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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대학의 민주화는 진정한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 보루입니다.”

등록 2016-08-17 18:40수정 2016-08-17 19:34

민주화의 불쏘시개 ‘고현철 부산대 교수 1주기 추모식’
참석자들 “민주주의 지키자”고 다짐
고현철 부산대 교수
고현철 부산대 교수
“오늘 하루만은 교수님을 그리워하렵니다.”

전병학 부산대 교수회장은 지난해 8월 ‘국립대 총장 직선제 사수’와 ‘사회 민주화’를 외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고현철 부산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기리는 추모사를 읽다가 감정이 북받쳤다. 전 회장은 울음을 참아가며 마지막 글을 읽어내려갔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400여명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고 교수의 1주기 추모식이 17일 오후 3시 부산대 장전동캠퍼스 인문대에서 열렸다. 고현철 교수 추모사업회 회장인 조강희 부산대 인문대 학장은 “고 교수님께서 떠나신 지 1년이 됐다. 고 교수님을 잃은 슬픔을 함께 나누고 생명을 던져 전하고자 했던 고 교수님의 깊은 뜻을 되새기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호환 부산대 총장은 “고인은 우리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고 등불이 될 것이다. 이제 대학 자율화와 민주화는 우리들의 몫이다. 대학의 환경이 힘들지만 부산대를 고인이 원했던 올곧고 참다운 대학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고현철 부산대 교수 1주기 추모식 참석자들이 유족의 말을 듣고 있다.
고현철 부산대 교수 1주기 추모식 참석자들이 유족의 말을 듣고 있다.
조해진 부산대 국어국문학과 학생은 추모사에서 고 교수가 남긴 시의 일부 문장을 인용하며 고인을 추억했다. 전병학 부산대 교수회장은 “고인의 숭고한 희생을 발판으로 부산대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직선제로 총장 후보를 선출했고 정부로부터 직선제 총장의 임명을 받아냈다. 전국 대학의 자율화와 민주화 역사에서 커다란 족적으로 기록될 것이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아직도 대학의 자율화는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고 예산을 볼모로 한 교육부의 대학 길들이기는 계속되고 있다. 모든 대학 구성원들과 힘을 모아 대학의 자율을 위해 싸워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송기인 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신부)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지기 전 괴로워하며 기도했던 예수의 고뇌와 고인의 유서 속 ‘무뎌져 있다’는 말을 통해 고인의 죽음 의미를 이해하려 한다”고 말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져야 했던 예수가 유대인 제사장들에게 끌려가기 직전에 기도하며 고민했던 것처럼 고 교수도 독재로 회귀하는 것에 둔감해져 있는 사람들을 일깨우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 얼마나 고민했을지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10여명의 부산대 남성중창단이 장엄한 목소리로 <청산에 살리라>(김연준 작곡)·<내 영혼 바람되어>(김효근 작곡)를 부르자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강미리 부산대 무용학과 맨발로 교수가 고인을 명복을 기리는 춤사위들을 펼치면서 추모식은 1시간여 만에 끝났다.

참석자들은 인문관 앞의 잔디밭에 설치된 고 교수 추모 조형물을 둘러본 뒤 고 교수가 지난해 8월 뛰어내렸던 본관 앞으로가 함께 묵념을 했다. 이어 제1도서관으로 이동해 2층에 마련된 고현철 교수 문고를 둘러보고 돌아갔다.

강미리 부산대 무용학과 교수가 고현철 부산대 교수 1주기 추모식에서 헌무를 하고 있다.
강미리 부산대 무용학과 교수가 고현철 부산대 교수 1주기 추모식에서 헌무를 하고 있다.
중학교 교사인 교수의 아내는 지난해 8월 고 교수의 장례가 끝난 뒤 두 달 동안 휴직을 하고 다시 학교로 복귀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고 교수의 첫째 딸은 회사에 다니고 있고 둘째 딸은 지난해 3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고 교수의 아내인 소경애씨는 “남편이 목숨을 버렸을 때는 대학 민주화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사회 민주화 실현을 바랐을 것이다. 다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부산대가 직선 총장을 선출하고 직선 총장이 임명된 것은 상징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전호환 총장이 힘드시더라도 교수님들과 힘을 모아서 잘 지켜나갔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개개인은 무력하지만 함께 하면 힘을 발휘한다. 오늘 추모식이 남편의 죽음을 기억하고 떠올려서 민주주의를 지켜나가길 다짐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부산대는 직선 총장 선출 뒤 교육부의 재정 압박에 굴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부산대에 지급해야 할 국책사업비 18억7300만원을 삭감했다. 깎인 예산은 장학금 등으로 사용될 예정이었다.

이에 부산대 교수 1200여명은 올해 1월치 급여 가운데 120만원씩 갹출했다. 대학본부는 교수들이 낸 13억4700만원과 다른 사업비를 축소해 마련한 5억2600만원을 보태 교육비가 삭감한 18억7225만원을 충당했다.

전호환 부산대 교수(왼쪽 두번째)와 고현철 부산대 교수의 유족이 부산대 인문관 앞 잔디밭에 마련된 고현철 부산대 국문학과 교수의 조형물을 보고 있다. 조형물엔 고 교수의 유서와 약력 등이 새겨졌다.
전호환 부산대 교수(왼쪽 두번째)와 고현철 부산대 교수의 유족이 부산대 인문관 앞 잔디밭에 마련된 고현철 부산대 국문학과 교수의 조형물을 보고 있다. 조형물엔 고 교수의 유서와 약력 등이 새겨졌다.
교육부의 재정 압박은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2년차를 맞고 있는 학부교육 선도대학 육성사업(ACE)비 22억9700만원 가운데 5억7000여만원(25%)을 삭감했다. 지난해 삭감폭 50%보다는 줄어들었지만 사업내용의 축소가 불가피한 것이다.

대학특성화사업은 지난 2년 동안 지원금을 받았던 3개 사업은 지난 6월 중간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 3년 더 지원금을 받게 됐으나 직선 총장제를 철회하지 않으면 지원금 일부를 삭감당할 것으로 보인다.

대학본부 건물 뒤쪽에 있는 고 교수의 연구실 문엔 여전히 ‘고현철 교수’라고 적혀 있지만 연구실 안은 1년 만에 비워졌다. 고 교수의 손때가 묻은 3000여권의 책은 17일 부산대 제1도서관 2층의 ‘고 고현철 교수 문고’에서 만날 수 있다.

지난해 8월 고현철 부산대 교수가 뛰어내려 숨졌던 부산대 본관 앞에서 추모식 참석자들이 묵념하고 있다.
지난해 8월 고현철 부산대 교수가 뛰어내려 숨졌던 부산대 본관 앞에서 추모식 참석자들이 묵념하고 있다.
고 교수의 죽음을 계기로 직선제로 복귀하려던 국립대들은 아직 고인의 유지를 받들지 못하고 있다. 고 교수가 목숨을 끊은 뒤 총장 임기가 끝난 한국해양대·부경대·경상대·충남대 등 전국 국립대 10여곳이 간선제로 다음 총장을 선출했다. 일부 국립대학 교수회가 직선제를 관철하려고 대학본부를 상대로 싸우기도 했으나 재정 지원 중단 카드를 꺼낸 교육부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꼬리를 내렸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 5월 직선으로 뽑힌 전호환 부산대 총장을 전격 임명하면서 총장을 다시 선출해야 하는 다른 국립대들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열려 있다. 간선제를 고집하던 정부가 여전히 직선 총장 국립대에 재정 불이익을 주겠다고 으르고 있지만 부산대 총장 임명은 직선 총장을 인정하는 선례가 되기 때문이다. 지난 4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 의석이 여당보다 많은 여소야대를 이룬 데 이어 내년 대통령선거에서 야권 후보가 당선되면 교육부의 간선제 방침은 철회될 가능성이 높다.

조흥식 전국 국공립대학 교수회 연합회 상임회장은 “부산시민들이 이번 총선에서 고 교수님의 뜻에 화답하듯이 위대한 민주주의의 성과를 냈다. 1만6000여명의 국립대 교수들은 무뎌지지 말라는 고 교수님의 경종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부산/글·사진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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