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국민행동 숭모제 반대 기자회견…박해모 등 방해집회로 아수라장
“지지 컸던 만큼 배신감 커” 비판…육영수 생가도 관람객 절반 ‘뚝’
박근혜 정권 퇴진 옥천국민행동이 29일 오전 육영수 탄신 숭모제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려 하자 박해모 회원 등이 막고 있다.
‘외가라고 안봐준다 박근혜는 즉각 퇴진하라.’
29일 박근혜 대통령의 외가인 충북 옥천의 민심은 날씨만큼 싸늘했고, 그의 어머니 육영수씨는 딸 때문에 91번째 생일을 가장 시끄럽게 맞았다.
이날 오전 11시 옥천 관성회관에선 ‘육영수 여사 탄신 91회 숭모제’가 열렸다. 옥천 교동리에서 나고 자란 육씨의 생일을 맞아 그를 기리는 행사다. 옥천군이 예산 700만원을 지원했고, 옥천문화원·민족중흥회 옥천지역회 등이 행사를 진행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국민 감정을 감안해 행사 규모·시간 등은 예년에 견줘 절반 정도 줄었다.
숭모제에 앞서 심한 몸싸움이 이어졌다. 옥천지역 시민단체들이 꾸린 박근혜 퇴진 옥천국민행동이 박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려 하자, ‘대한민국 박사모 가족 중앙회’, ‘박근혜를 사랑하는 해병들 모임’(박해모) 회원 등이 회견을 막고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주장하는 박근혜 정권 퇴진 옥천국민행동의 펼침막.
해병대 복장을 한 일부 회원 등이 펼침막을 가로 막았다. ‘빨갱이 물러가라’ 등 막말·고성이 이어졌고 호루라기 소리·몸싸움 등으로 회견장은 아수라장을 방불케했다. 일부 회원들은 오대성 옥천국민행동 대표 등이 들고 있던 손팻말을 부수기도 했다. 김찬식 박해모 중앙회장은 “육 여사 생신 잔치 마당에서 이를 방해하는 기자회견은 말도 안된다”고 했지만, 황중환 국민행동 집행위원은 “정당한 신고를 한 집회다. 경찰이 집회 방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불상사가 커졌다”고 항의했다.
박해모 등의 방해 속에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옥천군민행동은 “박근혜라는 정치 괴물의 외가 따위로 옥천이 언급되는 것에 수치심과 분노를 느낀다. 군민 세금 들어가는 육영수 숭모제를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대한민국 박사모 가족이 29일 육영수 탄신 91돌을 맞아 열린 숭모제에 앞서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국민행동의 회견이 마무리되자 박해모 등은 ‘하야 반대’, ‘헌법 수호’ 등 구호를 외치며 대통령 지지 집회를 열었다.
진보, 보수 단체들의 맞불집회가 이어지는 사이 관성회관 안에서는 숭모제가 200여명이 참석해 조용하게 치러졌다. 애초 김영만 옥천군수 등도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불참했다. 김 군수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해마다 잡혀있던 예산이어서 지원했지만 군민 정서가 박 대통령을 용서할 수 없는 쪽으로 흐르고 있어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육 여사 관련 기념사업도 중단했다”고 말했다.
육영수 탄신 91돌 숭모제가 열린 29일 옥천 관성회관에서 박 대통령 퇴진을 주장하는 진보성향 단체, 하야 반대를 주장하는 보수 단체 회원, 박 대통령의 구속을 요구하는 옥천국민행동 회원 등이 서로 다른 손팻말을 선보이고 있다.
박정희·박근혜 부녀 대통령이 나오면서 옥천은 ‘영원한 처가, 외가’로 불렸다. 지난 대선 때 옥천의 박 대통령 지지율이 64.49%로 충북 전체 지지율(56.22%)보다 8.27%포인트 높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날 옥천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잘 살거라 믿고 시집보낸 큰딸한테 배신을 당한 기분이랄까? 요즘 너무 속상하다”고 말했다. 시민 유아무개(44)씨는 “지지가 컸던 만큼 실망이 크다. 그를 지지했던 사람으로서 너무 창피하다”고 했다.
옥천읍내에서 3㎞남짓 떨어진 교동리 ‘육영수 생가’를 찾았다. 생가 앞에 놓인 방명록엔 ‘육영수 여사님 우리 대통령 좀 지켜주세요’ 등의 응원글과 ‘박근혜를 구속시켜야 한다’ 등의 비판글이 섞여 있었다. 생가를 관리하는 조도형씨는 “평소 400~500명 정도가 찾았지만 요즘은 절반 이하로 줄었다. 시국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옥천/글·사진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