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구의역 사고 진상조사 결과 시민보고회'에 참석한 시민과 박원순(오른쪽) 시장이 진상규명위원회의 발표를 듣고 있다. 서울시 제공
서울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무에 고등학생 실습생까지 투입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구의역사고 진상규명위원회(진상규명위)는 28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시민보고회에서 이런 내용이 포함된 진상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를 보면, 안전문 유지보수 용역업체인 은성피에스디(PSD)는 2014년 11월부터 공업고등학교 학생을 1, 2주 교육한 뒤 안전문 유지보수 업무 현장에 배치했다. 이들은 안전문을 고칠 때 승강장으로 전동차가 들어오는지 확인하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 서울메트로와 지나치게 낮은 인건비로 용역계약을 맺은 은성피에스디가 2인 1조 매뉴얼을 지키기 위해 실습생까지 활용한 것이다.
진상규명위는 구의역 사고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1997년 이후 정부가 추진한 공공기관 경영효율화 요구에 따라 서울메트로를 구조조정하며 안전업무를 외주화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한 것을 꼽았다. 따라서 외주화를 추진한 정부당국과 서울시의 의사결정권자들, 서울메트로 경영진이 가장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책으로는 ‘위험의 외주화’를 원칙적으로 중단하고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노출된 사업장과 직무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전·재난 총괄기구를 설치하고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부문 역할을 재정립하고 안전감수성 확산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구체적으로 2인 1조가 가능하도록 조직을 진단하고 안전문 정비 업무와 관련한 서울메트로 내규 제정, 감사위원회와 전문가가 함께하는 상설 통합조사기구 설치 등을 세부 대책으로 내놨다.
안전문과 전동차 정보 연계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기술적인 부분을 보완하고 안전문 장애 처리시 열차 진입 중지를 의무화하는 규정을 마련하라고 제안했다.
김지형 진상규명위원장은 “구의역 사고는 누군가의 부주의에 앞서 우리 사회에 내재한 ‘불완전한 안전시스템’이 초래한 필연적인 결과”라며 “이 보고서는 하나의 반성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시민보고회에는 시민, 박원순 시장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자유발언에 나선 대학생 구한결씨는 “구조조정과 ‘위험의 외주화’라는 의사결정을 한 관료집단에 대해 엄정한 조사와 책임 추궁이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원순 시장은 “다시는 구의역 사고와 같은 비극적인 사건이 없도록 근본적인 개선과 변화를 해야 한다는 각오를 다진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돈이 들더라도 반드시 바꾸겠다”고 말했다.
원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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