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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맹고 안돼”…경산 문명고 학생·학부모, 국정교과서 반대시위

등록 2017-02-17 15:53수정 2017-02-17 16:10

학교 안에서 손팻말 들고 연구학교 신청 철회 요구
“언론 보고 알아…철회 안하면 전학까지 검토” 반발
전국 중·고교 연구학교 신청 문명고·경북항공고 2곳뿐
17일 오전 경북 경산시 문명고 1층 교장실 앞에서 올해 3월 문명고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손팻말을 들고 국정 역사과교과서 연구학교 신청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17일 오전 경북 경산시 문명고 1층 교장실 앞에서 올해 3월 문명고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손팻말을 들고 국정 역사과교과서 연구학교 신청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국정 역사교과서가 문제 많다는 건 알았는데, 우리 애가 다닐 학교에서 사용할 줄이야….”

17일 오전 11시께 경북 경산시 문명고 1층 교장실 앞에서 만난 학부모 문승자(46)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15일(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 신청 마감일) 밤 10시 넘어서 우리 애가 인터넷 뉴스 보고 이야기해줘서 우리 학교가 국정 역사교과서를 쓴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며 “가족적인 분위기이고 선생님들도 좋은 학교라고 해서 애를 입학시켰는데, 완전 ‘멘붕’이다”고 했다.

교장실 안에서는 학부모 몇명이 김태동 교장과 이야기를 하며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 신청 철회를 설득하고 있었다. 교장실 앞 복도엔 학부모 20여명과 학생 10여명이 손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학부모들은 ‘학생과 학부모, 교사의 의견을 무시한 국정교과서를 즉각 철회하라’고 적힌 펼침막도 들었다.

문명고는 지난 15일 경북도교육청에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 신청서를 내며 ‘교원들의 동의율 73%’라고 적었다. 그런데 문명고는 교장 직인도 찍지 않은 신청서를 낸 것으로 드러나 논란을 키우고 있다. 문명고는 연구학교 신청 마감일 하루 전인 지난 14일 오후 5시 학교운영위원회를 열어 연구학교 신청 안건을 5대 4로 통과시켰다. 처음 운영위 회의 땐 해당 안건에 반대(7명)가 찬성(2명)보다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교장이 회의를 중단하고 학부모위원을 설득해 이런 결과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학부모 조현주(41)씨는 “우리 아이가 다닐 학교를 이렇게 불명예스럽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국정 역사교과서를 왜 굳이 우리 학교에서만 쓰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간다. 교장 선생님도 좋으신 분으로 알고 있는데 왜 이렇게 갑자기 비민주적으로 행동하시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17일 오전 경북 경산시 문명고 1층 교장실 앞에서 학부모들이 펼침막을 들고 국정 역사과교과서 연구학교 신청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17일 오전 경북 경산시 문명고 1층 교장실 앞에서 학부모들이 펼침막을 들고 국정 역사과교과서 연구학교 신청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올해 3월 문명고에 입학하는 신입생 10여명도 ‘저희는 문명고등학교를 입학하고 싶지, ‘문맹고등학교’로 입학하고 싶지 않습니다’, ‘보직 해임 취소하라’, ‘국정교과서를 즉각 철회하라’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문명고는 지난 9일 연구학교 신청에 반대하는 최재영(46) 부장교사를 보직 해임하고, 다른 교사 2명도 담임과 도서관 업무에서 물러나도록 했다.

학생 백선비(16)군은 “내가 다음달부터 공부할 학교가 국정 역사교과서를 쓴다는 사실을 어제 기사를 보고 처음 알게 돼 기분이 안 좋다. 잘못된 역사를 배우고 싶지는 않다. 연구학교 신청 철회를 안 하면 자퇴하고 다른 학교에 다닐 생각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명고는 이날 하루종일 연구학교 신청 문제로 홍역을 앓았다. 문명고 재학생 200여명은 오전 9시부터 한시간 동안 운동장에서 손팻말을 들고 연구학교 신청 철회를 요구했다. 비슷한 시간 교문 밖에서는 전교조 경북지부, 민주노총 경산지부, 경산녹색당 등에서 나온 20여명이 펼침막을 들고 연구학교 신청 철회를 촉구했다. 반면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사람 20여명은 교문 밖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채택 환영 집회’를 했다.

지금까지 전국 5249개 중·고교 가운데 연구학교 신청을 한 학교는 사립인문계인 문명고와 사립특성화고인 경북항공고(영주) 단 두곳뿐이다. 구미 오상고도 연구학교 신청을 했지만 학생 수백명이 운동장에서 연구학교 신청 철회 반대 집회를 하는 등 반발이 커지자 16일 신청을 철회했다. 문명고는 학교법인과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산/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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