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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 할머니 숨비소리엔 질긴 생명력 있었네요”

등록 2017-01-13 15:59수정 2017-01-13 16:16

제주해녀박물관이 13일 펴낸
‘고등학생이 기록한 제주해녀 이야기’
9개교 학생 27명 참여해
지난해 8~9월 해녀 구술채록
“물질 이야기, 불턱, 잠수병 등
해녀들의 생애와 문화에 공감”
제주도 내 고등학생들이 해녀들의 생애사를 구술채록한 <고등학생이 기록한 제주해녀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제주도 내 고등학생들이 해녀들의 생애사를 구술채록한 <고등학생이 기록한 제주해녀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출산하고 나서 며칠 안 되어 물질을 나갔다가 귀가 먹먹해지는 ‘귓병’이 났다. 한번은 귀를 ‘딱’ 때리는 충격에 정신이 멈춰 서는 것 같았다. 물 밖에 나왔더니 잔잔한 바다였던 것이 사납게 휘몰아치는 것처럼 두려웠다. 그때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긴 뒤로 점차 물질을 잘 못 하게 됐다.”

제주 중앙여고 2년 김지영(18)양이 채록한 ‘두 해녀 취재일기’ 속의 현옥자(76) 해녀는 자신의 체험담을 이렇게 말했다.

제주해녀박물관이 13일 펴낸 <고등학생이 기록한 제주해녀 이야기>는 고등학생의 시각으로 바라본 해녀들의 삶이 녹아있다. 제주도 내 9개교 27명의 학생이 참여해 지난해 8~10월 23명의 해녀를 만나 해녀들의 생애사를 조사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제주도 내 고등학생들이 해녀들의 생애사를 구술채록한 <고등학생이 기록한 제주해녀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제주도 내 고등학생들이 해녀들의 생애사를 구술채록한 <고등학생이 기록한 제주해녀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고등학생들이 쓴 이 책에는 고단한 해녀들의 삶이 녹아있다. “우리 할머니는 15살에 처음 ‘망아리’를 달았다. 해녀가 된 것이다. 그때는 지금 해녀들이 입는 ‘고무옷’이 아니라 ‘물옷’이라고 하는 하얀 천으로 된 옷을 입고 하얀 수건을 머리에 쓰고 물질을 했다. 그 옷을 입으면 고무옷과 달리 물이 맨살에 닿아 매우 추워 가뜩이나 미역을 잡지 못하는데 더 잡지 못했다.” 세화고 2년 정현비(18)양은 할머니 오순자(73·서귀포시 성산읍 신양리)씨의 물질 경험을 이렇게 풀어냈다. 오씨는 “젖은 물옷 때문에 너무 추워 불턱에 모여 몸을 녹이다가 다시 물속에 들어가기를 2~3번 반복했지만 미역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추워도 덜덜 떨면서 물질을 계속했다. 그때 이후로 3년이 지나 능숙한 해녀가 되어 있었다”고 회고했다. 정양은 “뛰어난 물질 기술 뒤에는 질긴 생명력과 모성애가 숨어있다. 우리나라는 이런 해녀를, 우리 할머니들을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제주도 내 고등학생들이 제주해녀박물관이 주관한 <고등학생이 기록한 제주해녀 이야기>를 위해 해녀를 상대로 구술채록을 하고 있다. 제주도 제공
제주도 내 고등학생들이 제주해녀박물관이 주관한 <고등학생이 기록한 제주해녀 이야기>를 위해 해녀를 상대로 구술채록을 하고 있다. 제주도 제공
학생들은 해녀들을 억새다는 이유도 눈여겨봤다. “물이 항상 들어가 있으니까 고막이 상해. 그래서 해녀들이 이야기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싸우는 줄 알아. 보통 목소리로 얘기하면 잘 안 들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이야기를 나누니까. 그래서 해녀를 억세다고 하나 봐.” 한기옥(77·서귀포시 보목동)해녀는 제주사대부고 1년 황사빈(17)양에게 이렇게 들려줬다. 한씨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욕심부리면 물숨을 쉬게 되거든. 봄부터 초여름까진 천초가 가득하지 이때가 전복을 딸 때 욕심이 제일 많이 나. 이때를 다스리지 못하면 물숨을 쉬는 거야. 물숨이 우리의 숨을 끊어놓는다면 숨비는 우리의 숨을 늘려 놓는 것이여.”

물숨은 자신의 숨이 넘어서는 순간 바닷속에서 쉬게 되는 숨이다. 황양은 “숨을 참는 대가는 쌀이 되고 남편의 술이 되고 아이의 책과 연필이 되었지만 해녀에게는 한이 되었다”고 했다.

해녀들이 어릴 때 물질을 배우는 놀이도 기록했다. “9살 때부터 바다를 일종의 놀이터라고 여기며 오갔다. 바다에 들어가 모래를 잡곤 하는 ‘숨비닥질’을 하였는데 물속에 들어가 손을 땅에 닿았다는 것을 ‘나 모래 잡아왔쪄’라며 친구들에게 증명해 보이는 놀이었다.”(브랭섬홀아시아 11학년 박지현)

제주사대부고 2년 김은희(18)양은 “처음에 글을 쓸 때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고민했다. 어떤 식으로 작성해야 할지, 어떤 어투로 써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해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삶을 타인에게 잘 전달해 주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기우 제주도 해양산업과장은 “이번 구술채록 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해녀들의 생애와 문화를 인식하고 공감하게 됐다. 교육청과 협의해 청소년들에게 제주해녀문화를 보존·전승하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제주/글·사진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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