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이라는 가르침으로 세운 충북 음성 꽃동네가 40돌을 맞았다.
꽃동네는 ‘작은 예수’, ‘거지 성자’로 불린 고 최귀동 할아버지의 사랑이 배인 곳이다. 그는 음성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일제 강제 징용에 끌려갔다 온 뒤 집안은 몰락했고 그는 음성 무극천 다리 밑에서 걸인 생활을 해야 했다. 그는 자신의 주린 배를 채우기보다 남을 위해 동냥을 했다. 40여년 동안 움막에서 지내면서 주변에 있는 걸인들을 먹이고, 병간호까지 하며 보살폈다. 1986년 2월 ‘작은 예수’라는 칭찬과 함께 한국가톨릭대상 사랑 부문 대상을 받았다. 이때도 상금 120만원을 내놔 주변을 감동하게 했다.
1990년 1월 4일 고혈압으로 쓰러져 숨질 때까지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이라는 헌신적 사랑을 실천했다. 음성군은 2011년 그의 사랑 실천을 기리는 ‘최귀동 인류애 봉사 대상’을 제정해 해마다 숨은 봉사자를 찾고 있다.
꽃동네를 세우게 한 고 최귀동 할아버지와 오웅진 신부(왼쪽부터)
오웅진(맨 오른쪽) 신부와 당시 걸인들이 생활하던 움막.
꽃동네도 그의 사랑으로 탄생했다. 1976년 9월 12일 음성 무극천주교회에 있던 오웅진(70) 신부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동냥을 해 움막에서 다른 걸인 18명을 보살피는 그의 헌신적 모습에 감동해 금왕읍 무극리 용담산 근처에 ‘사랑의 집’을 지었다. 이게 국내 최대 복지시설로 자리 잡은 꽃동네의 출발이다. 지금 꽃동네에는 장애인, 노인, 어린이 등 기댈 곳 없는 이 2천여명이 생활하고 있다.
꽃동네는 나라 안팎에서 ‘한 사람도 버려지지 않는 세상, 모든 사람이 하느님같이 우러름을 받는 세상,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세상’을 실천하고 있다.
음성에 이어 경기 가평, 서울 신내, 충북 옥천·청주, 인천 강화 등에 꽃동네 시설이 만들어졌다. 1993년 중국 꽃동네가 만들어진 데 이어 필리핀, 방글라데시, 인도, 우간다, 아이티 등 12개국에 꽃동네가 설립됐다. 아프리카 아이티에는 이미 300여명의 노인, 장애인 등 의지할 곳 없는 이들이 생활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014년 8월 음성 꽃동네를 찾아 신자 등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014년 8월 음성 꽃동네를 찾아 어린이 등의 환영에 엄지 손가락을 펴보이며 기뻐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014년 8월 음성 꽃동네를 찾아 꽃동네 가족 등의 머리에 손을 올리며 은총을 기원하고 있다.
꽃동네는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많은 사람과 눈을 맞출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에 따라 지붕 없는 소형차로 꽃동네에 나타난 교황은 근무력증으로 사지가 마비된 차해준(9) 필립보, 평생 병상을 지키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오미현(23) 리나 등에게 사랑을 전하고, 전국의 수도자와 성무일도(저녁기도), 강론 등을 진행했다. 당시 꽃동네 회원, 천주교 청주교구 신자 등 3만여명이 ‘비바 파파’를 연호하며 그의 방문을 반겼다.
꽃동네는 해마다 나라 안팎의 자원봉사자 30여만명이 찾아 참 인류애를 실천하는 곳이기도 하다. 보복 폭행 사건 등으로 물의를 빚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비자금을 조성해 회삿돈 수백억 원을 횡령한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등도 이곳에서 사회봉사명령을 이행하기도 했다.
꽃동네는 갈 곳 없는 이들이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5400여명이 장례와 함께 꽃동네 낙원 묘원에 묻혔다. 꽃동네는 설립 40돌을 맞아 꽃동네 가족과 행려 무연고 사망자를 위한 봉안 시설 ‘추기경 정진석 센터’·‘성 니콜라 오 경당’(가칭)을 만들고 있다.
박영식 꽃동네 수사는 “어려운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또 유골함까지 모시는 공간을 만들고 있으며 올해안에 준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꽃동네는 8일 오후 1시30분 꽃동네 낙원 묘원에서 전국 꽃동네 회원, 시설 가족 등 5천여명과 함께 꽃동네 설립 40돌 기념행사를 열 참이다. 장봉훈 천주교 청주교구 주교, 오스발도 파딜리아 교황 대사 등의 참석 속에 미사, 기념식, 축하연 등이 4부로 나눠 진행될 예정이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사진 꽃동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