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협의 3배 이상 늘고 연정위원장 도입 등 나섰으나 제도적 취약성 여전
“이거 강화도조약입니다…”
지난 8월23일 자정이 가까워져 오는 시간이었다. 임기 후반기를 남긴 남경필 경기지사와의 연정의 지속 여부를 놓고 경기도의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새누리당과 2기 연정협상을 벌이던 중이었다. 더민주 협상단의 김종석 수석 부대표가 진전없는 협상장을 박차고 나오자 오병권 경기도기획조정실장이 따라 나서면서“왜 이러냐”며 만류하고 나섰다.
이때 김 수석 부대표가 오 실장에게 ‘강화도조약’을 꺼내면서 “협상 준비도 안 됐으면서 무슨 연정을 한다고 이러냐”고 거세게 쏘아붙였다. 19일 시작된 협상은 당시 협상 종료를 이틀 남겨둔 상태였다.
야당의 항의 속에 결렬 위기를 겪은 협상은 이후 경기도가 야당 안을 전격 수용하면서 급진전했다. 더민주 김 부대표는 “야당은 300여개 넘는 정책안을 이미 제출했다. 그런데 한줄씩 줄을 그으며 따지자고 하더라. 연정을 통해 남 지사가 정치적으로 광(光)을 내려 한다면, 야당이 마련한 민생 정책들은 경기도와 새누리당이 최소한 수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9일 남경필 경기지사와 박승원 더민주 대표, 최호 새누리당 대표 등은 ‘경기도 민생연합정치 합의문’에 공식 서명했다. 경기도 2기 연정의 공식 출범인 셈이다.
민선 6기가 출범한 2014년 남 지사가 야당에 제안하면서 시작된 연정은 국내에서는 첫 시도였다. 이 때문에 ‘새로운 정치적 실험’으로 평가됐지만 1기 연정은 법 제도적인 기반이 없었다. 여·야의 ‘정치적 합의’에 기초한 연정은 언제고 깨질 수 있는 ‘유리 그릇’에 비유됐다. 남 지사는 “여·야가 싸우지 않는 정치가 연정의 정신”이라고 했다. 하지만, 누리과정을 놓고 지난해 연말 경기도의회에서 벌어진 여·야간 극한적 몸싸움은 연정의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또 800억원의 예산을 남 지사가 자율예산 명목으로 도의회에 주자, “연정이 돈 나눠 먹기 야합이냐”는 비난도 거셌다.
이번에 출범한 2기 경기도 연정은 1기 경기도 연정과는 어떻게 다를까?
2기 연정 합의문은 79개 항에 288개 세부사업과제로 구성됐다. 20개 항에 30개 사업이었던 1기 연정에 견줘 일단 협력 사업이 3배 이상 크게 늘었다.
내용상으로는 사업이 구체화했다. 1기 연정에서 서민과 중산층의 주거안정을 위해 △공공임대 주택 건설 △서민주거대책 수립 △전·월세 대책 수립 등을 추진하도록 했다면 2기 연정에서는 보다 구체화되는 식이다. 가령 2기 연정에서 더민주는 주거 취약 계층의 공공·매입·보증임대를 위해 매년 가용 예산의 2%인 연간 200억원의 주거복지기금을 확보하도록 했다. 새누리당은 청년 신혼부부들을 위한 따복하우스 공급과 기숙사 조기 완공이라는 보다 구체화된 정책으로 제시됐다.
특히 민생연정을 외친 더민주는 올해 237억원인 무상급식예산을 내년부터 1038억원으로 확대하고 청년 구직 지원금을 도입하는 것 외에 빚 탕감프로젝트, 경기 북부에 개성공단 물류단지 조성, 동네주치의 제도 도입, 공공임대상가 도입 등을 관철했다. 새누리당은 일하는 청년 통장 확대, 이층 버스 500대 확대, 경기주식회사 설립 등을 끌어냈다. 특히 경기도와 여·야는 핵발전소의 수명 연장 사용과 추가 건설에 반대하고 탈핵 정책에도 합의했다.
경기도의회 더민주 박승원 대표는 “1기 때보다 많은 당의 정책 의제를 발굴해 협상의제로 만들었고 특히 생산적인 민생연정의 다양한 정책들로 전환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정창욱 사무처장은 “1기 연정이 연정 구성에 급급하고 여·야의 공약을 적당한 수준에서 섞는 데 그쳤다면 2기 연정에서는 시민사회의 제안이 반영되고 피드백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2기 연정 역시 연정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지는 못했지만 취약한 제도의 보완이 일부 이뤄졌다.
우선 야당이 파견하는 민생연정부지사의 역할이 강화됐다. 1기 연정에서 사회통합부지사는 경기도 보건복지국과 환경국, 여성가족국 등 3개 실 국을 관할했는데 2기 연정에서는 옛 정무부지사처럼 전체 실·국 업무를 맡도록 했다.
2기 연정에서 추진됐던 명예장관제(지방장관제) 도입은 행정자치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대신 기존의 ‘경기 연정 실행위원회 구성 및 운영 조례’를 ‘경기도 연합정치 기본조례’로 바꾸기로 했다. 1기 연정에서 사회통합부지사와 여야 대표 등 3명이 공동위원장을 맡는 등 11명으로 이뤄진 경기도 연정실행위원회의 기능도 강화된다. 11명의 기존 실행위원 외에도 명예장관제 대신 추가로 여·야 각 2명씩 4명의 연정위원장을 새로 임명해 실 국별로 연정과제의 이행을 확인하고 의견을 도지사에게 제시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여·야간 극단적 마찰을 피하기 위해 연정실행위원회의 상시 소집도 가능할 수 있도록 했다.
경기도의회 최호 새누리당 대표는 “연정실행위원회 강화 등 연정의 취약한 제도적 보완이 이뤄진 점이 연정 1기와 달라진 점이다”고 말했다.
2기 연정의 출범으로 남경필 경기지사는 여소야대 형국 속에서 임기 전반기에 이어 야당의 협력을 끌어낼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아울러 새누리당 내 대선 주자의 한 명으로 거론되어온 남 지사는 연정이라는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더욱 강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2기 연정 역시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일부 회의론 속에서 ‘정치 연정’이 될지 아니면 ‘민생연정’이 될지 지켜보겠다는 분위기다. 노건형 경실련 경기도협의회 사무처장은 “합의문상으로는 좋은 기대를 꿈꾸게 하지만 앞으로 (연정합의문의) 이행 여부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연정의 결과물이 도민들의 생활에 와 닿도록 여야가 노력해야 하고 여야 간 합의가 이행되는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사진 제공 경기도
지난 9일 오후 경기도의회 대회의실에서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박승원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 대표, 최호 경기도의회 새누리당 대표가 ‘경기도 민생연합정치 합의문 서명식’을 마치고 정기열 경기도의회 의장, 경기도의회 의원 및 경기도 행정1·2부지사 등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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