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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상담사들 ‘공공부문 정규직화'의 날개가 될까?

등록 2017-05-18 18:57수정 2017-05-18 22:03

5년 진통 끝 1일 다산콜센터재단 출범
공공부문 정규직화 최대…재단 첫 사례
당분간 저임금, 혹독한 평가 방식 계속
휴식과 산재 치료, 전문가 성장 교육 필요
인천공항 등 초기 정규직화 성공이 관건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다산콜센터에서 15일 직원들이 시민들과 전화 상담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다산콜센터에서 15일 직원들이 시민들과 전화 상담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012년 다산콜센터는 500여명 직원 중 한해 100명 정도가 퇴사하고, 전체 상담원의 87.4%가 근속 기간 3년을 채우지 못하는 곳이었다. 이듬해엔 다산콜센터 노동자의 9.3%가 강박·우울·불안·적대감 등에 시달리는 정신건강 위험군에 속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2014년 서울시인권위원회는 “다산콜센터 상담사들의 열악한 노동 조건과 근무 환경 악화, 감정노동 심화의 근본적인 원인은 민간 위탁한 고용 구조에 의한 것”이라고 지적하며 “간접고용 구조 자체를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2017년 5월1일 서울시는 ‘120다산콜재단’을 정식 출범하고 업무에 들어갔다. 상담사와 교육 스태프 등 405명 전원을 정규직으로 고용 승계한 120다산콜재단 출범은 지금껏 공공부문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화한 것 중 가장 큰 규모다. 또 지방정부가 재단 출연을 통해 완전 고용을 이룬 첫 사례이기도 하다. 정규직화는 감정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 지난 15일 찾아간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120다산콜센터는 기대와 불안으로 술렁였다.

■고용 안정엔 일단 “행복” 황윤경(37)씨는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다산콜센터에서 상담원으로 일한다. 그는 다산콜센터의 여러 시절을 고루 거쳤다. 2012년12월 케이티·효성·엠피씨 3개 업체가 다산콜센터 상담원들을 나눠 관리하던 때 입사해 2015년 메타넷과 효성 2개 업체로 축소된 시기를 거쳐 이제는 재단직원이 됐다. 업체가 바뀔 때마다 고용이 유지될까, 노동조건은 바뀌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던 스트레스는 사라졌다. “밤엔 잠들지 못하고 아침엔 일어나기 두려운” 직무 스트레스를 겪은 그는 “내가 견뎠어야 하는 이유를 찾게 돼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2013년 3월 입사한 박수현씨(35)도 “앞으로 희망이 보인다”고 했다.

■평가방식은 그대로…바뀐 노동조건은 안갯속 지난 12일 상담원들의 잠 못 이루는 밤은 다시 시작됐다. 재단이 서비스 품질을 유지·관리하기 위해 기존 민간 위탁업체가 운용한 비인간적인 업무평가 방식을 당분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 평가 방식은 콜수(전화응대숫자), 문답 평가(웃었는지, 친절한 음성으로 답했는지) 등으로 성과를 측정하고 이에 따라 보수를 차등 지급한다. 이 방식은 감정노동자의 근무 조건을 악화시킨다는 지적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박수현씨는 “1달을 버티려면 월 200만원은 벌어야 해서 하루 70~80통의 전화를 받으며 항상 주 6일 일한다”고 말했다.

임금도 재단화 이전과 같은 임금을 받고 있다. 황씨는 다른 상담원들보다 적은 월 150만원 정도의 급여를 받는데, 민원인들이 상담하려는 내용을 충분히 듣고 응답해주기 위해 통화 시간이 길어져 콜수(전화 응대 숫자)가 다른 상담원들의 절반 수준이기 때문이다. 희망연대노조 다산콜센터지부에서 조사한 내용을 보면, 주간에 일하는 상담원은 평균 170만원, 야간 상담원들은 200만원 정도를 받는다. 3년 이상 근무한 상담원 대부분은 난청, 이명, 근골격계 질환과 불면증을 앓고 있다. 감정노동자가 과다한 민원에 시달릴 때 휴식을 요청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과 전문가와의 정기적 상담, 검진 등 산재 예방 정책은 아직 도입되지 않았다.

■노동에 자존감 갖기 위한 직무교육 필요 상담원들의 가장 큰 요구는 노동에 대해 자존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박씨는 “악성 민원인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정확한 정보가 없어 시나 구와 민원인 사이에 끼어 곤욕을 치르거나 무력감을 느끼는 것이 훨씬 힘들다”면서 “우리를 힘들고 불쌍한 사람으로 보지 말고 민원을 해결해나가는 전문가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황씨도 “재단 설립 목적 중 하나가 전문 상담사 양성이라면 수량 측정보다는 품질 평가를 하고, 시 행정에 대한 전문적 교육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들에게 새로 적용할 직무체계와 노동조건, 교육 등의 내용을 담은 새 취업규칙의 설계를 위해 조만간 연구용역을 맡겨 10월께부터는 적용할 방침이다. 황호익 서울시 120운영팀장은 “기존 위탁업체에 지급하던 수수료를 노동자들에게 돌린다면 20~30% 급여 인상이 가능하다”며 “새 직무 설계에 대한 연구를 발주해 9월 그 결과를 받은 뒤 10월부터 본격 반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노동권익센터 이정훈 감정노동보호팀장은 “서비스 정도와 품질을 측정하는 정성적 평가 항목을 새로 개발하는 것이 시급하며, 상담사들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이를 키워줄 수 있는 직무 교육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규직화 이후 노동 조건과 품질 향상에 대해 고민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희망연대노조다산콜센터 지부 제공
희망연대노조다산콜센터 지부 제공
■만만찮은 정규직화…노조 협의없인 쉽지 않을 것 노동계에선 이번 사례가 공공부문 콜센터와 외주 인력들의 정규직화에 불을 붙이는 ‘서울 효과’를 일으키길 기대하고 있다. 그러려면 다산콜센터가 겪는 어려움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서울시 황호익 팀장은 “현행 법에서 비정규직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규정하고 있어 실제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화에서 소외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론 간접고용 형식이나 민간위탁업체 정규직으로 분류되던 다산콜센터 노동자들이 대표적 사례다.

정부가 진행중인 공공기관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 과정이 노조와의 적극적인 대화와 협상없인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다양한 직무체계와 임금구조 정비 등 그 과정이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서울시도 재단화 과정에서 상담원 대부분이 가입한 희망연대노조 쪽과 꾸준히 협상을 했음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인천공항공사는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방문 때 1만명을 정규직화하기로 했으나 노동조합을 배제하고 티에프팀을 만들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규직화 모델 설계 때 처우가 열악한 무기계약직같은 형태가 아니라 제대로 된 정규직 일자리를 만들어야 할텐데, 그러려면 노조와 꾸준히 대화하며 그들의 노동조건, 처우, 요구사항 등을 면밀히 검토해야 정규직화가 질좋은 일자리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경영자가 대통령 공약사항에 맞춰 빠른 정규직화로 성과를 보여주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중장기 로드맵을 고민해 좋은 정규직화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남은주 전종휘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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