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관광객 찾는 바오젠거리엔 내국인과 시민 늘어
호텔·관광농원·화장품가게 등 문닫거나 인원 줄여
크루즈 기항 전면 금지돼 강정항도 개항 늦어질 듯
제주도는 이번 기회를 관광체질 개선 기회로 삼을 계획
호텔·관광농원·화장품가게 등 문닫거나 인원 줄여
크루즈 기항 전면 금지돼 강정항도 개항 늦어질 듯
제주도는 이번 기회를 관광체질 개선 기회로 삼을 계획
“예전에는 지나가던 중국인 관광객들이 별미를 먹겠다며 줄줄이 들어왔어요. 하지만 지금은 90% 이상 줄었다고 봐야해요.”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제주시 연동 바오젠거리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김아무개(58)씨는 이렇게 얘기하며 떡볶이를 뒤집었다. 마침 20대 초반의 중국인 여성 관광객 2명이 떡볶이를 먹으러 들어왔다. 중국 정부가 한국 여행 금지령을 내린 15일 오후 7시30분 어둠이 내린 바오젠거리는 내국인 관광객과 시민들로 부산했다. 지난달만 해도 이 시간이면 중국인들이 단체로 몰려다니며 쇼핑을 하거나 식당을 이용했지만 이날은 삼삼오오 다니는 중국인 관광객들만 눈에 띨 뿐이었다. 바오젠거리는 2011년 중국 바오젠그룹 직원 1만1000명이 단체로 제주도를 찾은 이후 중국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면서 이를 기념하려고 제주도가 만들었다.
바오젠거리 430여m 양쪽으로 들어선 200여곳의 가게는 주로 음식점과 옷가게, 액세서리, 화장품 가게 등으로 구성됐다. 대부분의 가게들은 중국인을 아르바이트로 두고 있다. 이 시간 거리에 있는 12곳의 화장품 가게 가운데 중국인 관광객들이 있는 곳은 2곳뿐이었다. 나머지는 텅 비었다. 액세서리점이나 대형약국 3곳도 2~3명 정도의 손님만 있을 뿐 한산했다. 제주도는 바오젠거리 음식점의 매출액이 지난 2일 이후 전월 대비 30~70%까지 감소하고 업소들은 월세 등 임대료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9월부터 화장품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재중동포 송아무개(24)씨는 “지금처럼 손님이 없을 때가 없었다. 보통 저녁시간에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데 지금은 아예 없다”고 말했다. 또다른 화장품 가게에서 일하는 김아무개(23)씨는 “지난주부터 단체 관광객들이 없어 직원을 한명 줄였다”고 말했다.
이날 제주항 국제여객터미널에는 마지막 크루즈선이 들어왔다. 16일부터 중국발 크루즈선의 기항이 전면 중단됐다. 쇼핑을 마친 중국인들이 버스에서 내려 번호판을 든 가이드를 따라 크루즈로 돌아가고 있었다.
터미널에서 만난 전세버스 기사 한희철(42)씨는 “크루즈가 들어오지 않으면 막노동이나 아르바이트라도 뛰어야 할 것 같다”며 “1월부터 하루에 2차례씩 실어나를 수 있다는 얘기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멘붕’ 상태다. 지금이 세월호 참사 때보다 더 힘들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여행사에 소속된 전세버스 기사들은 월급 70만~80만원에 1회 운행에 4만~5만원의 수당을 포함해 한달 200여만원을 받지만 중국인들이 발길을 끊으면서 큰 타격을 받게 됐다.
옆에 있던 기사 김아무개(50)씨도 마찬가지다. 김씨는 3년 전 1억7천만원에 전세버스를 사서 단체손님을 받고 있다. 김씨는 “다행히 나는 국내 학생단체도 받고 있어서 16일부터는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순수입이 한달 400만원인데 차량 할부금으로 한달 150만원을 내면 빠듯하다. 지금은 일당도 안나온다”고 한숨을 지었다.
올해 제주항 525회, 강정항 178회 등 모두 703회에 걸쳐 150만명이 크루즈를 이용해 제주를 찾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현재 기항 취소를 밝힌 것만 192회다. 강정항 개항도 늦어질 전망이다. 도 관계자는 “이런 추세로 취소되면 강정항으로 들어와야 할 크루즈가 제주항으로 들어오게 돼 강정항 개항이 7월 계획에서 미뤄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제주도청에서 걸어서 10분 이내 거리에 있는 호텔 3곳도 이미 문을 닫았다. 음식점들도 속속 문을 닫고 있다.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 도로가의 감귤체험농원들도 마찬가지 상황에 내몰렸다. 이곳에서 2년째 감귤농원을 운영하는 양아무개(63)씨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완전 끊겼다. 건물 임대료도 나오지 않겠지만 국내 관광객을 받기 때문에 영업은 계속할 계획이다. 그러나 10여곳의 체험농원 가운데 상당수가 문을 닫고 있다”고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제주와 중국을 잇는 항공편도 중단하고 있다. 중국 내 23개 도시 162편 가운데 15일 현재 16개 도시 96편이 중단됐다. 이날 하루 직항편으로 제주에 들어온 중국인 관광객은 79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3085명에 비해 74.4%나 감소했다. 국내 경유편을 이용한 중국인도 659명으로 전년도의 1204명보다 45.3% 줄었다. 이에 따라 중국의 한 저가항공사 제주사무소도 최근 철수했다.
면세점도 타격을 받기는 마찬가지인데 상대적으로 버틸 여력은 있다. 면세점의 고객은 항공편과 크루즈편이 7대 3 정도로 지난해 말부터 중국 관광객 마케팅 대상을 단체 관광객에서 싼커(개별관광객)로 전환하고 있다. 롯데면세점 제주점 관계자는 “이달 1~15일 기준 매출액은 10~20% 빠졌고, 인원은 하루 평균 4천~5천명에서 1천~2천명으로 줄었다. 이 가운데 싼커는 500~1천명 정도다. 이들을 유치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도내 여행업체 326곳 가운데 중국계 업체 78곳, 특급·관광호텔 등 숙박업소, 전세버스 59곳 2269대, 중국인 단체 음식점 105곳 등이 직접 피해를 입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오히려 이번 중국의 조처가 중국 항공사를 비롯해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여행사, 호텔, 음식점 등에 직접 타격을 주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중국계 뉴화청국제여행사는 중국인 관광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15일을 앞뒤로 영업을 잠정 중단할 계획이던 이 여행사는 당분간 영업을 지속하기로 했다.
반면 중국인 관광객이 빠진 자리에 내국인 관광객이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올해 들어 15일까지 제주를 찾은 내국인 관광객은 233만8500여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8.8% 늘었다. 이달 들어서도 중국인은 7만1995명으로 33.3% 급감한 반면 내국인은 42만9682명으로 11.8% 늘었다.
제주도는 지난 6일 원희룡 지사를 대책본부장으로 하는 대책본부를 구성해 상황 파악에 나서는 한편 이번 기회를 제주관광의 체질 개선 기회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홍봉기 제주도 관광정책과장은 “정부와 조율을 거쳐 피해업체가 위기를 벗어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중국에 편중된 항공편을 일본과 동남아 등지로 시장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공항에 여유가 생기면서 국내 관광객 유치에도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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