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의 길’ 노동이사제 (하)
나라마다 다양한 ‘유럽 노동이사’
독일
감독·경영이사회로 이사회 이원화
스웨덴
노동이사 대부분 노조 간부지만
“노조만 대변해선 안돼”
네덜란드
사업장협의회가 협의권·승인권
내부인은 노동이사 못맡아
벨기에
노총-경총 협상 결과 96$ 반영
노동계가 먼저 노동이사제 경계
나라마다 다양한 ‘유럽 노동이사’
독일
감독·경영이사회로 이사회 이원화
스웨덴
노동이사 대부분 노조 간부지만
“노조만 대변해선 안돼”
네덜란드
사업장협의회가 협의권·승인권
내부인은 노동이사 못맡아
벨기에
노총-경총 협상 결과 96$ 반영
노동계가 먼저 노동이사제 경계
볼보 자동차(승용차)는 스웨덴의 아이콘 브랜드 또는 국민기업으로 불린다. 하지만 한 꺼풀 벗기면 중국을 보게 된다. 2010년 중국의 자동차회사 질리가 매입한 탓이다. ‘주4일 근무제’까지 실험하며 복지를 선도하는 스웨덴 노동자들이 제 나라에선 노조도 용인 않는 중국 자본 밑에서 일하는 셈이다. 실제 당시 볼보 노조에선 질리 인수에 맞서 스웨덴 자본의 인수를 추진하기도 했다.
볼보 역시 1970년대 이후 ‘노동이사제’를 중단해본 적이 없다. 현재 이 회사의 이사회 15명 이사 가운데 3명이 공장 노동자 출신이다. 그밖에 질리그룹의 리슈푸 회장을 포함한 질리 출신 3명, 자동차·부품업계 경영인 7명, 이케아 등 다른 업계 출신 2명이 이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지난 12월 예테보리시 외곽, 볼보 자동차 본사에서 만난 한나 파예르 인사부국장은 ‘마지막 파업’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고 말했다. 과거 볼보 대표이사들은 “볼보 사전에 파업은 없다”고도 말해 왔다.
노사에 시련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만도 볼보는 3500명 정도를 구조조정해야 했다. 한나 부국장은 “특히 노동이사들이 명예퇴직을 유도하고 시간제 일자리를 마련하는 등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볼보 미국 사업장이나 브라질 사업장에서 2010년 이후에도 때때로 파업이 발생하는 것과 대비된다. 유일한 차이는 아닐 테지만 그 원인과 결과에 노동이사제도 자리한 것은 분명한 셈이다.
하지만 노동이사제를 도입한다 하여 ‘한국’이 ‘스웨덴’이 될 리 없다. 유럽서도 나라별로 경제여건, 노사관계 등에 따라 각양으로 노동자 경영참여 제도를 강구하고 있다. 일단 유럽 주요 31개국 가운데 노동이사제를 법제화한 나라만 19개국이다. 사업장협의회(노조·비노조 구분없이 사원 대표들로 구성된 협의체)를 주요 수단으로 삼거나 두 제도가 접목된 국가들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향후 심화될 ‘한국 모델’도 그 사이 어딘가 있을 법 하다.
■ 노조 주도 화합형 : 독일
노동이사제가 가장 두드러진 나라는 독일이다. <한겨레>가 기획취재에 앞서 전문가들을 탐문했을 때, 스웨덴노총(LO)의 법률자문(클라에스 미카엘 욘손)이 “제일 흥미롭고 정교한 시스템은 독일에서 볼 수 있다”고 말할 정도다.
독일 기업 이사회는 영미식 단일 이사회와 달리 감독·경영이사회로 이원화되어 있다. 경영이사회의 상부 격으로 감독이사회가 경영이사를 임면하고 회사의 큰 방향을 결정한다.
노동이사는 감독이사회 소속이다. 구성비가 세계 으뜸이다. 2000명 이상 기업에선 절반까지, 500명 이상 기업에선 적어도 3분의 1이 노동이사다. 아예 ‘노사공동결정제’로 부르는 이유다. 노동이사 선발 절차, 자격 등이 규모나 산업별로 촘촘히 제도화되어 있다.
노동이사는 단순히 노동자의 권익만 대변하지 않는다. 노동자이면서 이사라는 점을 책무로 삼는다. 이는 유럽 노동이사의 전반적 특징이기도 하다.
프랑크 자크 독일노총 국제유럽노조정책부서 책임자는 “독일의 공동결정제는 감독이사회에 노동자 대표가 참여하고, 사업장협희회를 통해 경영진과 협의하는 두 개의 큰 축으로 이뤄진다”면서 “노동자 대표의 감독이사회 참여는 (다른 유럽국가와 비교해) 가장 진보된 형태”라고 말한다. 노사 화합의 목표가 분명하지만, 노조 본위의 성향도 올돌하다. “소비자들의 다양한 취향에 맞춰 제품을 생산하려면 소비자와 소통이 필요하듯, 노동자와의 소통도 필요하고 협의를 통해 경영혁신도 가능하다”(프랑크 책임자)고 보기 때문이다.
■ 노조 분리 화합형 : 스웨덴
스웨덴은 독일보다 제도가 단순하지만 실효력은 만만치 않다. 독일과 달리 사업장협의회가 없고 이사회도 하나다. 25명 이상부터 규모별로 2~3명의 노동이사를 둔다. 이사회 전체 3분의 1 수준이지만, 노동이사 대부분이 기업 내 또는 상급 노조의 주요 간부란 특징이 있다.
스웨덴 역시 노동이사제가 노조와 깊이 맞물린 구조지만, 동시에 노동이사를 노조와 ‘분리’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권한은 주주대표 이사와 동일하지만, 노동이사가 이사회의 다수가 될 수 없고 다수의 결정을 뒤집을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노동이사는 노사 공동결정·노동쟁의 관련 회의, 노사간 이해가 명백히 충돌하는 사안이 관련된 회의에도 참석해선 안된다.
한편으로 비노조원 경우 이사회에서 대변되기 어렵고 노동이사도 되기 어렵다. 노조 영향력을 보장하되, 노사 협력을 유도한다.
스웨덴의 대표적 자동차 부품회사인 SKF에서 지난 12월 만난 노동이사 2명은 모두 본사 생산직 노조 간부다. 전 노조위원장이던 케네트 칼손은 16년째 노동이사다. 이들은 “월급 말고는 주주 쪽 이사들과 권한 차이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노조만 대변해서는 안된다. 어떤 결정으론 노조원들 항의도 받는다”고 말한다. 자르코 주로비치 노동이사는 “우리가 이사회 결정을 방해할 거란 오해가 있다. 하지만 어떤 결정을 하기 전 안건을 (노동이사한테) 전달받고 노조원과 공유해가며 사실상의 합의를 도출시킨다”고 말한다.
스웨덴의 높은 노조가입률(70%)에 맞춤이 된 유형인 셈이다.
■ 비노조 화합형 : 네덜란드
네덜란드엔 기업 노조가 없다. 상급 노조 가입률도 18%에 불과하다. 유럽 주요국가에 견줘 상당히 낮지만 유럽 경영참여 지수(EPI)는 최상위권이다.
사실상 경영참여는 전 직원 투표로 선출·구성된 사업장협의회가 주도한다는 게 이 나라 특징이다. 50명 이상 기업이 대상으로, 사안에 따라 협의권, 승인권을 갖는다. 체계적이다. 회사 매각·이전, 조직개편, 비정규직 채용, 신기술 도입 등에 대해선 협의 권한, 성과급·임금, 건강·안전정책, 채용·해고, 승진·교육, 청년 노동자 업무 등에 대해선 승인권을 행사한다. 협의 의견을 거부할 경우 회사는 한달간 시행을 멈춘 상태에서 사업장협의회의 소송을 기다려야 하고, 불승인 사항을 거부하려면 사용자가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사업장협의회가 감독이사회의 노동이사도 추천한다. 100명 이상 공·사 기업에서 경영이사회를 감시·견제하는 역할을 맡는 이사회로 전체 이사의 3분의 1이 노동이사다. 네덜란드 국민연금 운용사인 APG의 사업장협의회 쪽은 “법적으론 1년 2번, 실제론 12차례 대표이사와 만나고, 그중 2번은 감독이사회 이사도 참석한다”며 “우리가 (경영참여에 있어) 노동이사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노동이사는 ‘노동자 대표’라기보다 ‘노동 전문 이사’를 자처한다. 애당초 내부인은 그 회사의 노동이사가 될 수 없다. 외부인에게만 노동이사 자격을 주는 것으로, 네덜란드가 유일하다. 노동이사가 사업장협의회와 이사회를 잇되, 마찬가지 전체 회사 이익을 챙기도록 한 장치다.
전국노총은 경영자총연합회(또는 산별)와 임금, 근로시간 등을 협상해 대부분의 기업(81%)에 적용시킨다.
사업장협의회 중심의 3박자가 네덜란드를 최상위 노동자 경영참여 국가로 만든다. 두 기업의 노동이사로 활동 중인 암스테르담대학 노동연구소 로버르트 판헷카르 박사는 “노사갈등이 지나치게 심하다면 사업장협의회라는 완충 기제를 활용할 수도 있다”고 한국에 조언한다.
노동계가 먼저 노동이사제를 경계하는 경우도 있다. 벨기에 최대 노조 ACV-CSC 관계자는 “노동자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선을 긋는다. 노조가입률이 50%이지만 노총과 경총간 협상 결과의 지배율이 96%에 이르는 탓으로 보인다. 프랑스 정부가 대주주인 에너지기업 엔지의 노동이사 필립 르파도 <한겨레>에 “프랑스 노동이사제는 노사의 공동경영보다 경영진을 감시·견제하는 것”이라며 “엔지가 수년 전 구조조정 차원에서 합병을 추진할 때 노조 반대로 소송을 제기해 2년간 합병이 지연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노동계는 노동이사가 소수에 그치는 구조적 한계도 자주 비판한다.
뜻밖으로 체코, 헝가리,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도 노동이사제를 시행한다. 서구와 달리 기업내 노조나 사업장협의회의 경영 참여는 매우 적다. ‘서울시 모델’은 현실적으로 동유럽 수준을 좇아가는 모양새다. 한편으로 산하 공기관 13곳에 노동이사 1~2명을 둔다는 점에서, 그리스와 유사하기도 하다. 물론 국유기업 전체가 대상이란 거대한 차이가 있다.
거기에 그리스는 물론 동유럽 국가보다 노조가입률이 낮고, 노사 갈등은 현저하며, 대개 개별 노조가 임금 등에 국한된 단체협상을 할 뿐, 노조가 없다면 불리한 취업규칙 변경 때도 정보입수나 대화조차 어려운 사업장이 태반이다. 여기서, 한국의 노동이사제는 갓 발아했다.
예테보리/글·사진 임인택 기자, 파리/곽정수 선임기자 imit@hani.co.kr
스웨덴 예테보리시 외곽에 위치한 볼보자동차 본사 전경
볼보자동차 본사의 1층 로비 전경
볼보자동차의 한나 파예르 인사부국장은 ”마지막 파업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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