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 문제점 때문에 직장을 옮기는 과정에 피해를 본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8일 기자회견을 열어 피해구제를 촉구했다.
2014년 말부터 경남 통영시 ㄴ조선에 근무하던 네팔 출신 노동자 ㄱ(29·여)씨는 지난 1월 대장게실염이라는 병에 걸려 선박에 반복해서 오르내리는 일을 하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ㄱ씨는 사업주에게 다른 직장으로 옮길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사업주는 귀찮게 한다며 전화기를 던져 ㄱ씨에게 전치 2주 상처를 입혔다. ㄱ씨가 이를 경찰에 신고하자, 사업주는 또다시 ㄱ씨에게 욕을 하며 때렸다.
전남 광양시 ㄷ조선에서 지난해 3월부터 근무하던 네팔 출신 노동자 ㅂ(30)씨는 지난 1월 업무 도중 손가락뼈가 부러지자, 사업주에게 다른 회사로 옮길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사업주는 치료비 등으로 돈을 썼다며 1000만원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결국 ㅂ씨는 1000만원을 주고 업체변경 동의서를 받아, 최근 경남 김해로 직장을 옮겼다.
경기도 김포시 ㅅ기업에서 2015년 3월부터 근무하던 네팔 출신 노동자 ㅇ(31)씨는 열악한 근무환경을 견디지 못해 사업주에게 여러 차례 이직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사업주는 지난해 12월에야 이직을 허락하며, 구인비용을 공제하겠다며 급여에서 100만원을 떼갔다.
경남이주민센터, 경남이주민연대회의, 다문화가정연대 등은 8일 경남 창원시 경남이주민노동복지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직횟수 3회 제한, 구직기간 3개월 제한, 자발적 사업장 이동제한 등 현행 고용허가제의 3대 독소조항을 즉각 철폐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고용허가제의 문제점 때문에 직장을 옮기는 과정에 폭행을 당하거나 금품을 갈취당한 외국인 이주노동자 3명이 참석해 자신의 피해사례를 소개했다.
이철승 경남이주민센터 대표는 “우리 정부가 운영하는 고용허가제는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는 정책으로,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임금 상승을 막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결과적으로 사내 비정규 하청노동자를 양산하는 등 한국 산업구조 개선을 막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외국인노동자를 고용함으로써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고용주에게 부담시키는 고용부담금제를 도입하는 등 이제는 고용허가제를 합리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것만이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인 일자리를 보완하되 대체하지는 못하도록 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고용허가제는 외국인 이주노동자 고용을 허가하고 관리하는 제도다. 현행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의 이직횟수를 최고 3차례로 제한하고, 반드시 고용주의 동의를 받아야만 하도록 정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주 가운데 일부는 이 제도를 악용해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을 막거나, 이동 대가로 수백만원의 금품을 요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구타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자 ㄱ씨는 “이직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가 사장님에게 맞아 코피까지 났다. 이젠 한국을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다른 피해자 ㅇ씨는 “욕도 먹고 돈도 뜯겼다. 나처럼 억울한 일을 다른 외국인 노동자는 당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글·사진 최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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