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전국 전국일반

“생거진천에 미군 훈련장? 사드 얘기까지…이건 아니지유”

등록 2017-03-31 11:43수정 2017-03-31 12:04

‘미군 훈련장 반대’ 펼침막 물결
60곳 단체, 대책위 꾸려 반대 나서
국방부 2년전부터 추진했지만
주민들에겐 지난 1월에야 알려져
훈련장 들어설 만뢰산 자낙
3㎞안 문화유적 즐비·미호종개 서식
주변 주민들 마을 사라질까 우려
지형·규모, 성주 사드 예정지와 비슷
레이더실험까지 해 주민들 우려
국방부쪽 “훈련장일뿐…사드 무관”
30일 충북 진천군 중심가에 내걸린 미군 훈련장 반대 펼침막. 진천군 곳곳에 수천장의 펼침막이 나부끼고 있다.
30일 충북 진천군 중심가에 내걸린 미군 훈련장 반대 펼침막. 진천군 곳곳에 수천장의 펼침막이 나부끼고 있다.
“생거진천 자부심으로 살아왔는디 미군 훈련장이 뭔 말이여. 사드 얘기꺼지 나오데. 이건 아니지유.”

옛부터 ‘살아선 진천에, 죽어선 용인에 살아야 한다’는 ‘생거진천 사거용인’이라고 할 정도로 평야가 넓고 비옥한 고장, 충북 진천이 술렁이고 있다. 30일 진천군은 온통 펼침막 물결이다. 진천 어디를 가든 형형색색의 ‘미군 훈련장 반대’ 펼침막을 만날 수 있다. 진천읍내 모든 가로등엔 ‘미군 훈련장 결사반대’라고 적힌 노란 깃발이 나부낀다. 읍내 외곽 모든 마을에도 펼침막이 걸렸다. 진천군청 앞에서 만난 한 시민은 “줄잡아 수 천장은 될 겁니다. 진천에서 이렇게 많은 현수막은 처음”이라고 했다.

진천이 반대하는 미군 훈련장은 미군 독도법 훈련장이다. 독도법은 지도에 표시된 내용을 보고 목표 지점을 찾아가는 기술이다. 산악 훈련장이라고도 한다.

국방부는 2년 전부터 차근차근 추진했지만 진천군은 지난 1월 국방부가 비공개 공문을 건넬 때에야 뒤늦게 사실을 알았다. 국방부가 2015년 사업을 확정하고, 지난해 한·미 합동으로 진천군 진천읍 문봉리, 백곡면 사송리 일대 130만㎡에 이르는 사업 용지를 실사한 뒤 한국농어촌공사를 내세워 용지 매입에 나선 것도 진천군은 까맣게 몰랐다. 연주흠 진천군 안전건설과장은 “아무리 군사 시설이라지만 통보도 없이 사업을 추진해 난감한 상황이다. 지금도 사업과 관련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다”고 말했다. 연 과장은 “지난달 진천을 방문한 국방부 관계자 등에게 후보지 선정 이유, 추진 과정 등을 물었지만 확답을 피했다. 조만간 다시 찾아 사업 설명을 한다고 했지만 이후 감감무소식이라 답답하다”고 덧붙였다.

진천지역 이·통장 협의회 등 60여곳의 시민사회단체는 ‘미군 훈련장 저지 범군민 대책위원회’(상임대표 유재윤)를 꾸려 반대에 나섰다. 이들은 다음달 10일 군민 3분의 1 이상(2만여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반대 집회까지 열 참이다. 대책위는 군민 반대 서명운동, 릴레이 단식 등을 벌이고 있으며, 국방부 항의 방문도 추진하고 있다. 대선 후보들에게 미군 훈련장 설치 관련 정책 질의서를 보내 후보들의 태도를 묻기로 했으며, 답에 따라 낙선운동 등 유권자 운동도 벌이기로 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지난 29일 충북을 찾아 “국방부가 진천 미군 훈련장을 추진하면서 진천군 등과 한 번도 협의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민주적·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한 채 군민에게 항복을 요구하는 꼴이다. 사업을 공론화하고, 주민 동의와 환경영향평가 등 공식 절차를 거쳐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군 훈련장 조성 예정지는 진천의 주산 만뢰산(611m) 자락으로 반경 3㎞ 안에는 문화유적이 즐비하다. 주민 등이 미군 훈련장을 반대하는 주된 이유다. 예정지 남쪽에는 통일신라 1등 공신 김유신 장군의 태실(사적 414호), 태령산성, 김유신 생가 등이 잇따라 조성돼 있다. 진천 연곡리 석비(보물 404호)·통일대보탑 등으로 알려진 보탑사도 가깝다. 예정지 북쪽 1㎞ 남짓 떨어진 곳에 백곡천과 백곡저수지가 있다. 이곳은 천연기념물 454호 미호종개 서식지다. 진천군은 이 일대를 문화·관광 중심지로 키우고 있다. 지금까지 공원·휴양림 조성 등에 600여억원을 투자했고, 앞으로 투자를 늘려나갈 참이다.

훈련장 예정지 코앞 백곡면 지구마을엔 41가구 60여명이 산다. 주민들은 미군 훈련장이 들어서면 마을이 아예 사라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 마을 이호열(60) 이장은 “많은 문화유적, ‘생거진천’의 빼어난 자연환경으로 먹고살아 왔고, 또 앞으로 살아갈 마을에 미군 훈련장을 만들어선 안 된다. 아마 땅속에 계신 김유신 장군도 훈련장을 반대할 것이다. 제발 조용히 살게 놔두라”고 했다.

훈련장 예정지에서 900m 정도 떨어진 곳엔 천주교 시설인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무아의 집’도 있다. ‘땀의 순교자’로 불리는 최양업 신부의 사목지로, 지금은 천주교 신자 등이 일상을 떠나 조용히 기도하거나 수련하는 피정 공간이다. 무아의 집 한 수녀는 “이곳은 한국 천주교 전파에 큰 역할을 한 베티성지 15개 교우촌 가운데 하나인 동골이 있던 곳이다. 청정하고 아늑한 수녀들의 기도처가 철조망으로 둘러쳐지게 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진천 주민들은 미군 훈련장 반대를 표면에 세웠지만, 속으론 경북 성주에 이어 제2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지역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국방부 등이 지금은 미군 훈련장이라고 하나 언제든 사드 후보지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주민 대책위 위원 몇몇은 최근 경북 성주 사드 배치지역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해자 군민 대책위원(여성농민회 대표)은 “미군 훈련장도 안되지만 사드는 더 안된다. 사업 예정지는 과거 골프장 건설이 추진됐었고, 야트막한 산과 구릉으로 돼 있는 데다 훈련장 규모(40만평) 또한 성주와 똑 닮았다. 군사적인 지식은 없지만 누가 봐도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주민 등은 주변에 미사일 부대, 레이더 등이 운용된 점도 주목한다. 유재윤 군민대책위 공동대표는 “지난해 사드 배치 문제가 불거졌을 때 국방부가 기자들을 데려와 레이더 전자파 실험을 한 곳이 바로 이 지역이다. 비공개였지만 우린 평생 마을에서 살았기 때문에 기사를 보고 단박에 알았다. 성주에 이어 2~3개의 사드가 더 필요하다고 하는 마당에 국방부가 비밀리에 사업을 추진하고, 또 일부 땅(7000여평)은 아예 미군에 양여할 계획이라고 하니 사드에 대한 의심이 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예비역 대령 ㅎ씨도 주민들의 우려를 뒷받침했다. 그는 “독도법 훈련장은 도봉산, 지리산 등에 있는데 이를 활용하면 되지 굳이 진천에 새로 만들 이유가 없다. 산세·지형 또한 독도법 훈련을 하기에 맞지 않는다. 오히려 사드라면 주변 부대와의 연관성, 평택 미군기지와의 거리 등으로 미뤄볼 때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 쪽은 사드 배치설은 전혀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펄쩍 뛴다. 미군 훈련장 추진 실무를 맡은 박준희 국방부 교육정책과 중령은 “미군 독도법 훈련장을 추진하는 것은 맞다. 사드 후보지는 절대 아니다. 여러 차례 주민 등에게 밝혔는데 사드 얘기가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 추가 주민 설명회를 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나머지 상황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고, 또 공식적인 답을 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진천/글·사진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미군 훈련장이 추진되고 있는 충북 진천군 백곡면 지구마을 이호열 이장(오른쪽)과 유재윤 ‘미군 훈련장 저지 범군민 대책위원회’ 상임대표 등이 훈련장 예정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미군 훈련장이 추진되고 있는 충북 진천군 백곡면 지구마을 이호열 이장(오른쪽)과 유재윤 ‘미군 훈련장 저지 범군민 대책위원회’ 상임대표 등이 훈련장 예정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미군 훈련장이 추진되고 있는 충북 진천군 백곡면 지구마을 이호열 이장(오른쪽)이 훈련장 예정지를 가리키고 있다.
미군 훈련장이 추진되고 있는 충북 진천군 백곡면 지구마을 이호열 이장(오른쪽)이 훈련장 예정지를 가리키고 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전국 많이 보는 기사

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 1.

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롤렉스 밀반입하다 걸려…법정구속 2.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롤렉스 밀반입하다 걸려…법정구속

“하늘여행 떠난 하늘아 행복하렴”…교문 앞에 쌓인 작별 편지들 3.

“하늘여행 떠난 하늘아 행복하렴”…교문 앞에 쌓인 작별 편지들

대전 초교서 8살 학생 흉기에 숨져…40대 교사 “내가 그랬다” 4.

대전 초교서 8살 학생 흉기에 숨져…40대 교사 “내가 그랬다”

살해 교사 “마지막 하교하는 아이 유인…누구든 같이 죽을 생각” 5.

살해 교사 “마지막 하교하는 아이 유인…누구든 같이 죽을 생각”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