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에이피(AP)> 통신 한국 특파원으로 3·1 운동과 제암리 사건 등을 세계에 알린 앨버트 테일러의 자료 수백점이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앨버트 테일러의 손녀 제니퍼 엘 테일러로부터 ‘딜쿠샤’ 관련 자료 451점을 기증받았다고 20일 밝혔다. 딜쿠샤는 앨버트 테일러가 1923년부터 1942년까지 서울 종로구 행촌동에 살았을 때의 가옥 이름으로 ‘희망의 궁전’ 또는 ‘이상향’이란 뜻을 지닌 힌두어다.
제니퍼 엘 테일러는 올해 2월 방한 때 기증한 57점까지 포함해 사진앨범 14점, 회화 79점, 도서 33점, 아카이브 148점, 의상 49점, 공예품 167점 등 모두 508점을 박물관 쪽에 제공했다. 이 가운데 딜쿠샤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사진앨범과 자료가 눈에 띈다. 거실·침실·주방·서재 등 가옥 내부 모습을 엿볼 수 있고, 집안일을 도운 ‘강서방’, ‘남도’ 등 인물들의 행방을 기록한 문서도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가옥을 복원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했다.
앨버트 테일러는 강원도 금광 `음첨골'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의 아들 브루스 테일러가 자료를 모아 사진앨범으로 제작했으며, 당시 금광의 사금채취, 가공과정, 금광시설물 및 그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1930년대 한국판 ‘골드 러시’(금광 열풍)를 담은 사진 앨범도 있다. 앨버트 테일러는 강원도 세포군 삼방리 ‘음첨골’이라는 곳에서 금광을 운영하면서 주변 모습과 시설, 금 채취 과정 등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아내인 메리 테일러은 음첨골 사람들의 삶과 사금 채취·가공 과정을 그림으로 남겼다. 서울살이 경험을 토대로 쓴 자서전 <호박 목걸이>의 초고와 실제 호박 목걸이도 기증됐다. 책 초고에는 서울 사람들의 생활 모습, 민속신앙, 금강산 유람 등과 언더우드 가문을 포함해 테일러가 만난 사람이 자세히 기록됐다. 테일러 부부의 집안일을 맡은 ‘김주사’, ‘최서방’ 등 한국인의 초상화도 있다.
앨버트 테일러의 아내 메리 테일러가 그린 한국인 초상화. 위 오른쪽 첫 번째 ‘최서방’(Choi Saban), 세 번째 ‘아마’(Ama), 아래 오른쪽 첫 번째 ‘조서방’(Cho Saban), 두 번째 메리 테일러의 선생님, 네 번째 ‘김주사’(Kim Chu sa)이다. 이들 대부분은 메리 테일러와의 인연으로 초상화로 그려졌다.
자료를 기증한 제니퍼 엘 테일러는 “이 자료는 테일러 가문에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한국에서 연구, 발전시키는 게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물관 쪽은 정리·연구 작업을 거쳐 2018년 우선 기획 전시하고, 이후 복원된 딜쿠샤 가옥 내 이들 자료를 영구 전시할 방침이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사진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딜쿠샤 사진 앨범에는 가옥의 전경, 집안 내부 모습과 장식품, 메리 테일러의 모습이 담겨 있다.
딜쿠샤에 거주하였던 하인들의 행방을 기록한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