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경남지사가 지난 8일 징역 1년6개월 실형을 선고받은 직후 서울중앙지법 법정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관련 1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지난 8일 징역 1년6개월 실형을 선고받은 홍준표 경남지사에게 도지사직에서 스스로 물러나라는 압박이 거세게 가해지고 있다. 홍 지사를 구속해서 재판하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홍 지사는 페이스북 등을 통해 1심 재판 결과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며 “결론이 나지도 않았는데 중도에 그만두는 것은 옳지 않다. 경남 도정에 전념하며, 상급심에서 누명을 벗는 데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홍 지사가 자신의 위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매우 달라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앞으로 펼쳐질 ‘정치인 홍준표’의 선택과 미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있을까? “대선 출마는 모든 정치인의 로망이다.”
홍준표 지사는 여러 차례 이렇게 말하며 2017년 12월20일 제19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뜻을 내비쳐왔다. 경남도지사직은 그에게 정치적 재도약의 발판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그는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 실형을 선고받은 상태라,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지 않으면 대선에 출마할 수 없는 곤궁한 처지로 몰렸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선거 당시 새누리당은 그해 6월14일부터 예비후보 등록을 받았고, 7월21일 경선을 시작해, 8월20일 후보를 결정했다. 따라서 선거 일정과 준비 기간 등을 고려할 때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만, 늦어도 내년 6월 이전에 무죄를 확정받아야 새누리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내년 6월 이전에 무죄를 확정받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정해진 기한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고등법원의 2심(항소심)은 6개월, 대법원의 3심(상고심)은 3개월가량 걸린다. 빨라야 내년 6월 중순에나 무죄 확정이 가능하다. 물론 홍 지사와 검찰 모두 서두른다면 더 빨리 결론을 낼 수도 있다.
홍 지사는 1심 선고 다음 날인 지난 9일 기자간담회에서 “적어도 재판이 확정되려면 아무리 빨라도 1년 이상 걸립니다”라고 말했고, 경남도 공무원들에게도 “적어도 1년 동안은 흔들림이 없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재판을 서둘러 진행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홍 지사가 무죄를 확정받더라도, 1년이란 시간이 걸린다면 대선 출마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기자간담회에서 홍 지사는 “재판으로 정치 일정이 다소 엉켰다”는 표현도 사용했다. 그가 말하는 ‘정치 일정’은 무엇이며, 어떻게 엉켰다는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새누리당 후보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대선에 출마하는 것까지 염두에 뒀을 수 있다. 하지만 징역형이라는 실형이 집행되는 최악의 상황까지도 계산에 포함시켰는지는 알 수 없다.
경남지역 90여개 시민사회단체와 야5당은 지난 12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홍준표 경남지사에게 도지사직을 자진해서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최상원 기자
■경남도지사 임기를 채울 수 있을까? 홍 지사의 경남도지사 임기는 2018년 6월30일까지이다. 재판을 아무리 길게 끌고 가더라도 임기 전에 대법원 확정판결이 날 것이다. 따라서 무죄를 확정받으면 상관없지만, 금고 이상 유죄를 확정받으면 도지사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게 된다.
재판과 상관없이, 홍 지사는 주민소환투표라는 큰 벽도 넘어야 한다. 주민소환은 선출직 지방공무원을 주민들이 투표를 통해 쫓아내는 제도이다. 경남지역 시민사회단체들로 이뤄진 ‘홍준표 경남지사 주민소환 운동본부’는 홍 지사 주민소환투표를 청구하는 경남도민 35만7801명의 서명을 받아 경남도선거관리위원회에 냈다. 경남도선관위는 오는 26일께 서명 심사 결과를 결정할 예정인데, 2015년 12월31일 기준 경남 전체 공직선거 유권자의 10%인 27만1032명 이상 서명이 유효한 것으로 결정되면, 주민소환투표가 실시된다.
주민소환투표가 실시된다면, 투표일은 11월 말로 예상된다. 투표는 경남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 이상 참가해야 효력을 가지며, 3분의 1 이상 투표했을 때 유효투표수의 과반수가 찬성하면 홍 지사는 도지사직을 잃는다. 투표가 결정되면, 투표 공표일부터 투표일까지 20~30일간 홍 지사는 직무 정지된다.
따라서 홍 지사가 도지사 임기를 무사히 마치려면,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는 것은 물론 그 이전에 주민소환투표를 무사히 넘겨야 한다. 그러나 만약 내년 3월5일 이전에 홍 지사가 도지사직을 잃거나 스스로 물러난다면, 경남도는 내년 4월5일 경남도지사를 새로 뽑게 된다. 경남에선 이미 여러 유력인사가 홍 지사의 낙마를 예상하며 후임 도지사 자리를 노리고 있다.
홍 지사는 “지사직에 연연하지 않는다. 때가 되면 정리하고 내 발로 걸어갈 것이다”, “보궐선거는 없을 것이다”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하지만 재판과 주민소환투표를 모두 자신의 뜻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도지사직에서 스스로 물러날 기회도 놓칠 수 있다. 최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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