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차 제주도민 촛불집회가 21일 오후 제주시청 앞 도로에서 1천여명의 시민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박근혜 정권은 박정희로부터 시작됐잖아요. 박정희가 일으켰던 5·16 군사정권이 모든 일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5·16쿠데타가 청산되지 않은 채 당당히 이어지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역사의 인식을 바꾸기는 쉽지 않지만, 촛불을 통해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알리고 싶습니다.”
21일 오후 6시 제주시청 앞 도로에서 1천여명의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14차 제주도민 촛불집회의 한 부스에서 만난 정신지씨는 5·16도로명 변경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제주 5·16도로명 변경을 위한 국민행동’이라는 이름으로 전개하는 이 운동은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5·16도로 명칭이 5·16쿠데타를 기념해 이뤄진 것이어서 이를 바꾸자는 것이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서명하고 찬반 의견을 묻는 보드에 표시를 했다. 정씨는 “적폐 청산은 이름을 바꾸는 것부터 할 수 있다. 제주에서 기억해야 할 이름은 5·16이 아니라 4·3이다”고 강조했다.
제14차 제주도민 촛불집회에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5·16도로’ 이름을 바꾸자는 서명운동이 전개돼 눈길을 끌었다.
이날 촛불집회는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이 규탄 대상이었다. 집회가 시작되자 “재벌도 공범이다. 이재용을 구속하라”는 구호가 나왔고, 대형 스크린에는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구치소에서 걸어 나오는 이 부회장의 모습이 나왔다. 반면 특검에는 격려의 박수를 힘껏 보냈다.
문정현 신부는 “한마디로 돈의 위력을 보여준 것이다. 김기춘·조윤선은 구속하고 이들보다 혐의가 더 큰 이재용을 풀어준 것은 삼성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 것이다”고 비판했다. 문 신부는 강정마을 평화활동가들과 함께 매주 토요일 제주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21일 오후 제주시청 앞 도로에서 열린 제14차 제주도민 촛불집회에 강정마을 평화활동가들이 ‘구상권 철회’ 등을 요구하는 깃발을 들고 참가했다.
이날 촛불집회에서는 제주시 우도에 사는 서예가 이대길씨가 일필휘지로 노란 펼침막에 붓으로 ‘‘내 삶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촛불”이라는 글을 쓰고 그렸다. 서울에서 화보 편집장 등을 한 이씨는 “광우병 촛불 때는 1년 동안 광화문에 출퇴근했다. 그때는 ‘촛불로는 안 되겠구나’하는 열패감이 들었지만 이번은 다르다”며 “이재용이 구속되지 않았는데 법 위에 삼성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삼성 위에 촛불이 있다. 이 세상에는 삼성의 돈을 받은 사람과 삼성의 돈을 받지 않은 사람 두 부류가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고민성(18·제주제일고2)군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뒤에도 박근혜 정권이 유지될 줄 알고 촛불을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모습을 보면서 민주주의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늦잠자고 일어나보니 김기춘·조윤선이 구속돼 있었다. 표현의 자유를 짓밟은 이들의 구속은 국민의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제주/글·사진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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