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앞줄 오른쪽)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삼남 홍걸씨(앞줄 왼쪽)가 부산민주공원에서 함께 참배하고 있다.
1979년 박정희 유신독재정권을 무너뜨린 부마민주항쟁과 전두환 군사정권에 저항한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불씨를 댕겼던 부산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등 상도동계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등 동교동계가 손을 맞잡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당선을 호소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를 비롯한 상도동계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삼남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은 28일 오전 11시 부산 중구 부산민주공원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민주공원을 둘러본 뒤 추모조형물 ‘민주의 이름’ 앞에서 함께 민주열사들을 추모하며 고개를 숙였다.
상도동계와 동교동계 인사들이 만난 적은 있지만 전직 대통령의 아들을 대동하고 만난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끌던 상도동계가 노태우 정권의 민주정의당, 김종필 총재가 이끌던 신민주공화당과 합당해 민주자유당 창당을 선언한 1990년 이후 27년 만이다. 또 1987년 6월 민주항쟁 뒤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 군사정권 종식을 위한 후보 단일화에 실패해 각각 출마한 이후 30년 만이다.
두 전직 대통령의 아들이 부산민주공원을 찾은 것은 이 곳이 두 전직 대통령과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부산민주공원은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때인 1996년 착공에 들어가 국·시비 160억원을 들여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때인 1999년 완공했다. 이를 기념해 두 전직 대통령의 식수가 이곳에 자라고 있다.
참배 뒤 두 사람은 방명록에 소감을 적었다. 김현철씨는 ‘시대정신인 국민화합과 통합의 시대로 나아가기 바랍니다’, 김홍걸씨는 ‘부마항쟁과 5·18정신을 다시 살려서 정의로운 국민통합의 세상을 만들겠다’고 각각 적었다. 이어 두 사람은 취재진이 보는 앞에서 뜨거운 포옹을 하고 손을 맞잡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왼쪽)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삼남 홍걸씨(오른쪽)가 참배 뒤 포옹을 하고 있다.
김현철씨는 “두 분 대통령의 식수를 둘러보면서 남다른 감회를 느꼈다. 30년 전 어둡던 시절에 민주화 투쟁을 통해 1987년 체제를 만들었으나 (야권의 분열로) 민주세력이 집권하는 기회를 놓쳤다. 30년 만에 저와 김홍걸 박사가 이곳에서 만나서 포옹하고 악수한 것이 너무나 기쁘다. 둘의 만남이 아니라 영·호남 화합의 장이다. 국민대통합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홍걸씨는 “과거 민주화투쟁 역사에서 부산과 광주가 하나였다. 4·19혁명과 부마민주항쟁, 6월민주항쟁이 그랬다. 민주주의를 바로잡을 기회였다. 과거 대통령 3명(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 전국 지역에서 골고루 1등을 하지 못했다. 이번엔 문재인 후보가 전국 지역에서 1등 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행동하는 양심(김대중 전 대통령), 깨어있는 시민(노무현 전 대통령), 하나회를 척결하고 금융실명제를 도입한 김영삼의 개혁정신이 합치면 이상적인 개혁정부, 새로운 대한민국, 적폐청산, 국민통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참배엔 김영삼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한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부산 부산진구갑)과 김영삼 정부 때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부산 남구을), 부산의 상도동계를 이끈 문정수 전 부산시장,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이 김홍걸씨를 따뜻하게 맞았다. 또 지역주의 타파를 외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고자 대구에 홀로 내려가 지난해 4선 국회의원에 성공한 김부겸 국회의원(대구 수성구갑)과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최인호 국회의원(부산 사하갑) 등도 참석했다.
문 전 부산시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을 보면서 새로운 나라 만들었으면 했다. 문 후보가 전국에서 고른 지지를 받고 있다. (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새로운 국민통합의 힘으로 통일 기초를 닦을 수가 있을 것이다. 젊은이들이 문 후보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으니 우리 세대는 젊은이들의 뜻을 받들겠다”고 말했다.
지역주의를 무너뜨리겠다며 2011년 고향 부산에 내려와 5년 만인 지난해 3선 국회의원에 성공한 김영춘 국회의원은 “상도동계의 막내다. 3당 합당 뒤 부산이 옛 새누리당 일색으로 변했으나 부산시민들이 지난해 총선에서 5명의 야당 국회의원을 당선시켰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제들과 상도동·동교동계가 문재인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자고 해서 감개무량하다. 제대로 된 정권교체를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상도동계와 동교동계, 노무현 전 대통령 참모들이 부산민주공원에서 참배를 마치고 문재인 후보 지지를 호소하며 엄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앞줄 오른쪽 세번째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이고, 바로 옆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삼남 홍걸씨다.
김부겸 국회의원도 힘을 실었다. 김 의원은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찍 손을 잡았더라면 민주주의가 10년 퇴행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마침내 오늘 역사적 화해와 새로운 출발이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최인호 국회의원은 “상도동·동교동계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최초의 전국 1등 국민통합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모였다”고 의미를 해석했다.
참석자들은 “준비된 대통령 문재인”, “우리는 하나다”라고 외치고 헤어졌다. 김 위원장과 동행한 강기정 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중앙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에 임명된 김현철·김홍걸씨가 지난 24일 광주 망월묘역을 처음 함께 참배한 데 이어 오늘 김영삼 전 대통령을 배출한 부산에서 다시 만났다. 두 사람과 문재인 후보가 다음달 3일 서울에서 만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 중구 옛 미화당백화점 근처 광복로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인 현철씨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김현철씨와 문정수 전 부산시장, 김부겸·김영춘 국회의원 등은 오후 2시 부산 중구 옛 미화당백화점 근처 광복로에서 문재인 후보의 지지를 호소했다. 길을 가던 시민들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이들의 지지호소에 귀를 기울였다. 김홍걸씨는 다른 일정 때문에 함께하지 못했다.
김현철씨는 “반칙 없고 특권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대선에 출마한 문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부마민주항쟁의 본거지, 민주화의 성지인 부산에서 밀어달라. 아버지께선 진정한 동·서 화합만이 민주 대통합을 이룰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과 굳게 손을 잡았다. 자식들이 그 분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 나섰다. 동참해 달라. 압도적으로 (문 후보를)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시민들은 엄지를 치켜세우며 환호했다.
이어 무대 위에 오른 김영춘 국회의원도 “열심히 일하면 생활, 노후 등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나라를 국민 여러분과 함께 만드는 것이 꿈이다. 민생복지국가를 세우는 데 도움을 달라. 문 후보에게 힘을 실어 달라”고 머리를 숙였다.
앞서 김현철씨와 김홍걸씨 등 상도동·동교동계 인사들은 오전 9시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함께 참배했다. 부산/글·사진 김광수 김영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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