 등 신규 선박을 직접 만들고 선박 수리작업에도 속도를 내려고 우수한 선박 제조기술을 보유한 외국회사와 합작 투자회사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

이런 이란 정부의 계획은 유엔의 경제제재가 해제된 지 다섯달이 지났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란 선박 제조사들은 선박 수출과 고용 창출을 위해 합작회사와 선박 건조자금을 댈 외국회사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란 진출을 원하는 외국회사들은 선박기술을 수출하거나 선박부품을 이란으로 가져와 계약금을 받고 공정률에 따라 잔금을 받으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 당국이 수출만 하고 투자는 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을 견제하려는 징후들도 나타나고 있다. 국내 선박업체 ㅅ사 대표는 “이란의 한 조선소와 턴키방식의 계약을 하려고 했으나 갑자기 계약금을 절반가량 깎자고 해서 난감했다. 계약을 포기하고 싶지만 앞으로 있을 물량과 연결될 가능성이 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란 최대 국영 조선소인 이소이코의 반다르아바스 조선소
이란 최대 국영 조선소인 이소이코의 반다르아바스 조선소
이란 진출에 나서고 있는 국내 조선·플랜트 업체들은 이란이 기회의 땅이라는 것에는 대부분 공감했다. 하지만 국내 업체들은 이란 현지 투자에는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자금력이 부족한 국내 중소업체들이 은행권 파이낸싱(대출)에 성공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선수금을 지급하는 이란 업체들은 국내 조선업체들이 공사비를 다른 곳에 쓰지 않는 것을 확약받기 위해 국내 은행의 보증을 요구하고 국내업체들도 이란 조선소가 잔금을 지급하지 않을 것을 우려해 수출입은행 등의 보증을 바라고 있지만 은행들의 문턱이 높다.

김재철 원진중공업 대표는 “국내 기업들이 2006년 유엔의 경제제재로 손해를 본 경험이 있어 합작투자를 한다는 게 쉽지 않다. 기술과 장비 수출에도 불안한 면이 많으니 국내은행이 이란 업체와 체결한 계약서만으로 과감히 지급보증을 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란이 도로·통신 등 교역에 필요한 기반시설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란에 선박 평형수 처리장치를 수출하려는 ㈜파나시아의 이수태 대표는 “이란은 페르시아어를 주로 사용하는데 페르시아어를 전공한 통역을 구하기가 힘들다. 이란 정부가 외국자본을 끌어들이려면 기본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산시 시장개척단과 함께 반다르아바스를 둘러본 조성제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은 “이란은 국내 조선·해운업계의 입장에선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나갈 블루오션임에는 틀림없고 새로운 곳에서 수익을 내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투자 결정은 꼼꼼히 점검해서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반다르아바스/글·사진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전국 많이 보는 기사

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 1.

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롤렉스 밀반입하다 걸려…법정구속 2.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롤렉스 밀반입하다 걸려…법정구속

“하늘여행 떠난 하늘아 행복하렴”…교문 앞에 쌓인 작별 편지들 3.

“하늘여행 떠난 하늘아 행복하렴”…교문 앞에 쌓인 작별 편지들

대전 초교서 8살 학생 흉기에 숨져…40대 교사 “내가 그랬다” 4.

대전 초교서 8살 학생 흉기에 숨져…40대 교사 “내가 그랬다”

살해 교사 “마지막 하교하는 아이 유인…누구든 같이 죽을 생각” 5.

살해 교사 “마지막 하교하는 아이 유인…누구든 같이 죽을 생각”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