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피해자 합의를 주도했던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서병수 부산시장에게 부산 소녀상 보호 조례가 시의회 상임위원회에 상정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확인됐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23일 <한겨레>와 전화통화에서 “윤 장관이 부산 소녀상 보호 조례가 시의회 복지환경위원회에 상정되기 하루 전날인 지난 16일 오후 전화를 걸어와 소녀상 보호 조례의 시의회 상임위 상정이 연기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듣고 보니 이해가 돼서 행정부시장 등에게 시의회와 민주당 등에 상황설명을 하라고 지시했다. 외압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윤 장관이 아직 재임 중이므로 현 정부 사람이다. 윤 장관이 악화된 한·일 관계를 풀어야 할 현 정부를 도우려고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장관과 서 시장의 통화 사실이 공식 확인되면서 윤 장관이 부산 소녀상 보호 조례의 상임위 상정 불발로 커지고 있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부산시의 갈등을 부채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소녀상 보호 조례안을 발의한 정명희 부산시의원(더불어민주당)은 “윤 장관은 한·일 정부의 위안부 피해자 졸속 합의의 장본인이고 이면합의 의혹 당사자여서 청문회에 나가야 할 사람인데 조례안 상정을 보류시켜 달라고 부산시에 압력을 넣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윤 장관의 행동은 문재인 대통령이 아베 일본 총리와의 전화통화에서 소녀상 문제는 민간영역이어서 정부의 한계가 있다고 한 것과도 배치된다. 부산시도 섣불리 개입했다”고 덧붙였다.
윤 장관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소녀상 보호 조례가 상임위를 통과했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서 시장은 “만약 윤 장관이 전화하지 않았다면 소녀상 보호 조례가 상임위를 통과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 장관이 전화하지 않았다면 서 시장의 지시를 받은 박재민 행정부시장 등 5명이 대책회의를 열어 이진수 부산시의회 보건환경위원장과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위원장 등에게 조례 상정 연기를 요청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한편 제4회 아시아·유럽 정상회의 주지사·시장회의 참석을 위해 22일 영국 런던으로 떠났던 박재민 행정부시장은 23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지난 19일) 박재본 시의원(자유한국당)과 통화를 했는데 (문희상) 일본 특사 쪽에서 최인호 위원장과 접촉했다는 말을 들었다고만 했다. 소녀상 보호 조례와 관련해 최 위원장과 통화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박재본 시의원(자유한국당)은 22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박 부시장에게 직접 연락해 확인한 결과 (문희상) 일본 특사가 최인호 위원장에게 조례 상정을 보류해 달라고 요청하고 최 위원장이 그 내용을 박 부시장에게 전달했다. 민주당의 요청으로 이뤄진 일련의 사태가 마치 자유한국당의 문제인 양 뒤집어씌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체 의원 8명 가운데 자유한국당 소속이 7명인 부산시의회 보건환경위는 부산시의 요청을 받아들여 17일 오후 2시 회의를 열었으나 소녀상 보호 조례는 상정하지 않았다.
김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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