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3년 동안 비정규직 직원의 고용 안정에 힘을 쏟겠습니다. 외부에서도 관심이 많다는 걸 알고 있기에 ‘1호 노동자이사’라는 점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국내 첫 노동자이사가 탄생했다. 주인공은 서울연구원의 배준식(52·사진) 도시경영연구실 연구위원이다. 배 위원은 5일 박원순 서울시장에게서 노동자이사 임명장을 받았다. 서울연구원 비상임이사로 이사회에 참여해 노동자 대표로 의결권을 행사한다. 임기는 2019년말까지다.
서울연구원은 지난해 10월부터 정관 등 내부 규정을 손보고 노동자이사 후보 추천을 받았다. 배 위원은 “직원이 직접 이사회에 참여해 직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노동이사제의 취지에 공감했다. 전공 분야가 지방재정과 예산 쪽이라 공공기관의 예산 수립·집행 등 경영과도 관련이 많아 출마하게 됐다”고 말했다.
12월12일에 후보 2명을 놓고 벌어진 투표에서 53.4%의 지지를 받은 배 위원이 1위에 올랐다. 후보 2명 모두 정규직에게만 주어졌던 기존 복지혜택을 비정규직까지 확대하자는 공약을 내걸었다. 현재 서울연구원에는 박사급 연구원 등 정규직보다 석사급 연구원, 시설관리직 직원 등 비정규직이 더 많다. 비정규직에게도 투표권이 주어졌고, 상시노동자 291명 가운데 80.4%가 투표에 참가했다. 서울연구원은 같은 달 30일 이사회 의결을 한 뒤 1위와 2위를 노동자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박 시장은 2명 가운데 1위를 한 배 위원을 노동자이사로 결정했다.
배 위원은 “현재 서울연구원에 노동조합은 없고 직원협의체만 있는데, 노동자이사가 생겨 직원들의 기대가 큰 것 같다. 그러나 12명의 이사회에 1명이 의결권을 행사한다고 해서 당장 뭔가 바꾸기는 쉽지 않다. 사외이사가 아니라 사내이사기 때문에 회사 안에서 경영진과 일상적으로 소통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동자이사제가 경영권을 침해할 거라는 재계의 우려에 대해선 “공공기관은 투명성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서울시 산하 투자·출연기관의 노동자이사제는 꼭 필요하다. 민간기업도 경영을 하다보면 지시 위주의 일방통행이 되기 쉬운데, 노동자-경영자의 협치 경영이 노동자의 주인의식과 책임성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노동자이사제를 도입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조례 제정 등을 거쳐 산하 투자·출연기관 13곳에 노동자이사제 도입을 의무화했다. 국내에선 처음이다. 박 시장은 “노동존중특별시인 서울의 핵심 정책으로, 노사관계 패러다임을 대립과 갈등에서 협력과 상생으로 바꾸고, 소통 단절과 갈등에서 오는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는 큰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통합을 준비하고 있는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철을 제외한 나머지 10개 기관도 이달 안에 노동자이사 임명을 완료할 예정이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사진 서울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