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개장한 ‘서울로7017’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분야에 따라 엇갈렸다. 서울시 제공
‘콘크리트 정원’, ‘보행도시 마중물’ 20일 개장한 서울로7017은 시작부터 개장까지 늘 비판과 상찬이 엇갈려왔다. 도시, 건축, 조경, 환경, 미술이 협력한 프로젝트인 만큼 그 평가는 분야에 따라서도 다르다. 박용남 도시계획가, 이경훈 건축가, 조경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조경학과 교수, 조홍섭 <한겨레> 환경전문기자, 최범 미술평론가(가나다순)에게 서울7017의 성과와 한계를 들어봤다.
■ “도심에서 가장 전망 좋은 곳”
서울로7017처럼 전망이 좋은 곳은 도심 안에는 별로 없다. 보행자들이 서울역과 남대문 등 문화유산, 주변 도로나 철로를 볼 수 있다. 여기서 서울스퀘어 벽면을 활용해 다양한 영상도 보여줄 수 있다. 낮보다는 밤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수도 있다. 청계천 복원처럼 논쟁은 계속되겠지만,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평가가 늘어날 것 같다.
다만, 설계자인 비니 마스가 소망한 교육 목적의 식물원으로서의 성공 가능성은 커보이지 않는다. 일반 시민들은 구경하며 물 흐르듯 지나가지 세세히 보면서 걷지 않는다. 시각장애인이나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점도 아쉽다. 가장 걱정되는 일은 이 일대에 조만간 젠트리피케이션(공간고급화)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박용남 지속가능도시연구센터 소장
■ “화분보다 상점이 낫지 않았을까?”
자동차 도로가 보행로로 바뀐 것은 좋은 일이다. 예상보다 많은 시민들이 방문했고 공무원들이 애쓴 흔적도 볼 수 있다. 길이가 1㎞가량인데, 나무와 풀을 보면서 걸으니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여기서 보는 주변 전망도 좋은 편이다.
다만 길 양쪽으로 화분들이 많은데, 그보다 상점이나 노점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처럼 사람이 활동할 수 있는 소매점, 식당, 찻집 같은 것이 이 고가도로에 더 어울리는 시설이다. 고가 재생의 소재도 70년대식 콘크리트인데, 유리와 철처럼 더 가볍고 현대적인 소재를 썼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이경훈 국민대 교수(건축가)
■ “하이라인 모방? 서울다운 조경!”
식물들을 가나다 순으로 고정 배치하는 것은 생소한 방식이어서 비판을 많이 받았다. 계절에 맞게 꽃과 나무들을 연출할 수 없으며, 유지·관리하는 데 상당한 비용과 노력이 든다. 식물들을 척박한 환경에 두고 그저 볼거리로 만드는 반생태적인 조경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비니 마스는 식물들의 도서관처럼 만들며 이것이 서울답다고 생각한 듯 하다. 관람자들은 서울이 갖고 있는 역사의 지층을 느끼고,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는 식물을 보는 다면적 경험을 하게 된다. 미국 하이라인 파크와 비교하지만 실은 그곳도 관리하는 데 많은 에너지와 비용이 든다. 이 공원의 사례는 세계로 퍼졌는데, 모방이란 없고 각자 자기 도시의 맥락에서 새로 만드는 것이다. 조경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조경학)
■ “도심에서 자연을 공부할 수 있다”
무엇보다 도심 공간에서 자동차를 제치고 보행만을 위한 공간이 등장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지인 중에 회현역에서 지하철을 내려서 만리동 쪽으로 차를 갈아타던 사람이 있는데, 7017을 통해 걸으니 오히려 시간이 단축됐다고 한다. 둘째로 228종의 식물을 식물도감식으로 배치해 자연에 대한 공부도 되고 계절에 따른 변화도 볼 수 있다.
다만 7017이 있는 곳이 도심의 도로 위 인공 환경이어서 매연이 많고 온도차가 크다. 보통 식물들은 견디기 어렵고 적잖은 식물들이 살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식물에 대한 일종의 학대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인공 환경에 잘 견디는 원예종이 점점 늘어날 수 있다. 조홍섭 <한겨레> 환경전문기자
■ “슈즈트리, 흉물 아니라 괴물”
슈즈트리를 실제로 보니 상상했던 것보다 인상이 훨씬 강렬하다. 황지해 작가는 정원 디자이너지만 꽃이 아니라 폐품을 대규모로 쌓아 ‘시각적 테러’를 저질렀다. 사람들은 당연히 테러같은 이 공공미술을 혐오할 자유도 있고 다른 메시지를 읽을 수도 있다. 내겐 강우규 열사 동상 주변에 슈즈트리를 만든 것이 유머처럼 보였다. 강 열사는 일본 사이토 총독에게 수류탄을 던졌지만, 황 작가는 지금 서울역 광장 한복판에 신발짝을 던진 것 아닌가.
슈즈트리를 두고 흉물이라고 하는데 서울엔 그보다 흉칙한 공공미술이 얼마든지 있다. 슈즈트리는 ‘괴물’이라 불러야 한다. 싫지만 자꾸 쳐다보고 해석하게 되는, 양가적 감정을 자아내는 괴물이다. 최범 미술평론가
김규원 남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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