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계철씨가 지난 23일 디딜방아 등 자신이 평생 모아온 농경 유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평생 모은 농경 유물이니 자식이나 다름없죠. 박물관 지어 제대로 관리·보존한다기에 줬더니 고물처럼 방치하니 속이 터지죠.”
안계철(73·충주시 중앙탑면)씨는 충북 괴산농업역사박물관만 떠올리면 잠을 잘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지난 2013년 5월 50여년동안 전국을 떠돌며 모은 농경 유물 수천여점을 이곳에 기증했다. 2015괴산세계유기농엑스포(2015년 9월 개최)를 앞둔 괴산군이 농업박물관을 짓는다며 그를 설득해 기증이 이뤄졌다.
조선시대 양수기 무자위, 우리나라 최초 정미기, 근대 초기 탈곡기, 따비 등 조선시대 농기구 등 귀한 유물 700여점은 관련 교수 등 전문가 고증을 통해 역사적 가치가 인정돼 보상금 3억원을 받았고, 근·현대 유물 수천여점은 무상으로 기증했다. 5t이삿짐 트럭 14대가 3일동안 유물을 옮겼다. 그는 “임각수 괴산군수가 삼고초려를 했고, 공무원 등이 나서 애걸복걸하는 바람에 유물을 내줬다. 당시 경기 수원, 경북 성주, 강원 속초·영월 등에서 수억원을 약속했지만 가까운 곳에서 박물관을 지어 제대로 관리·보존한다는 말을 믿었다. 아들을 채용해준다고까지 했다”며 기증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아들 채용 약속을 담은 문서를 보여주기도 했다.
군은 지난해 8월 40억원을 들여 괴산읍 검승리에 박물관을 짓고 안씨가 기증한 유물 등을 전시했다. 박물관 2전시실의 농경 유물 86점 등 소장 유물 2300여점 가운데 상당수가 안씨가 기증한 것들이다. 김전수 괴산군 문화관광시설팀장은 “안씨의 기증 유물이 박물관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중요 가치가 있는 것들은 내부에 두고, 덩치가 크거나 가치가 떨어지는 것들은 외부에 뒀다. 수장고에도 상당한 유물이 있다”고 전했다.
유물 기증 뒤 수시로 박물관을 찾은 그는 상당수 유물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안계철씨가 지난 23일 충주시 중앙탑면 자신의 집에서 괴산농업역사박물관의 기증 유물 부실 실태를 설명하고 있다.
지난 23일 만난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조사한 유물 부실 관리 실태 자료집을 보여줬다.두툼한 파일철 5권에는 눈비에 그대로 노출돼 훼손된 유물 사진 등이 그대로 담겨 있다. 그는 유물 기증 뒤 지금까지 18차례 괴산군과 관련 기관에 민원을 제기하고, 8차례 1인시위까지 하며 유물을 제대로 관리해달라고 촉구했다. 그는 “괴산군은 번번이 ‘잘 관리하고 있다’고 하지만 형편없다. 평생 전국을 쏘다니며 논밭 팔아가며 구한 유물에 녹이 슬고, 썩어 문드러져 나가고 있다. 이젠 피가 거꾸로 설 정도”라고 했다.
괴산농업역사박물관 야외체험전시관에 전시돼 있는 농경유물들. 처마 밑에 전시돼 있어 눈비 등에 그대로 노출돼 일부 유물들은 부식이 진행되고 있다.
괴산농업역사박물관 뒤 벽에 전시된 농경 유물. 실내에 있어야 할 장롱마저 처마 밑에 전시돼 있는 등 부실 관리로 상당수 유물들이 훼손되고 있다.
그의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군은 최근 3000만원을 들여 박물관 뒤에 ‘야외추가전시실’을 마련하고 그가 기증한 유물 등을 이곳에 모아뒀다. 지붕은 있지만 비·바람 등에 그대로 노출되는 구조로 전시실이라기보다 야외 창고에 가깝다. 탈곡기·호롱·농·쟁기·저울·옛 전화기 등 200여점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철재 유물들은 대부분 녹이 슬고 부식이 진행되고 있으며, 목재 유물은 곰팡이가 피거나 부서져 있다. 아예 이 공간에서 벗어나 어지럽게 널려 있는 유물도 있다. 박물관 본관 옆 농경문화체험관 유물 가운데 처마 쪽에 전시된 멍석·목재 유물 등은 비·눈 등에 그대로 노출돼 부식이 진행되고 있다. 김전수 팀장은 “안씨의 민원이 지속돼 따로 전시공간을 마련했다. 지금은 제대로 관리·전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괴산농업역사박물관 야외추가전시실. 농경 유물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어 창고처럼 보인다.
괴산농업역사박물관 야외추가전시실. 농경 유물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어 창고처럼 보인다.
괴산농업역사박물관 야외추가전시실. 농경 유물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어 창고처럼 보인다.
하지만 관람객들의 생각은 달랐다. 이곳에서 만난 서아무개(45)씨는 “이건 전시가 아니라 고물상이다. 얼핏봐도 귀한 유물을 왜 이런 곳에 방치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당시 유물 구입에 관여했던 한 공무원은 “괴산유기농엑스포 때문에 급하게 유물을 구입했고 이후 잘 관리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지금은 그 자리를 떠나 지금의 관리 행태에 대해 뭐라 말하긴 어렵다”고 했다.
박물관은 지난해 유기농엑스포 때도 관람객이 찾았지만 아직 공식 개관조차 하지 못했다. 지난 4월에야 겨우 박물관 건축물 등기가 이뤄졌다. 박물관을 관리하는 김영준 주무관은 “건물 등기, 준공 등이 더뎌지고, 아직 공식 개관을 하지 않은 이유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안씨는 “괴산군과 공무원에 대한 내 기대를 이젠 다 포기했다. 하지만 후손들에게 전해져야할 유물이 관리 소홀로 망가지는 게 안타깝고 슬프다. 기증 받을 때는 사정사정 하다가, 관리는 나몰라라하면 누가 미래와 교육을 위해 귀한 유물 등을 내놓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괴산/글·사진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