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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고통 나몰라라… ‘뒷돈’ 챙긴 공무원

등록 2017-03-23 17:44수정 2017-03-23 21:59

경주 건천읍 송선리 주민 수십년째 채석장 운영으로 고통
22일 오후 경북 경주시 건천읍 송선리 달천경로당 앞에 채석장 허가 연장 반대 펼침막이 걸려 있다. 펼침막 너머로 채석장이 있는 산 골짜기가 보인다. 경주/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22일 오후 경북 경주시 건천읍 송선리 달천경로당 앞에 채석장 허가 연장 반대 펼침막이 걸려 있다. 펼침막 너머로 채석장이 있는 산 골짜기가 보인다. 경주/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석산 개발 39년 동안 주민은 고통속에 살고 있다’, ‘송선리 석산개발 허가결사반대’, ‘지진에 놀란 가슴 석산 발파에 더 놀란다’.

지난 22일 오후 3시 경북 경주시 건천읍 송선리. 달천경로당 주변에는 주민들이 걸어 놓은 펼침막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달천경로당 앞 도로에는 무언가를 실은 트럭이 먼지를 날리며 오갔다. 달천경로당 바로 밑에 있는 송선저수지에는 ‘상수원 보호구역’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마을 위쪽으로는 케이티엑스가 지나가죠, 잊을만하면 지진 일어나죠, 채석장에서는 폭발음 들리죠, 우리는 노이로제 걸려요. 채석장에서 날아 드는 먼지 때문에 빨래를 못 널어요. 마당 평상도 매일 닦는데, 걸레가 까맣게 변해요.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어요.” 달천경로당 주변에서 만난 주민 장아무개(62)씨는 채석장 이야기를 꺼내자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송선리 주민은 모두 500명가량인데 달천마을엔 80명이 채 되지 않는 주민들이 산다.

달천마을 주민들은 채석장 발파 소음을 비롯해 발파와 트럭이 일으키는 먼지, 채석장에서 흘러나오는 오염수로 인한 상수원 오염 등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날 주민들이 보여준 동영상을 보니, 채석장이 있는 골짜기에서는 누런 흙탕물이 마을로 내려왔다. 이 물은 송선저수지와 건천나들목(IC) 쪽 골짜기에서 내려온 물과 합쳐져 형산강으로 흘러든다. 달천마을에서 북동쪽 1.2㎞에는 건천읍 주민 1만여명에게 식수원을 공급하는 건천정수장이 있다. 달천경로당 바로 밑에 있는 송선저수지 주변은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사달이 난 건 마을에서 서쪽으로 1㎞ 떨어진 골짜기에서 토석채취업체인 영남산업㈜과 ㈜천우개발이 수십년째 채석장을 운영하면서부터다. 산지관리법상 토석 채취는 자치단체장이 최대 10년까지 허가를 내줄 수 있고 연장이 가능하다. 그런데 경주시는 주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최근 허가기간이 끝난 천우개발의 토석 채취를 계속 허가할지 여부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아 주민들의 분노를 키우고 있다.

지난 11일 경북 경주시 건천읍 소성리 채석장의 모습. 지율 스님 제공
지난 11일 경북 경주시 건천읍 소성리 채석장의 모습. 지율 스님 제공
두 업체 가운데 영남산업은 2013년 말 연장된 채석 허가(채취면적 2만8000㎡·채취량 82만㎥)가 지난해 12월31일 끝났다. 천우개발은 2010년 1월1일부터 갱신된 채석 허가(채취면적 12만㎡·채취량 178만㎥)가 지난달 17일 끝났다. 그런데 천우개발이 경주시에 채석 허가 연장 신청을 하면서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졌다. 주민들은 경주시에 허가 연장을 내주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엔 주민들의 고통 호소에도 불구하고 채석 허가가 갱신되는 배경을 짐작할 만한 사건이 일어났다. 허가 연장 신청을 앞둔 영남산업 대표이사 최아무개씨가 경주시 산림경영과의 인허가 담당자인 안아무개 산지개발팀장(6급)에게 여러 해에 걸쳐 2억5700만원을 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영남산업이 토석 80만㎥를 불법으로 더 채취해 허가 받은 양의 두 배 가까이 캐낸 사실도 검찰 수사에서 밝혀졌다. 결국 대구지법 경주지원은 지난달 10일 안 팀장의 뇌물수수 혐의를 인정해 징역 9년에 벌금 2억원, 추징금 3억6200만원을 선고했다. 최 대표도 징역 3년6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영남산업은 대표이사가 구속되는 바람에 허가 연장 신청을 하지 않았으나 주민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 한다. 채석장에는 아직도 장비와 직원들이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주민 홍성흠(51)씨는 “수십년 동안 채석장 때문에 피해를 입고 살았는데 더 이상은 용납하기 어렵다. 이렇게 공기 좋은 시골 마을에서 주민이 폐암으로 죽기도 했는데 불안해서 못살겠다. 경주시에 진정서를 넣고 시위도 하는 등 아무리 난리를 쳐도 아무도 우리 목소리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고 허탈해했다.

경주시는 천우개발의 채석 허가 연장 여부를 고심 중이다. 최일부 경주시 산림경영과장은 “천우개발은 6년 동안 채석 허가 연장 신청을 내놓은 상태인데, 서류가 미비해서 보완을 요구했다. 모든 사안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채석 허가를 내줄지 여부를 신중하게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최근엔 업체들이 주민에게 보상금을 주는 대신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내용의 합의를 요구해 이를 받아들인 주민과 거부하는 주민들 사이에 틈이 벌어졌다. 업체 쪽이 주민들에게 돌린 동의서를 보면, “달천 주민들은 회사의 석산개발 사업에 동의하고 이 동의서에 서명날인을 한다”고 돼 있다. 대신 업체가 한 가구에 피해보상금으로 1000만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한 주민은 “달천마을 40가구 중에서 절반 이상이 서명을 해줬고 몇집은 돈을 실제로 받았다고 들었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은 피해보상금을 거부하며 계속 채석장 영업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경주시와 경주시의회는 문제 해결이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 22일 정현주 경주시의원이 의원들 가운데 처음으로 달천마을을 찾아 주민 이야기를 듣고 채석장을 둘러봤다. 정 의원은 “주민들이 그동안 이토록 불편을 호소했는데 경주시는 행정편의적으로 밀어 붙였다”며 “주민들 불안이 완전히 해소 될 때까지 경주시는 채석 허가 연장을 내줘서는 안된다. 또 식수원 오염 등 채석장이 환경에 미치는 실태 여부도 명확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짚었다.

경주/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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