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20일 경북 군위군청 앞에서 주민들이 대구 군공항의 군위 이전에 반대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대구공항은 군과 민간공항을 통합·이전함으로써 군과 주민들의 기대를 충족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해 7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갑자기 이런 지시를 내렸다. 그해 6월 국토교통부의 영남권 신공항 건설 백지화 발표 이후 대구 민심이 나빠진 때였다. 국방부는 그해 8월 대구시가 2년여 전에 제출한 ‘군공항 이전건의서’를 검토해 ‘적정’하다고 결론 내렸다. 대구 민·군공항 통합이전은 박 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따라 이렇게 시작됐다.
대구국제공항과 군공항(K-2)은 동구 지저동에 함께 있다. 전체 면적은 17만3308㎡인데 활주로 등 대부분의 시설은 국방부 소유다. 민간공항이 군공항에 얹혀 더부살이를 한다고 볼 수 있다. 대구 민·군공항 통합이전은 대구에 있는 민간공항과 군공항을 다른 지역으로 함께 옮기는 것이다. 대구시가 다른 지역에 군공항이 이전할 터를 사서 시설을 짓고 국방부에 넘겨주면, 국방부는 군공항이 있던 터를 대구시에 주는 방식이다. 대구시는 이 터를 개발해 군공항 이전 비용을 충당할 계획이다.
군공항을 이전하려면 먼저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국방부에 이전건의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후 국방부가 예비이전후보지를 선정하고, 예비이전후보지 중에서 이전후보지를 정한다. 이어 군공항을 받겠다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유치신청과 주민투표를 거쳐 이전부지를 최종적으로 확정한다. 국방부는 지난 2월 경북 군위군 우보면과 의성군 비안면·군위군 소보면 등 두 곳을 예비이전후보지로 선정해놨다.
하지만 이를 놓고 대구와 경북의 주민들 의견은 엇갈린다. 대구에서는 민·군공항을 함께 이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반대로 민간공항은 남겨두고 군공항만 이전하라는 주장도 나온다. 경북도 비슷하다. 지역 발전을 위해 민·군공항을 함께 유치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소음이 심한 군공항은 받을 수 없다는 목소리도 크다. 실제 예비이전후보지로 선정된 군위와 의성에서는 일부 주민들이 집회를 열어 삭발하는 등 군공항 유치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한겨레>가 대구 민·군공항 통합이전과 관련해 주요 5개 정당 대선 후보들의 공약 또는 입장을 확인한 결과, 홍준표 자유한국당, 안철수 국민의당,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박 전 대통령이 시작한 대구 민·군공항 통합이전을 그대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홍 후보는 “군사공항 이전 및 통합신공항 건설로 급격히 늘어나는 지역의 항공 수요를 조기에 감당하겠다. 통합신공항 접근성 향상을 위한 최적의 연결교통망을 구축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안 후보도 “대구(통합)공항 이전 대체지를 조속하게 물색하고 이전작업에 착수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유 후보도 ‘대구·경북 관문공항 건설 및 연결교통망 구축’을 공약으로 내걸고 “이전비용이 양여재산의 가액을 초과하는 경우 국가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1월9일 경북 군위군 군위읍 삼국유사교육문화회관 앞에서 주민들이 대구 군공항이 군위에 오는 것을 반대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반면 심삼정 정의당 후보는 유일하게 대구 민·군공항 통합이전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심 후보는 “(영남권 신공항이 백지화되고) 김해신공항 건설로 결정된 뒤 낙심한 대구·경북 민심 달래기 식으로 던져진 대구 민·군공항 통합이전이 다시 영남권 신공항 갈등의 재현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중앙정부의 일방적·종속적·졸속적 사업 추진 방식이 또 하나의 정치공항 문제를 야기한다. 관문공항의 필요성과 군공항 이전 방안 등은 이른 시일 내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놨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중간에서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문 후보는 지난 3월26일 대구시의회 3층 회의실에서 지역 공약을 발표하면서 “대구와 경북 지역 간 하나의 합의가 이뤄지면 중앙정부는 (대구 민·군공항 통합이전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문 후보는 이 자리에서 “대구의 경우에 군공항과 민간공항 전체가 함께 이전할 것인가, 아니면 군공항만 이전할 것인가라는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안다. 또 이전해갈 경북에서도 찬성하는 의견과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으로 안다. 합의가 이뤄지면 중앙정부는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설명했다.
<한겨레> 대선 공약 자문위원 류제모 변호사는 “대구 민·군공항 통합이전은 구체적인 사업계획도 나와있는 게 없고 지역민들 사이에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며 갈등이 야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추진을 주장하는 홍 후보, 안 후보, 유 후보의 공약은 주민 간 갈등을, ‘전면 재검토’라는 심 후보의 견해는 정치적 갈등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주민들의 합의가 먼저’라는 문 후보의 공약이 더 현실성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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