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창덕궁 돈화문~원남동 사거리까지 300m 길이의 지하보도. 보도를 걸은 여성들은 범죄로부터 안전하지 않을 것같다는 대답을 했다. 또 길이 굽었고 내리막길인데, 자전거도로가 따로 없어 위험하다고도 했다.
비가 내리던 지난달 27일 저녁 6시 무렵 서울 종로구 창덕궁 돈화문 근처 터널형 보도. ‘거대한 동굴’을 통과해 종로구 원남동 사거리 쪽 출구까지 300m를 걸어 내려왔다. 앞서 걸은 종로구 인의동 주민 이소영(42) 씨와 그의 중학교 1학년생 딸 송아무개(13)양은 이 보도를 평소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씨는 “오늘은 (내가) 같이 오니까 걸어왔다. 딸 혼자 걷는 건 위험하니까 버스를 타고 다니라고 했다. 비가 올 때나 밤에는 어른 여성도 혼자 못 다닌다”라고 말했다. 인터뷰하는 도중 곡선 내리막길 따라 달려온 자전거 두 대가 이씨 모녀 옆으로 지나갔다. 보도의 폭은 차 한 대가 지날 만했다.
이날 만난 종로구 익선동 주민 봉아무개(70·여성)씨 반응도 비슷했다. 봉씨는 “집에서 대학로까지 매일 나갈 일이 있다. 버스 두 정거장 거리라 운동겸 걸어다녔다. 하지만 터널이 생기고 난 후에는 위험할 것 같아 밤에는 종로3가 단성사 앞길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지난 8월 개통한 ‘율곡로 도로구조 개선공사’ 종묘 쪽 지하보도가 여러 주민들에게 외면받거나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특히 여성들은 범죄에 노출될까 걱정했다. 형광등이 켜있고 5개의 비상벨과 90개의 창문이 나 있긴 했다. 하지만 창문 너머도 터널 속 차도다. 창문에는 ‘범죄신고’용 종로서와 혜화경찰서 번호가 붙어있다.
이 지하보도는 서울시의 ‘종묘-창경궁 복원 사업’의 결과물이다. 조선시대 창경궁과 종묘는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녹지로 연결돼있었다. 하지만 1931년 조선총독부가 담을 없애고 율곡로를 놓아 북한산, 창덕궁·창경궁, 종묘로 이어지는 맥을 끊었다. 서울시는 오세훈 시장 시절이던 2009년 2월 이를 다시 연결하기로 했다. 854억원짜리 사업이었다. 원형 복원을 원칙으로 원래 있던 담장 높이에 맞추다보니, 창덕궁 돈화문에서 원남동 사거리까지 율곡로 800m 가운데 300m 구간이 지상보다 1m 아래의 지하차도가 되었다. 인도도 차도 옆에 터널형으로 만들었다. 터널 위 지상은 녹지 공간으로 이었다.
터널형·자전거 겸용 지하보도 형태는 2009년 설계안 그대로다. 애당초 문화재 복원이라는 ‘대의’만큼, 일상으로 겪게될 불안, 불편 등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 첫 총괄건축가를 맡아 최근 퇴임한 승효상 건축가는 “지하보도는 도시건축에서 점점 퇴출하는 방식이다. 여성이 안전함을 느끼도록 추가 조치를 해야 하고, 창덕궁·창경궁 쪽 인도는 종묘 쪽과 달리 설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시는 내년 말까지 남은 공사를 모두 끝낼 계획이다.
서울시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지상 상부 녹지 공간에 산책로를 만들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문화재청 허가사항이라 무산됐다. 2009년 당시 주민들 상대로 어떤 의견을 수렴했는지 자료는 찾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글·사진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서울 종로구 창덕궁 돈화문 앞 지하보도 입구.
개통 후에도 마무리 공사는 계속 됐다. 창문에 붙어있던 범죄신고 전화번호.
서울 종로구 창덕궁 돈화문~원남동 사거리까지 지하보도(300m) 위치도. 서울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