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게이트 와중에 첫 누리집 개편
1999년 문 연 뒤 ‘미화·신격화’ 계속
“박정희, 땅의 정기 받아 나라 뺏고 혁명”
구미시 쪽 “시 누리집 전체 개편 일정 따른것”
시민단체 “최순실 ‘무당정치’ 부담 느낀듯”
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 마련된 민족중흥관을 찾은 시민들이 지난 10월12일 오후 227제곱미터 너비의 돔영상실에서 아시아 최초 하이퍼돔시스템과 실사로 만든 박 전 대통령 관련 영상을 관람하고 있다. 구미/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경북 구미시가 박정희 전 대통령 추모 누리집에서 ‘탄생 설화’를 삭제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구미시는 1998년 8월 이 누리집을 만들어 운영해 왔는데, 개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구미시는 4일 오전 6시를 기해 별도 도메인으로 운영해온 ‘사이버 박정희 대통령’ 누리집(클릭)을 구미시청 포털 누리집으로 통합·개편했다. 누리집 관리 담당자는 “그동안 한 번도 개편한 적이 없다.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주된 개편 내용은 디자인 쪽에 쏠려 있고, 박 전 대통령의 생애와 업적을 다루는 콘텐츠는 수정 없이 그대로다. 그런데 유독 ‘인간 박정희’ 하위 카테고리로 소개하던 ‘탄생설화’만 이번 개편을 계기로 빠졌다.
‘사이버 박정희 대통령’ 누리집 과거 화면.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설화는 구미 주민 이아무개씨 증언을 담은 ‘풍수가 알아본 박정희’와 선봉사 주지 성수스님의 ‘오수작탈형인 박대통령의 집터’ 등 2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동안 이 이야기들은 시가 운영하는 대통령 기념 누리집에 어울리지 않는 ‘신화에 가까운’ 내용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관련기사‘박정희 신격화’ 구미시 왜?)
금오산 산자락에 땅을 보러 온 풍수가가 박 전 대통령 생가터를 보고는 “이 터만 사면은 사람나는 데다”라고 했다라든가, 풍수가가 박 전 대통령을 보고는 “사봤자 헛일이다, 이 터에는 (벌써) 사람이 났다. 아이구 늦었다”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선봉사 주지가 생가터에 대해 “까마귀가 까치집을 뺏어 내려 앉은 형국이다. 박 대통령은 고(그) 정기를 받았기 때문에 나라를 뺏는다. 혁명을 해서”라고 말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와 관련, 남유진 구미시장은 2006년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박정희 전 대통령 89회 생신 숭모제’에서 박 전 대통령을 ‘반인반신’으로 비유하기도 했다. 추모 누리집은 이 밖에도 5·16을 혁명이라고 표현하는 등 역사적으로 논란이 될만한 내용을 출처도 없이 그대로 싣고 있다.
기존 ‘사이버 박정희 대통령’ 누리집(왼쪽)과 11월4일 개편한 누리집 비교.
구미시의 갑작스런 누리집 개편이 최순실씨의 ‘무당정치’ 논란에 부담을 느낀 탓이 아니냐 하는 얘기도 나온다. 누리집 관리 담당자는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셈”이라고 해명했다. 올 상반기께부터 시 전체 누리집 개편을 진행했고 박 전 대통령 추모 누리집 역시 정해진 일정대로 개편됐다는 것이다. 5·16혁명 등 논란의 소지가 있는 내용들은 연말까지 정리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그는 “탄생 설화는 여러 콘텐츠 중에서도 가장 문제로 지적받던 부분이라 개편을 맞아 먼저 삭제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구미시에선 7일 열릴 예정이었던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구미시민추진위원회’ 1차 전체회의가 잠정 연기됐다. (▶관련기사 구미시, 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에 ‘최순실 불똥’) 최인혁 구미참여연대 사무국장은 “최근 ‘영세교 주교’ 최태민을 아버지로 둔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을 ‘좌지우지’하며 ‘무당정치’를 했다는 말이 나오자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신격화·우상화가 이번 사태와 맞물려 논란이 될까봐 삭제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언뜻 ‘박정희 기념사업’에 누구보다 앞장서 온 구미시가 한 발 물러선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백지화하기로 했던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을 강행할 뜻을 보이는 등 ‘눈 가리고 아웅’식 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구미시는 ‘박정희 대통령 탄신 100주년 기념사업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박 전 대통령의 조국근대화의 위업을 계승하고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여러 사업들을 검토·진행하고 있다. 지역 시민단체 등의 반대에 부딪혀 지난 7월 28억원짜리 ‘박정희 뮤지컬’은 제작을 취소했지만, 수억원씩 예산이 들어가는 학술세미나, 전시회 등의 ‘사업 타당성’을 두고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인근에 높이 5미터에 이르는 대형 동상이 서 있다. 구미/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구미참여연대 등 지역 시민단체는 그동안 사업 중복과 과도한 예산 투입 등을 들어 구미시의 ‘박정희 기념사업’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다. 시가 ‘박정희 기념사업’에 쓴 예산만 1400여억원이 넘는다.(▶관련기사 박정희 기념사업만 1400억원 넘어…시민단체 "축소해야") 시는 생가 복원, 동상·추모관이 이미 만들어진 상태에서 2012년 3월 58억5000만원을 들여 ‘박정희 대통령 민족중흥관’을 세웠다. 2006년 2월부터는 286억원을 들여 ‘박정희 대통령 생가 주변 공원화 사업’을 추진 중이고, 2013년 10월에는 870여억원(국비 295억원, 도비 148억원, 시비 423억원)을 들여 ‘새마을운동 테마공원’을 짓고 있다. 거기에 200억원(국비 80억원, 도비 15억원, 시비 105억원)이 들어가는 ‘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까지 짓겠다고 나선 상태다.(▶관련기사 내년 ‘탄신제’만 40억…박정희 우상화 우려스런 이유)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