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동안 하루 종일 일 시키며 임금 제대로 안 줘
장애인 수당 등 8600만원 갈취…수사 시작 뒤 모두 변제
피해자 친척 신고로 드러나…행정기관은 파악 못해
장애인 수당 등 8600만원 갈취…수사 시작 뒤 모두 변제
피해자 친척 신고로 드러나…행정기관은 파악 못해
장애인 노동력 착취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축사에서 20년째 강제 노역을 시킨 ‘만득이 사건’, 타이어 가게에서 10년 동안 일을 시키고 임금을 주지 않은 ‘타이어 노예’ 사건에 이어 이번엔 토마토 농장에서 13년 동안 장애인 노동력을 착취한 사건이 드러났다. 이들 사건 모두 지적 장애인을 대상으로 이웃이 장기간 노동력을 착취했지만 행정기관 등 누구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충북 충주경찰서는 18일 지적 장애인을 13년 동안 일을 시킨 뒤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고, 장애인 수당 등을 가로챈 혐의(준사기)로 ㅎ(59)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ㅎ씨는 2004년부터 최근까지 같은 마을 ㅊ(57·지적장애 3급)씨를 고용해 자신의 방울토마토 농장 등에서 일을 시키고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은 혐의를 사고 있다. ㅎ씨가 지금까지 ㅊ씨에게 준 임금은 모두 2740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봉으로 따지면 210만원 남짓이다.
경찰은 “가을 추수 뒤 100만원, 200만원 정도씩 통장에 입금해 준 게 전부였다. ㅊ씨는 아침 해 뜨고 저녁 해질 때까지 일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ㅎ씨는 ㅊ씨의 장애인 수당 등을 가로챈 혐의도 받고 있다. ㅊ씨는 2004년 이후 지금까지 다달이 17만~44만원씩 장애인 수당 등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ㅎ씨는 ㅊ씨에게 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지금까지 8차례에 8600만원을 빌린 뒤 6100만원을 갚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수사가 시작된 뒤 원금에 이자까지 더해 7800만원을 뒤늦게 갚았지만 명백한 편취다. 시계도 제대로 보지 못할 정도로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피해자의 임금과 재산을 모두 착취한 것”이라고 말했다.
행정기관의 장애인 전수조사는 이번에도 헛조사였다. 충북도와 충주시 등은 지난 7월 ‘만득이 사건’ 뒤 장애인 노동착취·학대 관련 조사에 나선 바 있다. 하지만 이번 토마토 농장 장애인 노동력 착취 사건도 행정기관이 아닌 이웃에 사는 피해자 친척의 신고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만득이 사건 이후 행정기관이 조사를 했다고 했지만 제대로 조사가 되지 않은듯하다. 조사해 보니 폭행, 학대 등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임금 착취, 재산 갈취 등은 노골적이고 심각했다”고 밝혔다.
실제 충주시 담당 부서 쪽의 조사에선 노동력 착취 등은 드러나지 않았다. ㅊ씨를 조사한 충주시의 한 공무원은 “ㅊ씨와 주민들을 면담했을 때 노동력·임금 착취 등을 말하지 않았다.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는 생각에 5차례 이상 ㅊ씨를 찾아 갔지만 이상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직원은 또 “ㅊ씨와 주민들이 착취가 없다고 해 그대로 믿었다. 사법기관이 아니어서 임금 지급이 제대로 됐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조사했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ㅊ씨를 친척이 보호하게 했으며, ㅎ씨의 임금, 노동 등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한 조사를 고용노동부 쪽에 맡겼다.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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