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수원시 상광교동 일부 주민들이 23일 고은 시인 집 앞에 ‘고은 시인은 떠나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독자 제공
한국 문단의 원로시인인 고은 시인이 5년째 정착한 수원시를 떠나려하자, 수원지역 학계와 문인 등이 고은 시인의 이주를 만류하는 청원운동에 나서는 등 파문이 일고 있다.
23일 수원시의 말을 종합하면, “고은 선생 쪽에서 최근 (수원 생활을)정리해서 이사를 가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고은 시인은 최근 자신의 거주지를 둘러싼 논란에 깊은 상처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고은 시인이 사는 수원시 장안구 상광교동 광교저수지 주변 주민들은 지난 21일부터 고은 시인의 자택 앞에 수원시에서 무상으로 제공받은 주택을 거론하며‘고은 시인은 광교산을 당장 떠나라’등의 현수막을 내걸었다. 21일에는 고은 시인의 집 앞을 트랙터로 막기도 했다. 이들 일부 주민의 행동은 광교저수지를 비상취수원에서 제외해달라는 요구가 거부된 때문이라고 시 관계자 등이 전했다.
지난 21일 수원시 상광교동 일부 주민들이 고은 시인의 집 문 앞에 트랙터를 세운채 통행을 막고 있다. 독자 제공
상수원보호구역으로 규제를 당해온 주민들은 광교저수지 비상취수원 해제를 요구했고 수원시는 3월24일 환경부에 비상취수원 폐쇄 승인을 요청했다. 하지만 환경부가 비상취수원 존치와 함께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라며 사실상 해제를 거부하면서 무산된 상태다.
고은 시인의 이주 뜻이 알려지자, 지역 학계와 문인들은 “지역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상수원보호구역 해제와 고은 시인은 전연 별개다. 주민들 요구가 무산됐다고 왜 대시인을 내쫓냐”며 반발했다.
안성지역에서 30여년간 거주하면서 <만인보>를 펴낸 고은 시인은 2012년 염태영 수원시장 등의 ‘삼고초려’ 끝에 수원시가 무상 제공한 광교동 집에 정착했다. 당시 염 시장은 “수원 화성은 정조가 만든 신도시로, 실학과 정조의 애민사상이 남아 있는 만큼 시인을 모셔와 문화가 풍요로운 도시로 만들겠다”고 설득했다.
김준혁 한신대 교수는 “지역 민원을 이유로 대시인을 내쫓는 것은 세계적인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문인과 학계에서 ‘고은 선생님 수원시민과 함께 살아가기’ 청원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홍용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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