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15일 “(박근혜 청와대가 남긴) 자료들을 확인해봤는데 하드디스크는 거의 비어 있다고 보면 된다. 자료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국민일보>가 “청와대 비서실에 남아 있는 자료는 10장짜리 업무보고 문서 하나”라고 보도한 뒤 논란이 일어난 데 따른 설명이었다.
청와대와 매체들이 소동을 벌이기는 했지만, 사실 현재 청와대의 서버와 하드디스크가 깨끗하게 비어 있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다. 공공기록물관리법상 전자기록물을 관리기관에 이관한 생산기관은 해당 기록물을 복구가 불가능하게 삭제, 파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록물 원본의 유일성과 중요 기록물의 비밀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일이다.
문제는 전-현직 청와대 간의 인수인계 과정에서 정부 운영에 필수적인 자료들이 적절히 이관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업무를 원만하게 인수인계하고 전 정부의 경험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중요 사안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청와대에서 이번 청와대로 이관된 자료는 10장짜리 업무보고 문서 하나다. 아쉽게도 이 대목과 관련해서는 해당 법률도 없고, 관행도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전-현직 청와대 사이에 원만한 인수인계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같이 부패하고 무능한 대통령을 뽑아서는 안 된다. 탄핵과 검찰 수사에 직면했던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를 떠나기 전에 세월호 사건이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자료들을 상당수 삭제, 파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국정농단 사건이 터진 뒤 문서 파쇄기를 26대나 구입한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로서는 수사와 재판에서 불리한 증거가 될 기록물들을 대통령기록관에 이관하거나 후임자에게 넘겨줄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둘째로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전임 대통령의 기록물을 악용할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서는 안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남북관계 발전에 활용할 수 있도록 지정 기록물인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사본을 국가정보원에 남겨뒀다. 지정 기록물은 15년 동안 열어볼 수 없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이를 남북관계 발전에 활용하지 않고, 2012년 대선에서 야당을 공격하는 데 사용했다. 노 전 대통령이 회담에서 북방한계선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다는 거짓 주장이었다. 심지어 이 기록물을 잘 관리해야 할 남재준 국정원장은 이 거짓 주장을 증명하겠다며 1급 기밀인 이 대화록을 만천하에 공개했다. 그들의 주장은 거짓으로 드러났지만, 대한민국은 전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됐다.
결국 전-현직 청와대가 서로 원만하게 기록물들을 인수인계하고 후임 정부들이 전임 정부의 일들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한다. 좋은 주권자가 되기는 그렇게 어려운 것이다.
김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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