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전 전남 순천시 낙안면 교촌리 들녘에 선 농부가 전날 태풍 ‘차바’가 할퀴고 가는 바람에 가을걷이를 앞두고 쓰러져버린 나락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차바의 영향으로 전남 농경지 1322㏊가 피해를 본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순천/연합뉴스
제18호 태풍 차바가 휩쓸고 간 제주와 전남지역의 피해 규모가 예상보다 큰 것으로 파악되는 가운데 자치단체와 주민들은 이틀째 복구작업을 벌였다. 제주도는 6일 도와 행정시 공무원, 해병대 제9여단 장병, 지역 자율방재단원 등 1300여명을 동원해 피해복구 작업에 나섰다고 밝혔다. 제주시 한천이 범람하면서 침수된 차량 50여대는 이날 오전까지 모두 다른 곳으로 옮겼다. 비닐하우스 등의 피해를 본 농촌 지역에는 공무원과 장병들이 복구작업을 벌였다.
시간이 갈수록 태풍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제주 지역에서는 양식장 피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낮 12시까지 제주도 내 양식장 9곳에서 광어 66만 마리를 포함해 돌돔 등 활어 123만6천여 마리가 집단 폐사해 17억원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양식장 69곳의 비닐하우스 11만329㎡(34억원)가 파손됐다.
이번 태풍의 위력은 지난 2007년 제주시 한천과 산지천 등의 범람과 13명의 인명피해를 낸 태풍 나리 이후 최대로 평가된다. 제주도는 그 뒤 태풍 등 집중폭우가 쏟아질 때 하천 범람을 막기 위해 2008~2010년 800억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 한천 2곳, 병문천 4곳 등 모두 4개 하천에 저수용량 164만7천t의 저류지 12곳을 만들었다. 저류지는 폭우가 쏟아질 때 빗물의 양을 조절하기 위해 일시 저장하는 공간이다.
주요 하천에 만든 이들 저류지는 이번 태풍 때 빗물의 흐름을 조절하는 데 일부 기여하기도 했지만, 상당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제주시 한천의 범람도 막지 못했다. 오등동 병문천 제3저류지는 불어난 빗물의 수압을 견디지 못해 석축 일부가 무너지는 등 문제점이 드러났다. 제주시는 지난 5일 새벽 3시10분께 하천 저류지 12곳을 순차적으로 개방했으나 1시간 남짓 지난 뒤 한천 하류 지역인 용담동 한천교 일대에서 물이 넘쳐 역류하면서 복개지역에 세워둔 차량 50여대가 휩쓸리거나 파손됐다. 제주시 월대천도 5일 새벽 만조가 겹쳐 범람하면서 주변에 주차된 차량들이 파손됐고, 올레코스 주변의 소나무와 의자 등이 부러지거나 석축 등이 무너졌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2리에 있는 세계자연유산센터는 전기실과 기계실이 침수되고 외부 천장 마감재 등이 떨어져 18일까지 2주 동안 휴관에 들어갔다. 순간 최대풍속 초속 56.5m의 강풍이 몰아친 제주시 한경면 고산지역에는 한 건물이 지붕만 남겨두고 벽체가 날아가 버리기도 했다.
제주도 안전관리실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태풍으로 현재 114억8900만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잠정집계했다. 신속한 피해복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인명 피해는 실종 1명이지만 오인 신고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도는 공공시설 8개 분야 33억5800만원과 사유시설 9개 분야 81억3100만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농작물 등의 피해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안전관리실은 “중앙정부의 피해 조사를 통해 특별재난지역 선정 여부가 결정된다. 선정될 수 있도록 정부와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전남지역에서도 수확을 앞둔 벼·콩·감·배 등 농작물이 쓰러지거나 떨어지는 등 큰 피해를 봤다. 전남도 재난안전대책본부가 이날 집계한 피해를 보면, 여수·고흥·신안·완도 등 남해안 시군 11곳에서 벼·콩 등 농작물 877㏊가 바람에 쓰러지거나 불어난 물에 잠겼다. 광양과 순천 등지 과수원 727㏊는 다 익은 단감·배·유자 등이 떨어지는 낙과 피해를 봤다. 채소류를 가꾸던 여수·장흥의 비닐하우스 14동이 부서졌고, 가로수·전봇대·신호등 등 각종 시설 196곳도 피해를 보았다. 특히 많은 관중이 모이는 영암 에프원(F1) 경기장의 지붕 170㎡가 몰아친 강풍에 파손되기도 했다. 큰비가 내린 여수·고흥에서는 민가 3동이 파손되고, 1동이 침수됐다. 이재민 4가구는 인근 친척 집과 마을회관 등지에서 임시로 살고 있다.
전남도는 이날부터 군인과 경찰, 공무원, 자원봉사자 등을 피해 지역에 보내 복구를 지원하고 있다. 전종화 전남도 농림축산식품국장은 “비바람에 쓰러진 농작물은 곧바로 물을 빼고 세워야 한다. 시간을 끌면 병해충이 발생하고, 알맹이가 썩을 수 있어 복구 인력을 서둘러 투입했다”고 말했다. 태풍 피해를 본 주민들은 10일 이내에 읍·면·동에 피해신고를 하면 현장 조사 등 절차를 거쳐 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허호준 안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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