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히말라야 히운출리 등정에 나선 직지원정대. 홍정표(앞줄 왼쪽 첫번째)씨와 박종성(뒷줄 왼쪽에서 두번째), 민준영(뒷줄 왼쪽에서 네번째) 등 대원들이 정상 등정에 앞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늦게 한 결혼인데 동생에게 알려야죠. 녀석들이 제일 좋아할 테니 축하도 받고, 좋은 기운도 받고 싶네요. 명절 밑이니 술 한잔 건네고 싶기도 하고요.”
좋은 일, 슬픈 일이 있을 때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소중한 사람이라고 했던가. 충북 산악인 홍정표(50)씨는 늦깎이 결혼을 하면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의 품에 안긴 동생들이 떠올랐다. 동생들은 지난 2009년 9월 안나푸르나 히운출리(6441m) 등반에 함께 나섰다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는 민준영(당시 36살)·박종성(당시 41살)씨다. 홍씨를 포함해 이들 산악인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가 탄생한 청주를 세계에 알리려고 ‘직지원정대’를 꾸려 등반에 나섰다. 누구도 오르지 않은 히말라야 히운출리에 오른 뒤 자신들이 오른 길을 ‘직지루트’로 이름 붙여 세계에 공인을 받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해 9월 23일 정상에 오르려고 베이스캠프를 떠난 둘은 이틀 뒤인 9월25일 아침 8시15분, “날씨 좋고 컨디션 좋다. 좌측에서 우측 골짜기로 진행하기 위해 설사면 올라섰다. 이것으로 무선 종료한다”는 무전을 남기고 지금껏 연락이 없다.
당시 원정대는 연락이 닿지 않은 이튿날부터 헬기는 물론 수색대까지 꾸려 둘을 찾아 나섰지만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원정대는 지난 1월에도 둘을 찾는 등 거의 해마다 히말라야를 찾아 신들만 아는 이들의 안부를 묻곤 한다.
원정대 부대장으로 참여했던 홍씨는 한시도 동생들을 잊을 수 없다. 사고 이듬해 직지원정대 등 동료 산악인들과 함께 이곳을 찾아 동생을 추모했고, 2013년엔 다시 찾아 추모비를 세웠다.
홍씨는 지난달 27일 충북 산악인들의 축하 속에 늦깎이 결혼을 했다.
“결혼 결정을 한 뒤 녀석들이 먼저 떠올랐어요. 등반 때나 가끔 소주잔이라도 기울일 때면 늘 장가 들라는 말을 했었고, 때론 노총각이라고 장난치고 놀려서 더 기억에 남아요.”
홍씨는 아내(47)에게 신혼여행지로 안나푸르나를 제안했다. 동생들과의 인연, 형의 도리를 조용히 설명했고, 아내는 흔쾌히 동의했다.
“늦게 결혼했으니 동생들에게 형수 인사는 시켜야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좋은 사람이니 녀석들도 참 좋아할 겁니다. 녀석들이 축하해주면 정말 잘 살 것 같은 믿음도 있고요.”
요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찾는 이들이 늘면서 관광지화됐다는 말이 나오기도 하지만, 안나푸르나는 여전히 안나푸르나다. 네팔 카트만두에서 비행기로 1시간, 차로 3시간, 다시 걸어서 1시간여를 걸어야 산 아래 마을 란드룩이 나온다. 이곳에서 4박5일을 오롯이 걸어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가 나온다. 이곳엔 민, 박 두 대원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주변엔 산악인 박영석, 지현옥씨의 추모비도 있다.
충북 산악인과 그 가족 등의 축복속에 결혼식을 올린 홍정표씨 부부. 홍씨는 이 사진을 히말라야의 품에 안긴 민준영·박종성 두 대원에게 전할 참이다.
홍씨는 산악인들과 함께 찍은 결혼사진, 소주 한 병, 맥주 한 캔, 과자 몇 봉지를 챙겼다.
“결혼 자랑 해야 하니까 사진 넣었고, 종성이게 줄 맥주, 준영이와 함께 할 소주, 좋아하던 과자 몇 개 넣었어요. 곧 추석이니 간단하게 제 올리고, 축하주도 한 잔 해야겠지요.”
당시 원정대를 이끌었던 박연수(52)씨는 “산악인이 아닌 제수씨가 힘들겠지만 가쁜 마음으로 동행을 결정해줘 정말 고마웠다. 히말라야의 신이 된 동생들의 축복 속에 홍씨 부부가 행복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사진 직지원정대·충북산악구조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